도연명, 세상사 초탈한 은사(隱士)의 풍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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도연명, 세상사 초탈한 은사(隱士)의 풍모
  • 한정주 고전연구가
  • 승인 2020.11.16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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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52) 졸음

북쪽 창 턱 괴고 누우니                窓北支頤臥
바람 시원해 꿈 속 도연명 보이네       風涼夢見陶

한낮 우는 닭 유독 담박함 깨우치고     午鷄偏覺澹
구름 솟은 회나무 최고 호걸로 보이네   雲檜最看豪
빗줄기 가볍게 얼굴 스치고             雨脚輕吹面
꽃향기 살그머니 옷 스며드네           花香細入袍
자그마한 집 풀싸움 놀이 시끄러워      小堂紛鬪草
잠결 아이들 소리 듣고 웃네            睡際笑兒曺
『영처시고 2』 (재번역)

맑은 밤 도연명의 시 외우며

밝은 달 뜰 국화 비추고                明日照園菊
하얀 이슬 가을 옷깃 적시네            白露盈秋襟
속세를 떠나려고 하다가도              欲辭煙火食
나라 잊지 못하는 마음 있네            仍有唐虞心
서녘 바람 마음속 기운 소생시키고      商飆蘇肺氣
수풀 건너 거문고 소리 일으키네        度林生瑟琴
물새의 고요함 나의 적막함 같아        水禽如我寂
다가와 도연명 시 읊는 소리 듣네       來聽陶詩吟
도연명 시 마음속 씻을 만해            陶詩可滌腸
화평한 옛 소리 많건만                 和平多古音
함께 할 선비 하나 없어                衆士無與共
물새에게 시의 운율 물어보네           音調問水禽
『영처시고 2』 (재번역)

벗들에게 보여주다

도연명 문집 즐겨 읽으니               善讀陶潛集
그 사람 이름 높은 선비로다            其人名士哉
겉모습 온화하고 마음속 슬기로워       外沖中蘊慧
첫째는 인품 둘째는 재주로다           先品次論才
한가로이 매화나무 감상하며            整暇當梅樹
다정하게 술잔 기울이네                溫存引酒杯
벗들 돌아가니 어찌 달래랴             君歸何以慰
마음속 친구 생각 금할 수가 없네       不禁念頭來
『아정유고 1』 (재번역)

[한정주=고전연구가] 이덕무는 굴원 못지않게 도연명을 좋아했다. 세상사에 비분강개한 지사(志士)의 풍모 때문에 굴원을 좋아했다면 도연명은 세상사에 초탈한 은사(隱士)의 풍모 때문에 좋아한 시인이다.

굴원과 더불어 도연명을 좋아했다는 점에서 엿볼 수 있듯이 이덕무의 내면에는 굴원의 비분강개함과 도연명의 초탈함이 공존하고 있었다.

비분강개함과 초탈함은 언뜻 보면 서로 모순되는 것처럼 여겨진다. 전자가 세상사 안으로 들어가는 것이라면 후자는 세상사 밖으로 나가는 것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조금만 달리 생각하면 참된 사람은 비분강개함과 초탈함을 함께 지니고 있어야 한다. 명예와 출세와 재물과 권력의 불의(不義)에 맞서 싸우려면 비분강개함이 있어야 하고, 권력과 재물과 명예와 출세의 유혹에 굴종하지 않으려면 초탈함이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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