학문의 네 가지 방법…“박학(博學)·독지(篤志)·절문(切問)·근사(近思)”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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학문의 네 가지 방법…“박학(博學)·독지(篤志)·절문(切問)·근사(近思)”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8.23 07:5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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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9강 근학편(勤學篇)…부지런히 배워라①

[명심보감 인문학] 제9강 근학편(勤學篇)…부지런히 배워라①

[한정주=역사평론가] 子夏曰(자하왈) 博學而篤志(박학이독지)하고 切問而近思(절문이근사)하면 仁在其中矣(인재기중의)니라.

(자하가 말하였다. “널리 배우고, 뜻을 돈독히 하며, 간절하게 묻고, 가까운 것에서부터 생각해나가면 인(仁)이 그 가운데 있다.”)

여기 자하의 말은 『논어』 <자장(子張)> 편에서 나온다. 『논어』 하면 대개 공자의 언행록이라고 알고 있지만 이 책에는 공자의 언행만이 기록되어 있지 않다.

『논어』의 내용은 첫째 공자의 말, 둘째 공자와 제자 간에 오간 대화, 셋째 공자와 주변 사람들 간의 대화, 넷째 제자들의 말, 다섯째 제자들 사이의 대화 등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그런데 이상하리만치 공자의 제자들 가운데 자하의 말이 많이 등장한다. 그 이유는 무엇일까? 바로 『논어』의 제작 및 편찬 과정과 관련이 있다.

『논어』는 공자 사후 제작·편찬된 책으로 공자 자신이 직접 저술한 책이 아니다. 그렇다면 누가 『논어』를 제작·편찬했을까? 여기에 대해서는 네 가지 설이 있다.

첫째는 자하를 중심으로 해서 공자의 제자들이 주도했다는 설이다. 둘째는 자하와 중궁과 자유 등이 주도했다는 설이다. 셋째는 증삼(증자)의 제자인 악정자춘(樂正子春)과 공자의 손자인 자사(子思) 등의 후학들이 주도했다는 설이다. 넷째는 증삼(증자)과 유자(有子)의 문인들이 주도했다는 설이다.

필자의 견해로는 『논어』에 등장하는 공자의 제자들 중 자하가 차지하고 있는 비중으로 볼 때 자하 또는 자하의 문인들이 이 책의 제작·편찬을 주도했다는 설이 다분히 설득력이 있지 않나 싶다.

어쨌든 여기 『명심보감』에 나오는 박학(博學)·독지(篤志)·절문(切問)·근사(近思)는 유학이 추구하는 학문의 핵심 방법이자 가치라고 할 수 있다.

송나라에 들어와서 기존의 유학을 새롭게 해석한 신유학(新儒學), 곧 ‘성리학’의 바이블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의 제목이 『근사록(近思錄)』이라는 점에 대해서는 앞서 언급한 바 있다. ‘근사(近思)’를 취해 책의 제목을 삼았다는 점만 보아도 자하가 말한 학문의 네 가지 방법이 얼마나 유학자들 사이에서 큰 가치와 의미를 지니고 있었는가를 확인할 수 있다.

한편 여기 자하의 네 가지 방법 이외에 유학자들이 나침반으로 삼았던 학문의 방법이 더 있었다. 그것은 『중용』에서 전하고 있는 다섯 가지 방법이다.

그 첫째 방법은 널리 배운다는 뜻의 ‘박학(博學)’이다. 둘째 방법은 자세히 묻는다는 뜻의 ‘심문(審問)’이다. 셋째 방법은 신중하게 생각한다는 뜻의 ‘신사(愼思)’이다. 넷째 방법은 분명하게 변별한다는 뜻의 ‘명변(明辯)’이다. 다섯째 방법은 독실하게 실천한다는 뜻의 ‘독행(篤行)’이다.

널리 배운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중용』에서는 말한다. “배우지 않는다면 몰라도 배우게 되었다면 능숙하게 될 때까지 그만두지 않는다.” 자세히 묻는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중용』에서는 말합니다. “묻지 않는다면 몰라도 묻게 되었다면 알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않는다.” 신중하게 생각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중용』에서는 말한다. “생각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생각하게 되었다면 깨달아 터득하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않는다.” 분명하게 변별한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중용』에서는 말한다. “변별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변별하게 되었다면 분명하게 밝혀지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않는다.” 독실하게 실천한다는 말은 무슨 의미일까? 『중용』에서는 말한다. “실천하지 않는다면 몰라도 실천하게 되었다면 정성과 성실을 다하지 않고서는 그만두지 않는다.”

다만 『논어』의 네 가지 방법과 『중용』의 다섯 가지 방법을 통해 배우고 익혀서 학문의 뜻을 성취하려고 한다면 반드시 지녀야 할 자세와 태도가 있다. 즉 다른 사람이 한 번 그렇게 할 때 자신은 백 번을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하고, 다른 사람이 열 번 그렇게 할 때 자신은 천 번을 그렇게 할 수 있어야 한다.

만약 그렇게 한다면 아무리 어리석은 사람이라고 해도 반드시 밝아지고 비록 유약한 사람이라고 해도 반드시 강해질 것이다. 한 번 두 번에서 멈추지 않고 백 번을 그렇게 하는데 어떻게 밝아지지 않을 수 있고, 열 번 백 번이 아니라 천 번을 그렇게 했는데 어떻게 강해지지 않을 수 있겠는가.

그런 의미에서 학문하는 방법에서도 다른 무엇보다 ‘인내’와 ‘끈기’가 중요하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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