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비인간적 경제모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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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비인간적 경제모델
  • 한정곤 기자
  • 승인 2014.08.17 12:3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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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올바른 정신적 가치와 문화를 짓누르는 물질주의의 유혹에 맞서, 그리고 이기주의와 분열을 일으키는 무한경쟁의 사조에 맞서 싸우기를 빕니다.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어 내고 노동자들을 소외시키는 비인간적인 경제모델들을 거부하기를 빕니다.”

지난 8월 한국을 방문한 프란치스코 교황은 물질주의의 유혹과 새로운 형태의 가난을 만들고 노동자를 소외시키는 비인간적 경제모델을 거부하라는 메시지를 남겼다.

대한민국을 비롯해 오늘날 자본주의 최고의 이념으로 추앙받고 있는 ‘신자유주의’에 대한 강한 거부감을 표현한 것이다.

교황은 취임 이후 “아무런 규제가 없는 자본주의는 새로운 독재다”, “‘살인하지 말라’는 십계명을 현대에 맞게 고치면 ‘경제적 살인을 하지 말라’가 될 것이다”는 등 신자유주의 경제체제에 대해 꾸준히 비판해 왔다.

통화주의학파의 거두 밀턴 프리드먼 시카고대 교수는 자유시장의 작동 원리와 함께 여타 체제에서 풀지 못한 정치, 경제, 사회적 문제를 해결할 방법으로 자유시장의 작동원리를 제시했다. 이른바 신자유주의다.

국가의 개입보다 시장이 사회 자본을 더 적합하게 분배하고 제 기능을 발휘하는 시장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것은 국가 경제정책의 주요 과제라며 자유시장의 생성과 유지를 막는 지역이나 국가 및 국제 규칙은 모두 제거돼야 한다고 이들은 주장하고 있다.

또 물가의 안정은 통화의 안정과 국가재정의 수지균형을 통해 가장 잘 이루어지며 개인이 벌어들인 돈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세금 부담은 가능한 적어야 한다는 주장도 잊지 않는다.

임금협상권과 노동권 규정을 없애야 하며 해고 보호, 근무시간 규정 및 경영 참여는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저해한다는 것 역시 신자유주의자들의 이념이다. 따라서 국가가 직접 기업 활동을 해서는 안 되고 국영기업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시설도 민영화해야 한다.

특히 국가는 기업을 후원하는 경제정책을 펼쳐야 하고 임금과 기업의 세금을 낮춰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전제조건을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노동자는 물론 국가까지 기업과 자본가의 이익을 위해 철저히 복무해야 한다는 게 주요 골자가 아닐 수 없다. 그렇다면 현실에서는 어땠을까?

프리드먼을 정신적 지주로 하는 소위 ‘시카고학파’는 남미에서 신자유주의 경제체제를 실험했다. 피노체트 독재정권과 손을 잡은 시카고학파는 이 같은 논리를 앞세워 칠레의 경제를 재편했다. 물가정책 폐지, 노동시장 규칙 제거, 국가기관의 민영화에 국민연금보험·수도·전기·광산 및 핵심 산업과 에너지 산업 모두를 민영화한 것이다. 그것도 헐값으로.

결과는 참담했다. 노동자·농민을 비롯한 국민의 저항에 밀려 시카고학파는 결국 칠레에서 쫓겨났다.

그럼에도 실패한 경제모델로 금방이라도 사라질 것만 같았던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은 금융과산업자본의 강력한 지지를 받으며 오늘날에도 여전히 전 세계 각국에 뿌리를 내리고 있다.

이들이 가장 소리 높여 주장하는 시장지상주의가 가져온 기업권력은 이미 국가권력을 넘어서고 있다. 우리 사회에서도 논란을 불러일으키고 있는, 소위 ‘삼성공화국’은 대표적인 사례다. 인간의 풍요로운 삶을 위한 도구로서의 자본이 아니라 인간을 지배하는 주체로서의 자본인 것이다.

자본이 국가를 통제하는 체제는 궁극적으로 신자유주의 경제모델이 지향하는 이념이다. 인간을 소외시키고 권력의 최상위 계단을 향해 오르고 있는 자본의 욕망은 이미 의식적이든 무의식적이든 이미 현실로 다가오고 있다.

온화한 미소에 담긴 교황의 경고는 시간이 흐를수록 공포로만 다가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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