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는데 속세가 산을 떠난다”…보은 속리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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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는데 속세가 산을 떠난다”…보은 속리산
  • 이경구 사진작가
  • 승인 2020.01.17 09: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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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구 사진작가의 산행일기]⑪ 우람한 바위 틈에 등 굽은 소나무의 독야청청
[사진=이경구]
문장대 앞으로 끝없이 펼쳐진 산그리메. [사진=이경구]

추운 겨울 장독의 귀때기처럼 새벽 찬바람이 시리다. 속리산(1057m)은 얼음 같은 침묵 속의 풍경화를 보여주며 동틀녘 대지의 숨결이 서서히 살아난다.

주차장에 차를 세워두고 등산화 끈을 조여 맨다. 매표소에서부터 입김을 내뿜으며 오리(五里)숲길 들머리로 들어선다. 법주사까지 약 2km. 숲의 길이가 오리가 된다 해 오리길이라 부른다.

계절 따라 얼굴을 달리하며 묵직한 고목들과 늙은 소나무가 차갑고 거친 겨울바람에 잔뜩 웅크려 묵상중이다. 겨울나무의 마음을 잠시 엿보며 가속페달을 지그시 밟아본다.

일주문을 지나 왼쪽 끝자락에서 만난 천년고찰 법주사는 하산길에 들리기로 하고 법주사 삼거리에서 우측 세조길로 들어선다. 세조길은 조선 7대 세조 임금이 요양차 스승인 신미대사가 머물던 복천암으로 순행왔던 길로 법주사에서 세심정 간 2.4㎞ 구간이다.

목욕소. 세조 임금이 목욕하고 피부병이 나았다고 전해진다. [사진=이경구]
목욕소. 세조 임금이 목욕하고 피부병이 나았다고 전해진다. [사진=이경구]

길옆으론 쭉쭉 뻗어 오른 나무숲이 펼쳐진다. 대자연과 호흡하며 때 묻은 잡념이 휘발돼 날아가고 머리도 청아해진다.

세조가 목욕하며 몸의 종기가 깨끗이 나았다는 맑은 목욕소를 지나면 바로 세심정(洗心亭)이다. 씻을 세(洗) 마음 심(心). 세속을 떠난 산에서 마음을 씻는 정자란 뜻이다. 내려오는 길에 세수라도 한번 하리라.

세심정 휴게소까지 콘크리트길이 한참 이어지지만 급한 오르막은 없다.

‘이뭣고다리’를 건너 용바윗골로 접어들면 여기서부터 본격적인 등산길이다. 이멋고다리라는 재미있는 이름이 붙어 한 번 더 뇌어 본다.

[사진=이경구]
문장대 표지석. [사진=이경구]

다리를 건너 조금 더 오르면 복천암이 나오고 용바윗골 휴게소에 도착한다. 산길을 재촉해 깔딱고개를 오르니 보현재 휴게소가 나온다. 뭔 국립공원 산속에 민간휴게소가 군데군데 있는지 조금 의아스럽다.

냉천골로 접어들어 급경사를 오르니 널찍한 안부가 나오며 위쪽으론 기암이 솟구치니 속리산 문장대다. 가파른 철계단을 밟고 문장대 바위마루에 올라서니 거침없는 조망에 압도당한다.

[사진=이경구]
문장대로 오르는 철계단. [사진=이경구]

백두대간 속리산의 줄기가 한눈에 다 들어왔다. 그리고 겹겹이 에워싼 수많은 산 능선이 이어지는 모습은 마치 살아 움직이는 듯 출렁거린다. 속리산 주봉은 천왕봉이지만 속리산하면 문장대로 상징되는 이유다.

코끝에 와 닿는 된바람(북풍)의 청량함을 느끼며 다리쉼을 마치고 철계단을 내려와 능선을 이어가고 오르막과 내리막길을 반복해 문수암을 지나면 얼마간의 걸음걸이에 신선대휴게소를 만난다. 휴게소는 개인 음식점. 산객의 배낭은 필요 없고 지갑만 가져오면 되는 산인가? 고개를 갸우뚱해보며 발걸음을 재촉한다.

[사진=이경구]
속리산 능선이 한눈에 들어오는 문장대 조망. [사진=이경구]

신선대에서 경업대로 내려가는 길은 급경사다. 장관을 이루는 암릉이 겹쳐지고 바위들의 곡선을 구경하며 걷다 보면 어렵지 않게 경업대 갈림길에 닿는다.

정묘호란 병자호란 난세를 극복한 조선을 대표하는 임경업(林慶業) 장군이 속리산에 들어와 7년간 무예연마를 연마한 곳이 경업대다. 장군의 이름을 딴 경업대의 넓은 암반에 서면 거대한 바위들이 머리에 하늘을 얹고 암봉으로 이루어진 속리산의 주능선이 병풍처럼 펼쳐진 명소다.

[사진=이경구]
휴게소에서 조망한 신선대.[사진=이경구]

우람한 바위 무리의 위용과 그 틈에 등 굽은 소나무가 독야청청 비틀리며 꺾여 자란 모습이 푸르고 장하며 구부린 채 하늘을 끌어안은 모습이 신비롭다.

[사진=이경구]
갈라진 바위 틈으로 나가면 관음암과 장군수 약수터가 나온다. [사진=이경구]

경업대를 내려오면 관음암이 있고 계곡으로 1.5Km 내려오면 비로산장을 접하게 되니 곧 세심정이다.

장엄한 겨울산에 가슴을 맞닿고 산을 내려오니 청정한 자리에 천년을 지키고 있는 법주사가 말없이 반긴다. ‘법이 편히 안주할 수 있는 절’ 법주사. 553년 창건됐다하니 1467살의 나이를 가진 천년고찰이리라, 이 땅에 미륵 신앙을 심은 요람이다.

[사진=이경구]
관음암 뜰에 놓인 석탑이 온몸으로 세월을 맞고 있다. [사진=이경구]

산행에 다리가 후들거려 여유롭게 둘러보진 못하지만 우리나라 유일의 목탑 팔상전과 통일신라 조각의 유려함이 손꼽히는 쌍사자석 등 국보 3점, 팔작지붕의 2층 전각인 대웅보전 등 보물 12점, 지방유형문화제 23점 등 신라시대 처음으로 법등을 밝힌 역사문화의 보고로 불리어도 손색이 없는 유서 깊은 사찰이다

[사진=이경구]
경업대에 본 입석대. 열린 돌 위에 비석처럼 우뚝선 돌(1016m)은 임경업 장군이 7년 수도 끝에 세운 것으로 전해진다. [사진=이경구]

도는 사람을 멀리하지 않는데(道不遠人)
사람이 도를 멀리하고(人遠道)
산은 속세를 떠나지 않는데(山非離俗)
속세가 산을 떠난다(俗離山)

신라시대 최치원이 남긴 시 ‘속리(俗離)는 속세를 떠난다’는 의미를 되새겨 품어보며 서서히 감겨오는 어둠마저 감미롭게 다가오는 것은 성취감 때문일까. 속리산 산행을 마치고 자동차 시동을 켠다.

[사진=이경구]
범종의 나무공이에 세월의 더께가 가득하다. [사진=이경구]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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