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베 짜는 여인의 수고 생각하고 농사짓는 농부의 노고 생각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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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베 짜는 여인의 수고 생각하고 농사짓는 농부의 노고 생각하라”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9.02.15 08:1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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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12강 성심편(省心篇) 하(下)…마음을 살펴라③
▲ 단원 김홍도의 ‘길쌈’.

[명심보감 인문학] 제12강 성심편(省心篇) 하(下)…마음을 살펴라③

[한정주=역사평론가] 高宗皇帝(고종황제) 御製曰(어제왈) 一星之火(일성지화)도 能燒萬頃之薪(능소만경지신)하고 半句非言(반구비언)도 誤損平生之德(오손평생지덕)이라 身被一縷(신피일루)나 常思織女之勞(상사직녀지로)하고 日食三飱(일식삼손)이나 每念農夫之苦(매념농부지고)하라 苟貪妬損(구탐투손)이면 終無十載安康(종무십재안강)이요 積善存仁(적선존인)이면 必有榮華後裔(필유영화후예)니라 福緣善慶(복연선경)은 多因積行而生(다인적행이생)이요 入聖超凡(입성초범)은 盡是眞實而得(진시진실이득)이니라.

(고종황제가 어제(御製)에서 말하였다. “한 점의 불씨라고 해도 수만 평의 땔나무를 태울 수 있고 반 마디 그릇된 말이라고 해도 잘못되면 평생의 덕(德)을 허물어뜨릴 수 있다. 몸에 한 올의 실오라기를 걸쳤더라도 항상 베 짜는 여인의 수고를 생각하고, 하루 세끼 밥을 먹더라도 늘 농부의 노고를 생각하라. 구차하게 재물을 탐하고 다른 사람을 시기해 해친다면 마침내 오랜 세월 안녕하지 못할 것이요, 선한 행동을 쌓고 어진 마음을 보존한다면 반드시 후손들에게 영화가 미칠 것이다. 복된 인연으로 경사(慶事)가 찾아오는 것은 착한 행동이 많이 쌓여서 생겨나는 것이요, 범인(凡人)의 수준을 뛰어넘어 성인(聖人)의 경지로 들어서는 것은 바로 진실함과 성실함을 다하는 데서 얻어지는 것이다.”)

중국사에서는 송나라를 북송(北宋) 시대와 남송(南宋) 시대로 구분하고 있다.

960년 후주(後周) 금군의 총사령관인 조광윤은 부하 병사들의 추대로 황제의 자리에 올라 송나라를 건국한다. 그러나 송나라는 167년 후인 1127년 여진족이 세운 금(金)나라에 의해 수도 개봉(開封)이 철저히 약탈당하고 제8대 휘종 황제와 제9대 흠종 황제를 비롯해 수 천 명이 포로로 끌려가게 된다.

중국사에서는 이 사건을 ‘정강의 변’이라고 부른다. ‘정강의 변’ 이후 송나라는 결국 멸망하게 된다.

그런데 흠종과 휘종 황제가 금나라에 끌려간 이후 흠종의 아우 강왕(康王)이 강남 임안(臨安: 지금의 항주)에 도읍을 정하고 송나라를 재건했다. 송나라를 재건한 강왕이 바로 『명심보감』의 엮은이가 인용하고 있는 어제(御製)의 주인공인 고종(高宗)이다.

이때부터 조광윤이 세운 통일 왕조 송나라를 북송이라고 부르고, 고종이 금나라에 의해 남쪽으로 쫓겨 난 이후 재건한 송나라를 남송이라고 부르게 되었다.

그렇게 고종은 남송의 초대 황제가 되었다. 정강의 변 직후인 1127년 황제에 즉위한 고종은 1162년 황제의 자리에서 물러나 태상황이 되고, 1187년 81세의 나이로 세상을 떠났다.

기울어진 국운을 다시 일으키기 위해 남송 건국 후 고종은 강병책(强兵策)을 중시했지만 개인적으로는 시가(詩歌)와 문장에 매우 뛰어난 재주를 보였다. 여기 ‘어제’만 보아도 고종의 시문 실력을 짐작해볼 수 있다.

그런데 흥미롭게도 고종이 태어난 해인 1107년 사망한 북송의 대학자 정이천(程伊川)에게서도 이와 비슷한 맥락의 가르침을 찾아볼 수 있다. 정이천은 이렇게 말했다.

“농부는 무더위와 한겨울에 열심히 경작하여 내가 이 곡식을 먹고, 공인이 어렵게 기물을 만들어 내가 이를 사용하고, 군인이 갑옷을 입고 병기를 들고 지켜 내가 편안히 지낼 수 있는데, 다른 사람들에게 은택을 주지 못하고 그럭저럭 세월만 보낸다면 ‘하늘과 땅 사이의 한 마리 좀 벌레’ 같은 존재이다.” (김건우, 『옛사람 59인의 공부산책』, 도원미디어, 2003. 37쪽에서 재인용)

정이천의 말은 “항상 베 짜는 여인의 수고를 생각하고, 늘 농사짓는 농부의 노고를 생각하라”는 고종의 가르침에서 한 발 더 나아가 여인이 수고를 다한 베로 만든 옷을 입고 농부가 노고를 다한 곡식을 먹고 편안히 지내는 은택(恩澤)을 입고 있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어떤 은택도 주지 못하는 사람은 ‘일두(一蠹)’, 곧 사람이 아닌 한 마리의 좀 벌레에 불과할 뿐이라며 힐책하고 있다.

사람이라면 마땅히 베 짜는 여인의 수고와 농사짓는 농부의 노고를 생각하여 어떻게 은혜를 갚을지를 생각해야 할 뿐만 아니라 또한 나는 무엇으로 다른 사람에게 혜택을 베풀지를 생각해야 한다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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