겨울산이 좋은 이유는 산의 계곡과 능선이 본연의 모습 그대로 드러나 솔직하고 꾸밈이 없는 모습을 보여주기 때문이다.
또한 햐얀눈이 내린 겨울 설산의 눈꽃과 상고대, 칼바람은 강인한 느낌을 주는 겨울산행의 매력이며 백미다.
겨울만 되면 더 인기가 많은 스타급 겨울명산에 가면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산객으로 붐인다. 덕유산·한라산·태백산·계방산·설악산·지리산·민주지산·소백산·선자령 등등은 계절을 나눌 수 없는 명산이지만, 특히 겨울 설경은 감탄사가 절로 나오는 환상적인 산행지다.
겨울산은 곳곳에 위험 요소도 많다. 해가 일찍 져 눈길에 산행 시간을 잘 조절해야 하며 기온의 변화와 미끄러움에 방한복과 스페츠 아이젠 등을 잘 준비해야 한다.
겨울 산속으로 걸어 들어가고 있다. 경기 가평군과 포천군의 경계를 이루며 한북정맥에 솟아있는 운악산(935.5m)은 희끗희끗 눈이 덮여 한 폭의 그림 같은 풍경을 보여준다.
하얀 눈과 노송, 기암이 어우러진 풍경은 가히 환상적이다. 예부터 파주 감악산, 가평 화악산, 개풍 송악산, 서울 관악산과 함께 경기 오악으로 꼽히는 명산이다.
등산화 밑에선 뽀도독 소리와 함께 눈길의 질감이 부드럽게 느껴진다. 완전 무장을 했지만 매서운 칼바람이 얼굴을 할퀸다.
미륵바위와 만경대를 지나 정상에 오른 후 절고개와 현등사를 거쳐 하산하는 코스. 현등사 일주문을 지나 오른편 청룡능선 망경로 방향으로 정상까지는 2.61km. 가파른 오름길을 걷다 보면 나무꾼이 선녀를 기다리다 바위가 되었다는 슬픈 사연이 전해지는 눈썹바위를 만난다.
눈썹바위를 빙 둘러 산길은 거친 돌길로 이어지며 가파른 능선길을 15분 정도 올라가면 625m봉 아래 안부에 올라선다. 가평방향으로 썬힐골프장과 리엔리 골프장이 한눈에 들어오는 멋진 조망이 펼쳐진다.
정상까지 1.45km 이정목을 보며 진행한다. 청룡능선의 망경대와 정상인 동봉이 눈앞에 들어오며 좌측으로는 백호능선이 펼쳐진다.
잠깐 동안의 흙길로 걷다 보면 병풍바위의 위엄이 펼쳐지는데 풍경이 장엄해 신음소리가 나온다. 깎아지른 듯한 절벽, 그리고 바위틈에 몸을 기댄 노송 등이 어우러져 그야말로 한폭의 수묵화다.
병풍바위 전망대에서 한참을 머물다가 내려서 미륵바위를 향해 오른다. 미륵바위를 앞두고 비로소 암벽 등반이 시작됐다. 단애와 절벽의 바위길에 안전 로프와 발 디딤쇠가 박혀 있어 발걸음을 돕는다.
병풍바위와 더불어 미륵바위는 운악산을 대표한다. 바위틈에 노송이 의연하고 기개가 넘치는 수려한 풍광을 마음껏 보여준다.
미륵바위가 잘 조망되는 바위에 앉아 숨을 돌리고 계속되는 암릉길을 타고 망경대로 향한다. 손과 발을 다써야 하는 일명 호치키스 구간과 절벽에는 철제 사다리가 놓여 있다.
망경대에서 명지산과 연인산 화악산과 석룡산이 선명하게 다가온다. 망경대는 운악산 최고 조망처다.
망경대를 내려 데크계단으로 100m 올라가 운악산 정상 동봉(비로봉 937.5m)에 도착한다. 주차장에서 2시간20분 소요됐다. 출렁이는 첩첩산중의 산그리메가 장엄하다. 정상석이 2개 서 있다. 하나는 가평군에서 다른 하나는 포천시에서 설치한 정상석이다.
정상석을 등지고 백호능선으로 하산한다. 이 능선 길이 한북정맥길이다. 데크계단길을 내려서 절고개까지는 능선길이 얌전하다.
절고개 분기점에서 현등사 방향 계곡길로 내려선다. 현등사는 1km, 주차장은 2.71km. 이 길은 전망이 없는 가파른 계곡 너덜길. 무릎과 발목에 무리가 오며 눈길이 미끄러워 아이젠을 꼭 착용해야 한다.
현등사를 지나 계곡을 따라 300여m 5분 정도 내려가면 왼편 계곡에 무우폭포가 꽁꽁 언 채로 빙벽이 되어 있다.
현등사에서 30여분 포장도로 걸어 주차장에 당도하며 원점회귀 산행을 마친다. 산행거리 약 9km, 산행시간 5시간 소요됐다.
속살을 깨끗이 비워낸 청량한 겨울산과 맑은 길. 사람이나 자연이나 마찬가지다. 비우면 새롭게 보이는 것이 있는 듯하다.
눈길에 거북이 걸음으로 힘든 산행이었다. 가평 잣막걸리 한 사발과 장작불 곰탕 한 그릇 후르륵 삼키며 등산화를 벗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