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개 도시의 변모 과정에 담긴 조선의 역사…『도시로 읽는 조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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9개 도시의 변모 과정에 담긴 조선의 역사…『도시로 읽는 조선』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9.04.09 09:0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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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개국으로 새 도읍지로 한양이 결정되면서 개성은 망국의 장소가 된다. 또한 전라감영 소재지였던 전주는 지방통치의 중심지로 행정도시의 모습을 갖추게 되고 제주는 소멸되어가는 신화의 생명력과 신화의 문화적 가치를 지난 신비의 섬으로 재발견된다.

평양은 탐관오리의 대명사가 된 평안감사 이야기로 도시의 공간적 특징이 부여되고 국운이 쇠퇴하기 시작한 조선 말기 한양은 경성으로 명칭이 바뀌어 식민지의 수부이자 근대화의 중심지로 재탄생한다.

역사의 흐름에 따라 특정한 가치와 의미가 부여되는 공간은 장소로 변모하고 사는 이들의 애정이 스며든다.

규장각한국학연구원이 펴낸 열네 번째 총서 『도시로 읽는 조선』(글항아리)은 이처럼 역사 흐름이 새겨지는 장소로서의 공간을 이야기한다. 한반도라는 지리 공간을 분할하고 있는 지역 또는 도시들이 어떻게 역사 속에서 특별한 장소가 됐는지를 보여주고 있다.

책은 조선의 새 도읍인 한양을 출발해 옛 고려의 도읍 개성과 두문동을 거쳐 남쪽으로 내려가 전주, 변산, 제주를 둘러보고 다시 평양, 인천, 원산에서 경성 등 모두 9개 도시를 9명의 저자가 탐색한다.

흥미로운 점은 전라북도 부안에 자리한 작은 반도인 변산이 포함돼 있다는 것이다. 변산은 아담한 규모에도 자연 풍광이 뛰어나 조선시대에도 사람 살기에 참 좋은 곳이었다. 그러나 이 땅은 학자를 키워내기에는 적합하지 않았던 듯하다. 풍광이 좋은 곳에서 고요히 지내려는 사대부도 있었지만 대부분 변산을 삶의 터전으로 선택하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런데 17세기에 학계의 문제적 인물이 이곳에 스며들었다. 세상사를 등지고 변산을 찾은 허균이다.

이 무렵 허균은 관료, 유자(儒者)들과 갈등을 빚으며 배척받고 있었다. 감정에 충실하며 불교와 도교를 넘나드는 등 자유분방한 태도를 보여온 허균을 시기하는 이들이 적지 않았을 것이다. 현실 정치에 대한 준열한 경고를 담은 「호민론(豪民論)」과 조선의 지배질서를 비판하는 『홍길동전』은 이 시기에 쓰여진 것으로 알려져 있다. 비록 반년이 못 되어 변산반도를 떠났지만 17세기 반항아였던 허균의 숨결이 강렬하게 남아 있다는 점에 주목하고 있는 것이다.

전통문화의 ‘보고’라 칭하는 전주는 전라도의 감영 소재지이자 조선시대의 대표적인 행정도시다. 당시 이 지역을 순행했던 관찰사들의 기록을 통해 감영의 시설, 인적 구성, 문화 그리고 경제 규모 등 지방 행정의 전반을 파악할 수 있다.

책의 후반부에는 조선이 쇠퇴하고 근대에 접어들면서 나타나는 공간적 변화들이 탐색되고 있다. 그중 원산은 19세기 후반 인천과 함께 개항장이자 일본인 거류지로 조성된 도시라는 점에서 주목받고 있다.

원산은 1880년 5월20일 일본영사관 직원과 상인 등 200여명이 도착하면서 원산항 시가지 건설이 본격화됐다. 1879년 7월 조선은 원산항 개항을 허가하고 일본인 거류지를 설치했다. 초기에는 다른 외국인은 거주할 수 없었지만 1884년 조선과 영국이 통상 조약을 체결하면서 ‘최혜국 조항’에 따라 각국의 외국인이 개항장에 거류할 수 있게 된 것이다. 청국인은 1888년 4월 청국인 거류지가 따로 설치될 때까지 일본인 거류지에 함께 거주했다.

원산항이 발달하면서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로 부상해 유입되는 인구가 늘어났다. 이 과정에서 원산을 동서로 가로지르는 적전천을 기준으로 위쪽에는 일본인 거류지, 아래쪽에는 조선인 마을이 정착됐다. 공간의 민족적 분리가 이뤄진 것이다.

개항 초기에는 조선인 마을의 시장이 발달하면서 경제가 활성화되고 호황 산업이 등장했다. 그러나 강제 병합 뒤 시가지가 급격하게 발전하면서 상대적으로 조선인 마을은 일본인 거류지에 종속돼 더욱 궁핍해졌다. 이는 조선인의 일본인에 대한 민족적·계급적 갈등을 부추기는 계기로 작용해 훗날 항일운동의 배경이 된다.

이처럼 시간의 상흔과 삶의 족적이 각인된 도시는 탐구해 읽는 이가 딛고 서 있는 현재의 공간에서 생생한 역사가 확인된다.

저자들은 “도시 공간을 거닐며 역사의 흔적을 느끼고 역사적인 장소들의 현재를 확인하는 것은 현대인들이 도시를 여행하는 큰 즐거움 가운데 하나일 것”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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