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달아날수록 되살아나는 재창조의 문학”…『사라진 책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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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멀리 달아날수록 되살아나는 재창조의 문학”…『사라진 책들』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9.01.22 15:2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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한때 존재했으나 이제 더 이상 찾을 수 없게 된 책들이 있다. 대다수 다른 작품들처럼 읽은 사람들의 기억에서 희미해지고 문학사에서 제외되다가 저자의 존재와 더불어 사라지는 망각된 책들이 아니다.

미망인에 의해 파괴된 로마노 빌렌치의 미완성 소설, 리옹 역에서 도난당한 여행 가방과 함께 사라진 헤밍웨이의 초기 작품들, 스캔들을 두려워한 주변 사람들이 불에 태워버린 바이런의 회고록 등 누군가 보거나 읽어본 적도 있지만 그 뒤에 파괴되었거나 흔적도 없이 사라진 책들을 말한다.

신간 『사라진 책들』(뮤진트리)은 작가의 고집이, 운명이, 사회가, 역사가 사라지게 만든 여덟 권의 책들의 경로를 탐색하며 우리 안에서 어떻게 되살아나는지를 보여준다.

저자 조르지오 반 스트라텐은 전설로 남을 여덟 권의 책을 찾아 피렌체에서 런던으로, 1920년대 프랑스를 지나 러시아로, 나치 점령하의 폴란드로, 캐나다 벽촌으로 누비고 다니며 사라진 책들에 얽힌 비극적이고 안타까운 이야기들을 추리소설처럼 흥미롭게 소개한다.

조지 고든 바이런과 실비아 플라스의 작품을 찾아 영국으로, 헤밍웨이가 살던 1920년대 프랑스를 지나 니콜라이 고골이 살았던 러시아로, 발터 벤야민이 자신의 운명으로부터 도망치려 했던 스페인 국경에서 브루노 슐츠가 총에 맞아 죽었던 나치 점령지 폴란드로, 맬컴 라우리가 피신했던 캐나다 벽촌으로 이동하면서 숨어있던 진실을 발견하고 생각지도 못한 연결점들을 찾아낸다.

저자는 인간이 쓴 글을 보존할 수 있는 수단이 종이밖에 없던, 우리 시대 이전의 두 세기를 다루고 있다. 한편 가상 수단에 의지해 책을 보존할 수 있는 오늘날, 비물질성이 옛날식 종이만큼이나 위태로울 수 있다고 이야기하고 있다.

단어들이 실린 배들, 누군가 알아보고 자신의 항구에 안전하게 받아들여주기를 희망하며 우리가 바닷물에 띄우는 그 배들이 우주 가장자리에 떠 있는 우주선처럼 빠른 속도로 우리로부터 멀어지면서 무한한 공간 속으로 사라질 수도 있다고 역설하고 있다.

그는 이 책의 서문에 ‘땅이 더이상 없어도 땅에 대한 기억이 있으면 지도를 만들 수 있다’는 앤 마이클스의 글을 인용하며 사라진 책들이 우리에게 “읽지 않은 사람들에게 그 책들을 상상하고, 그 책들에 대해 이야기하고, 그 책들을 다시 지어낼 가능성”을 유산처럼 남겨준다는 사실에 주목하고 있다.

결국 잃어버린 여덟 권의 책들이 우리에게서 멀리 달아날수록 우리 안에서 다시 살아난다는 것을 일깨워주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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