바람과 눈이 만드는 기기묘묘한 곡선의 미학…대관령 선자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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바람과 눈이 만드는 기기묘묘한 곡선의 미학…대관령 선자령
  • 이경구 사진작가
  • 승인 2020.01.09 13: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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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경구 사진작가의 산행일기]⑩ 겨울이 겨울답게 남아있는 은빛의 설국
숲은 하얀 솜이불을 덥고 고요한 휴식에 잠겨있다. [사진=이경구]

어떤 꽃이 이보다 더 고울 수 있을까. 겨울산 나목에 순백의 눈꽃과 상고대(서리꽃)가 눈부시게 피었다. 자연이 빚은 하얀 산호초를 보는 듯한 순백의 장관에 빠져든다.

겨울이면 환상적인 설원의 정취가 연출되는 선자령(1157m) 트레킹에 나선다. 사계절 모두 아름다운 선자령은 대관령과 강릉시로 이어진 큰 고개다. 산(山)이나 봉(峰)이 아닌 재 령(嶺)자를 쓴 고갯길. 강릉으로 가기 위해 굽이굽이 넘나들던 옛길이다. 우리나라 등줄기 백두대간 주능선 우뚝 솟아 장쾌한 맛이 있고 동해바다가 조망되는 탁월한 전망대다.

동안거에 깊이 들어 묵언 수행 중인 설산을 보면 산객의 마음도 정화된다. [사진=이경구]

순백의 설산 하얀 동화 나라에 가는 첫 출발점은 대관령 휴게소다. 등짐 옆주머니 보온병엔 뜨거운 커피를 담고 행동식도 열량이 높은 놈들로 넉넉히 넣었다. 소매와 목, 손과 얼굴 등이 바람에 노출되지 않도록 옷깃을 여미고 매무새를 가다듬는다. 스패츠와 체인젠을 장착한 후 슬렁슬렁 발을 내딛는다.

대관령에서 선자령 가는 길은 전망대 방향 능선길과 양떼목장쪽 계곡길이 있지만 순환되는 코스이니 어느 길을 택해도 좋다. 약10.8km. 4시간 정도면 왕복할 수 있다.

초입인 대관령 휴게소가 832m. 정상(1157m)과의 표고차는 마을 뒷산 정도인 325m에 불과해 공짜 기분이 드는 산행길이다.

등산화 까지만 묻히는 적당한 적설량이다. [사진=이경구]

휴게소 뒷편 임도를 따라 오르면 갈림길이 있는데 국사성황길과 KT송신소 길이다. KT 길이 걷는 재미와 전망이 좀 더 있는 편. KT통신중계소를 지나면서 본격적인 산행길이 이어진다. 부지런한 산객이 친절하게 러셀을 남겨 놓았다.

길 위에는 새하얀 눈이 소복하다. [사진=이경구]

사박사박 눈길을 걸으며 눈꽃에 빠져 약 50분 정도 걷다보면 선자령 최고의 조망지 새봉 전망대에 닿는다. 사방이 터져 산이 산을 업고 출렁인다. 동쪽으론 강릉 시내와 동해바다가 내려다보이는 전망도 일품이다.

앙상한 겨울나무가 온몸을 꽃꽃이 세워 겨울풍경을 거들고 있다. [사진=이경구]

오르락내리락 눈 덮힌 산길에 순백의 눈꽃이 핀 겨울가지 사이로 파란 하늘이 쨍쨍하다. 한겨울을 밟으며 걷는 길은 능선 따라 완만하고 순하지만 선자령 칼바람은 윙윙대는 소리를 내며 키 작은 잡목들과 구상나무 잔가지를 흔든다.

살을 에며 휘몰아친다는 표현이 맞을 듯한 소용돌이 겨울바람은 그대로 일진광풍이다. 몸이 꼬꾸라질 듯 휘청거린다. 바람과 눈이 만나 설원은 기기묘묘한 곡선의 미학을 연출한다.

선자령의 칼바람은 매몰차다. 바람이 남긴 상처의 흔적에 콧물을 훌쩍인다. [사진=이경구]

정상능선은 광활한 고원인 바람의 언덕이다. 능선에 연이어 길게 늘어서 있는 선자령의 명물 풍력 발전기가 동해 날선 바람을 맞으며 날개를 돌리고 있다. 가까이 가보면 거대한 몸집에 압도되며 사뭇 이국적인 풍경이 연출된다.

흡사 바람을 갉아대듯 웅~웅 거리며 괴물같은 크기의 위용을 뽐내는 풍력발전기. [사진=이경구]

선자령 정상, 우뚝 솟은 정상석을 껴안아 본다. 정상석 뒷편엔 백두대간을 표시한 산경표가 우람한 돌에 새겨져 춥고 고독한 정상을 지키고 있다.

기록사진을 한 장 남기고 하산길은 서쪽 하늘목장 사거리로 내려와 계곡길을 택한다.

선자령 정상석 뒷편엔 백두대간 산경표가 새겨져 있다. [사진=이경구]

키낮은 주목들이 다닥다닥 붙어서서 마치 그 모습이 겨울병정 같다. 어느 나무는 하얀 옷을 두르고 쓰러지듯이 누워 있다. 선자령의 거센 바람을 증언해 주는 듯하다. 이리저리 사방 눈(目) 아래 보이는 건 눈 덮힌 산과 하얀 산봉우리뿐이다. 산객의 마음도 더불어 맑고 하얀 마음이 되어 즐겁다.

소복히 쌓여 하얀 눈꽃 옷을 입은 숲. [사진=이경구]

재궁골 삼거리까지 여유로운 걸음이다. 선자령에서 약 40분 걸린 듯하다. 이후 풍해조림지 까지 살짝 오르막이며 삼거리에서 양떼목장으로 걷는다. 목장 그물망 펜스를 따라 300m 하산하면 날머리대관령휴게소 주차장 원점회기 산행이 끝난다. 총 11km로 약 4시간이 걸렸다.

계곡길 따라 맑은 물줄기와 흐르는 물소리가 지친 산객의 기분을 돋우어 준다. [사진=이경구]

오늘 산행은 오름이 아닌 조망과 감상이었다. 남한의 지붕이라 일컬어지는 대관령 선자령은 역시 겨울이 겨울답게 남아있는 은빛의 설국이었다. 겨울이 되면 높은 몸값을 하는 선자령의 이유다.

바닷속 산호를 전부 옮겨 놓은 듯 눈꽃이 눈부시다. [사진=이경구]

땅의 색은 온데간데없이 순백의 풍경만 펼쳐진 선자령. 눈 안에 들어온 하얀 눈은 마음의 눈까지 씻어주고 뽀드득 뽀드득 소리는 시린 귀를 맑음으로 틔워준다. 산군들의 등짐을 싸게 하는 겨울 산행의 맛이다

은빛 단장한 나뭇가지에 싸륵싸륵 내려 앉아 꽃이 핀것처럼 아름답다. [사진=이경구]

장엄한 대자연의 파노라마에서 오늘도 산의 묵직함을 배웠다. 지난해 어둠의 기억들 모두 선자령 눈밭에 파묻고 순백의 마음과 새로운 발자국을 다짐하면서 등산화를 벗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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