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뢰헬의 ‘바벨탑’을 통해 본 신자유주의의 균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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브뢰헬의 ‘바벨탑’을 통해 본 신자유주의의 균열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4.10.30 08: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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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브뢰헬의 ‘바벨탑’.

후기인상파 화가인 폴 고갱이 프랑스 주식거래소의 직원이었다는 사실은 익히 알려져 있다.

고갱은 처음부터 전업화가가 아니었다. 그는 취미로 미술작품을 수집하고 그림을 그리던 화가였다.

그러나 1882년 갑자기 들이닥친 프랑스 주식시장의 붕괴로 대표되는 유럽의 장기 대침체 시대는 고갱을 화가의 길로 인도했고 현실을 떠나 타히티에서 활동하게 되는 계기를 제공했다.

대부분의 예술작품들이 그렇듯이 미술작품 역시 현실과 동떨어질 수 없다. 미술작품을 경제학적 관점에서 해석하는 것 역시 가능하다는 것이다.

미술작품을 그린 화가의 삶 또한 먹고 사는 경제적인 문제에서 벗어날 수 없기 때문에 화가가 그리는 미술작품에는 이미 화가의 경제적 상황이 표현될 수밖에 없다.

즉 화가가 미술작품을 그릴 당시의 경제상황을 이해하는 것은 미술을 이해하는 하나의 방법이다.

가장 감성적인 미술 작품 활동과 가장 이성적인 경제학의 조합은 어쩌면 어색하다. 하지만 익숙한 대상을 색다르게 볼 때 전혀 예상치 못했던 새로운 생각과 지식을 습득하게 된다.

최병서 동덕여대 경제학과 교수가 펴낸 『경제학자의 미술관』(한빛비즈)은 이질적으로 보이는 미술과 경제학이라는 두 개의 주제를 통섭하고 있다.

명화를 감상하는 경제학자의 눈을 통해 때론 화가의 눈을 통해 미술과 경제학을 보는 새로운 프레임을 제공한다.

구약성경에 나오는 바벨탑 이야기를 그린 브뢰헬의 ‘바벨탑’을 보면서 최 교수는 세계화에 대해 생각한다.

그림에 등장한 한 무리의 사람들을 탑의 건축을 명령한 니므롯 왕과 일행들로 추측한 최 교수는 특히 왕의 뒤에 회색 가운을 입은 성직자 같은 사람은 ‘회색수사’라고 불리던 시토 수도회를 표현한 것으로 해석한다.

브뢰헬 시대에 수사와 같은 종교가의 책무는 모든 사회구성원들에게 명확한 가치관을 제시하고 윤리적이고 경제적인 행동원칙을 마련하는 것이었다.

그림 속 성직자의 현대적 후계자는 바로 밀턴 프리드먼이라고 최 교수는 단언한다.

밀턴 프리드먼은 세계화를 지향하는 신자유주의의 이론적 기초를 제공한 경제학자다. 그가 중심이 된 통화주의를 신봉하는 시카고학파는 ‘통화주의학파 수도회’쯤으로 불릴 만하다.

이에 따른 철저한 경쟁적 시장자본주의의 결과 빈부격차는 극도로 심화돼 2000년경 최고경영자의 보수는 일반 노동자의 475배에 달한다는 통계도 있다.

16세기 노동자들의 생활상 역시 대단히 열악했다. 그 당시 한 가족이 1년 동안 생활하는 데 필요한 금액은 65굴덴 정도였는데 이 금액을 벌기 위해서는 1년 내내 일해야 하며 아파서도 안 되고 전쟁도 없어야 했다.

또한 왕 앞에 무릎을 꿇은 석공 장인은 바로 브뢰헬 자신이다. 그는 격변과 혼란의 시대를 화폭에 담아 사회적 메시지를 왕에게 보이지만 정작 자신은 겸손한 태도를 보이고 있다.

 

그는 교묘한 미디어 방식으로 사회풍자의 메시지를 표현했다. 이는 혼돈의 시대에서 살아남는 그만의 방법이었다.

최 교수는 바벨탑의 밑동을 보면 건축물의 아래 한부분이 무너져 내렸고 반석에는 균열이 보인다며 이미 너무 크고 무겁고 불안정한 건물을 상징한다고 해석한다. 마치 세계화가 급속히 진행되고 있는 현재의 중상층이 급격히 무너지고 있는 현실을 보여주고 있는 듯하다는 것이다.

책에는 ‘바벨탑’ 이외에도 밀로의 ‘비너스’, 베르메르의 ‘저울을 들고 있는 여인’ 등 명화를 통해 경제학에 접근하는 한편 화가의 눈을 통해 당시의 경제를 바라본다.

가장 현실적인 문제인 경제라는 시선으로 미술작품과 표현기법을 설명함으로써 미술과 경제학이라는 두 마리 토끼를 모두 잡고 있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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