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꿀벌은 꿀을 만들 때 꽃을 가리지 않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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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꿀벌은 꿀을 만들 때 꽃을 가리지 않는다”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20.08.07 07: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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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덕무 詩의 온도]㉟ 시를 논하다

모든 사물 반듯하고 비스듬해 간추리기 어렵고       難齊萬品整而斜
온갖 빛깔 옥돌, 해에 구운 노을이네                色色璁瓏日灸霞
먹는 것 입는 것 다르지만 이치는 원래 하나         喫著雖殊元一致
누에치는 이 농사짓는 이 조롱하며 웃을 건가        蠶家未心哂耕家
『아정유고 1』 (재번역)

[한정주=역사평론가] 이덕무는 조선과 중국의 역대 한시는 물론 일본의 한시까지 두루 섭렵했다. 이 사실을 안 어떤 사람이 이덕무에게 질문했다.

“역대 시 중에서 어떤 것이 가장 좋습니까?”

이덕무는 어떻게 답했을까?

“꿀벌은 꿀을 만들 때 꽃을 가리지 않는 법입니다. 만약 꿀벌이 꽃을 가린다면 꿀을 만들지 못할 것입니다. 시를 짓는 것 역시 이와 다르지 않습니다.”

시는 시대에 따라 다르다. 시는 나라에 따라 다르다. 시는 지방에 따라 다르다. 시는 계절에 따라 다르다. 시는 사람에 따라 다르다. 이런 까닭에 가장 좋은 시는 어떤 것이라고 말할 수 없다.

시대에 따라 좋은 시가 다르고, 나라에 따라 좋은 시가 다르고, 지방에 따라 좋은 시가 다르고, 계절에 따라 좋은 시가 다르고, 사람에 따라 좋은 시가 다르기 때문이다.

벌이 꿀을 만들 때 꽃을 가려서 취하지 않듯이 시 또한 어느 시대에 어떤 나라의 어떤 사람이 지었는가를 가려서는 안 되고, 단지 작자(作者)의 정신·감정·생각·뜻·기운이 살아있는가 그렇지 않는가를 보면 된다.

다른 사람의 시를 답습하거나 흉내 내거나 모방하지 않고 자신의 정신(精神)이 생동하는 진짜 시, 자신의 지기(志氣)가 꿈틀대는 살아 있는 시를 지을 수 있는 비결이 거기에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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