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가오는 앞일은 알 수 없고, 바닷물 양은 헤아릴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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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다가오는 앞일은 알 수 없고, 바닷물 양은 헤아릴 수 없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10.19 08: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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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11강 성심편(省心篇) 상(上)…마음을 살펴라⑲
▲ 권력욕으로 임신한 애첩을 초나라 고열왕에게 바친 춘신군(왼쪽)과 상아 젓가락을 통해 주왕(紂王)의 폭군이 될 기미와 조짐을 내다본 기자(箕子).

[명심보감 인문학] 제11강 성심편(省心篇) 상(上)…마음을 살펴라⑲

[한정주=역사평론가] 太公曰(태공왈) 凡人(범인)은 不可逆相(불가역상)이요 海水(해수)는 不可斗量(불가두량)이니라.

(태공이 말하였다. “평범한 사람은 다가올 자신의 운명을 점칠 수 없고 바닷물의 양은 한말 두말로 측량할 수 없다.”)

제(齊)나라의 맹상군, 조(趙)나라의 평원군, 위(魏)나라 신릉군 그리고 초(楚)나라의 춘신군 등을 가리켜 전국시대 말기 한 시대를 풍미하고 호령했다고 해 이른바 ‘전국시대 사공자(四公子)’라고 부른다.

이 중 춘신군은 초나라의 재상으로 최고의 권세를 누렸다. 그런데 그가 섬긴 초나라의 고열왕은 아들을 낳지 못했다. 이때 이원이라는 자가 춘신군을 찾아와 자신의 여동생을 애첩으로 바쳤다.

얼마 지나지 않아 그 여동생은 춘신군의 아이를 임신했다. 그런데 임신 사실을 안 이원은 춘신군에게 자신의 여동생을 고열왕에게 바치자고 제안했다.

만약 춘신군과 여동생 사이의 아이가 초나라 왕의 아이라고 속일 수 있다면 춘신군의 아이가 차기 왕이 되기 때문에 영원히 권력과 부귀영화를 누릴 수 있다고 유혹한 것이다.

춘신군은 이원의 제안을 받아들여 자신의 애첩을 고열왕에게 바쳤다. 얼마 후 그 애첩은 사내아이를 낳았다. 그 사내아이는 초나라의 태자가 되고 춘신군의 애첩은 왕후의 자리에까지 올랐다.

그런데 이때부터 이원은 다른 마음을 먹게 된다. 혹시라도 춘신군의 입에서 비밀이 새나가면 자신은 물론 여동생과 태자까지 큰 봉변을 당하지나 않을까 전전긍긍한 나머지 춘신군을 죽일 결심을 하고 비밀리에 군사들을 양성했다.

춘신군이 재상이 된지 이십 오년이 되던 해 고열왕이 병에 걸려 눕게 되었다. 당시 주영이라는 사람이 춘신군을 찾아와 이렇게 말했다.

“세상에는 예기치 않게 복이 찾아오기도 하지만 또한 생각지도 못한 재앙이 찾아오기도 합니다.”

이에 춘신군은 무엇이 ‘예기치 않은 복’인지 물었다. 주영은 “그대는 사실상 초나라의 왕이나 다름없습니다. 초나라 왕은 얼마 지나지 않아 숨을 거둘 것입니다. 그렇게 되면 그대는 어린 임금을 도와 나랏일 한다는 명분을 앞세워 초나라를 차지할 수 있을 것입니다. 이것이 예기치 않게 찾아온 복입니다”라고 말했다.

춘신군은 다시 ‘생각지도 못한 재앙’이란 무엇인지 물었다. 주영은 “이원은 그대 때문에 자신이 권력을 잡지 못할까봐 염려하고 있습니다. 그는 그대를 원수로 여겨서 오래 전부터 죽음을 각오한 용맹한 군사들을 훈련시키고 있습니다. 지금 병으로 누워 있는 왕이 죽으면 이원은 반드시 당신을 죽이고 말 것입니다. 이것이 생각지도 못한 재앙입니다”라고 답변했다.

그러나 자신의 권세에 취해 교만함에 빠져있던 춘신군은 이원은 겁 많고 나약한 사람이라면서 주영의 말을 받아들이지 않았다. 이때로부터 십칠 일 후 고열왕이 사망하자 주영이 예측한 대로 이원은 극문(棘門) 안에 자신이 비밀리에 훈련시킨 군사들을 숨겨놓고 춘신군을 기다리다 그 머리를 베어 극문 밖으로 내던져버렸다. 그리고 그 즉시 관리를 보내 춘신군의 가문을 몰살시켰다.

사마천은 일찍이 춘신군이 진(秦)나라 소왕을 설득해 초나라 태자를 돌아오게 한 일에 대해 “얼마나 뛰어난 지혜인가?”라면서 극찬을 아끼지 않았다. 그러나 또한 춘신군은 권세에 취해 교만해지고 늙어서 사리판단이 어두워진 탓에 눈앞에 다가오는 재앙을 알려주어도 알아채지 못했다고 비판했다.

그런 의미에서 아무리 뛰어난 지혜와 식견을 갖춘 사람이라고 해도 권세에 취하고 사리판단이 어두워지면 눈앞에 닥친 재앙도 알지 못하는 범부(凡夫)의 신세로 전락하고 만다는 사실을 알아야 한다.

그렇다면 평범한 사람의 수준을 뛰어넘어 자신의 운명을 개척했던 사람들은 어떻게 다가올 앞날의 화와 복을 예측하고 대처했던 것일까? 그것은 ‘견소왈명(見小曰明)’, 곧 사소한 데서 나타나는 일의 기미와 조짐을 밝게 헤아리고 살펴서 화와 복을 감지하고 인지한 다음 예측하고 대처한다는 것이다.

예를 들어 은나라의 기자(箕子)는 주왕(紂王)이 아직 사치스럽고 음탕하며 방약무인하고 잔혹 무도한 임금으로 변하기 전에 이미 주왕이 장차 폭군이 될 기미와 조짐을 ‘상아 젓가락’을 통해 내다보았다.

주왕이 상아 젓가락을 만들자 기자는 상아 젓가락을 사용하게 되면 그것에 걸맞게 흙그릇이 아닌 무소뿔과 옥으로 만든 그릇을 찾게 되고, 무소뿔과 옥으로 만든 그릇을 사용하게 되면 그것에 걸맞게 다시 채소나 나물이 아닌 희귀하고 맛있는 짐승의 고기를 찾게 되고, 희귀하고 맛있는 짐승의 고기를 먹게 되면 그에 걸맞게 검소한 옷과 초가집에 살려고 하지 않고 반드시 비단옷을 두르고 고대광실에서 살려고 한다고 하면서 시작은 상아 젓가락이지만 마지막으로 고대왕실을 지어서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마음껏 누리려고 할 것이라고 내다보았다.

이렇게 되면 호화롭고 사치스러운 생활을 위해 백성의 고혈을 빨게 되고, 백성의 고혈을 빨게 되면 점점 방약무인하고 잔혹 무도한 임금으로 변하게 되고, 방약무도하고 잔혹 무도한 임금으로 변하게 되면 마침내 백성의 마음이 돌아서고, 백성의 마음이 돌아서면 나라는 보존하기 어렵게 되고 만다.

기자는 주왕이 상아 젓가락을 만든 아주 사소한 일에서 나라가 멸망하는 기미와 조짐을 보았다. 실제 주왕은 기자가 예측한 앞날의 재앙처럼 폭군이 되어 은나라를 멸망의 나락으로 몰아넣었다.

그럼 이렇게 앞날을 내다본 기자는 어떤 방법으로 폭군 주왕으로부터 재앙을 피할 수 있었을까? 처음 그는 주왕에게 잘못을 고치라는 충언과 간언을 적극 올렸다. 그러나 주왕이 자신의 충고를 듣지 않고 오히려 더욱 음탕하고 오만하며 잔혹 무도하게 행동하자 일부러 머리를 풀어헤치고 미친 척해 스스로 감옥에 갇히는 신세가 되었다. 그 후 무왕이 폭군 주왕을 정벌하고 새로이 주나라를 세우자 기자는 감옥에서 풀려날 수 있었다.

이렇듯 옛 성현(聖賢)들은 일의 기미와 조짐을 밝게 살펴서 예측하기 힘든 앞날의 화와 복을 내다보았기 때문에 자신의 운명을 개척할 수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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