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득차면 덜어내고 겸손하면 이익을 얻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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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득차면 덜어내고 겸손하면 이익을 얻는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7.05 07:34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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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6강 안분(安分)…분수에 편안하라⑤
▲ 중국 고대 최초의 왕조인 하(夏)나라를 세운 우왕(禹王).

[명심보감 인문학] 제6강 안분(安分)…분수에 편안하라⑤

[한정주=역사평론가] 書曰(서왈) 滿招損(만초손)하고 謙受益(겸수익)이니라.

(『서경』에서 말하였다. “자만하면 손해를 불러오고, 겸손하면 이익을 받게 된다.”)

역사라기보다는 신화에 가까운 이야기지만 요(堯)임금이 자신의 아들이 아닌 신하 순(舜)임금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는 것은 잘 알려져 있다. 그런데 순임금 역시 자신의 아들이 아닌 우(禹)라는 신하에게 왕위를 물려주었다. 이 우(禹)가 바로 중국 고대 최초의 왕조인 하(夏)나라를 세운 우왕(禹王)이다.

우왕이 순임금으로부터 왕위를 물려받을 때 가장 결정적인 역할을 했던 것은 홍수를 다스리는 치수(治水) 사업을 성공시킨 일이다. 사공(司空)의 관직에 임명되어 순임금으로부터 치수 사업을 완수하라는 명령을 받은 우왕은 촌음(寸陰: 한 치의 시간)을 아껴가며 잠시도 쉬지 않고 오로지 일에만 매달렸다고 한다.

13년 동안 집에도 들어가지 않은 채 치수에만 온 마음과 온 힘을 다 쏟아 부은 결과 우왕은 마침내 이 사업을 성공시킬 수 있었다. 우왕의 공로를 높이 산 순임금은 그를 하나라의 제후로 삼았다.

치수에서 큰 공적을 세운 우왕의 또 다른 치적은 중원을 자주 침범한 오랑캐였던 묘족(苗族)을 평정해 나라와 민심을 안정시킨 것이다. 우왕은 신하 시절 순임금에게 자주 정치에 대한 의견과 정책에 대한 건의를 올렸는데, 당시 우왕이 순임금에게 올린 의견과 건의가 나라를 덕(德)으로 다스린 역대 제왕들의 문서를 수집해 공자가 편찬한 책인 『서경』에 실려 있다.

『서경』 가운데 <우서(虞書)>는 요임금과 순임금의 치적을 기록한 문서로 엮어져 있는데, 여기에 ‘대우모(大禹謨)’라는 글이 있다. ‘대우모’는 ‘대우(大禹)’, 즉 우왕이 신하 시절 순임금에게 올린 ‘모(謨)’, 곧 좋은 의견 또는 훌륭한 건의를 가리킨다.

여기 『명심보감』의 “滿招損(만초손)하고 謙受益(겸수익)이니라”는 말은 바로 『서경』 <우서> ‘대우모’에 등장하는 구절이다.

틈만 나면 중원을 침범하는 묘족 때문에 골치가 아팠던 순임금은 우왕에게 묘족을 평정하라는 임무를 맡겼다. 이에 우왕은 여러 제후들을 모은 다음 묘족을 평정하기 위해 출정했지만 묘족의 강력한 저항에 부딪혀 30일이 다 되도록 이렇다 할 전과를 올리지 못했다.

이때 익(益)이라는 사람이 우왕에게 덕으로 묘족을 감화시켜야 한다고 한 말 중에 “滿招損(만초손)하고 謙受益(겸수익)이니라”는 말이 나온다.

“惟德(유덕)은 動天(동천)이라 無遠弗届(무원불계)하나니 滿招損(만초손)하고 謙受益(겸수익)이 時乃天道(시내천도)이니라.” 그 뜻을 살펴보면 이렇다.

“오직 덕만이 하늘을 움직인다. 덕은 아무리 먼 곳이라도 미치지 않는 곳이 없다. 자만하면 손해를 불러오고, 겸손하면 이익을 받게 된다. 이것이 하늘의 도이다.”

익의 진언(進言)에 크게 깨우친 우왕은 군사를 철수했고, 이후 순임금도 묘족에게 덕을 크게 펼쳤다. 결국 묘족은 70일 만에 순임금의 덕치(德治)에 감복해 굴복했다고 한다.

우왕은 묘족을 평정한 공으로 조정의 신하와 백성들 사이에서 큰 존경을 받게 되고 ‘대우(大禹)’라는 극존칭을 얻게 되었다.

‘자만’, 곧 상대방보다 강한 힘에만 의존해 굴복시키려고 했을 때는 묘족의 저항 때문에 손해만 불러왔다. 반면 겸손, 곧 상대방보다 강한 힘을 지니고 있으면서도 덕으로 대했을 때 묘족이 감화되었기 때문에 이익을 받게 된 셈이다.

상대방을 대할 때 항상 ‘자만’이 아닌 ‘겸손’으로 대해야 하는 까닭이 바로 여기에 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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