잃어버린 옛 흔적뿐인 활터…영암 열무정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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잃어버린 옛 흔적뿐인 활터…영암 열무정
  • 한정곤 기자
  • 승인 2018.06.12 08:40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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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활터 가는 길]③ 읍성 개발에 ‘박제화’ 보존…규격화된 활터 신축 이전
▲ 2014년 3월 준공식을 가진 영암종합스포츠타운에 조성된 영암 열무정 전경. <사진=열무정 배원식 사두 제공>

[활터 가는 길]③ 읍성 개발에 ‘박제화’ 보존…규격화된 활터 신축 이전

나의 서울생활은 1980년대 중반 청계천7가에서 시작됐다. 서울 물정 모르는 시골 촌놈이 지금은 철거된 삼일고가도로 북쪽으로 줄지어 늘어선 삼일아파트에 덜커덩 전세방을 얻었다.

말이 아파트였지 살림집은 없고, 집집마다 가내수공업 수준의 봉제공장들이 빼곡히 들어 앉아 있었다. 밤낮으로 돌아가는 미싱과 삼일고가도로 위를 달리는 자동차가 뿜어내는 돌비 서라운드 시스템에 의한 입체 소음은 결코 편안한 잠자리를 보장하지 않았다. 그렇게 꼭 1년을 견디며 살았다.

그렇다고 그곳에서의 1년이 나쁜 기억으로만 남아있지는 않다. 심심찮게 둘러보는 재미와 필요한 물건을 싸게 살 수 있었던 길 건너편의 황학시장 때문이었다. 도깨비시장 혹은 벼룩시장으로 불렸던 황학시장은 별칭 그대로 중고품 천지였다. 이런 것도 돈 주고 사는 사람이 있나 싶을 만큼 어린 시절 흔했던 폐가의 케케묵은 문짝을 비롯해 최신 전자제품까지 정말 없는 게 없었다.

물론 나의 전셋집에도 황학시장을 둘러본 전리품들이 하나둘 자리를 차지했다. 호주머니를 탈탈 털어 구입했던 수많은 LP 음반들은 지금도 거실 한쪽을 차지하고 있으며, 청동으로 빚어낸 중세 기사상은 오디오 위에서 여전히 그 위용을 뽐낸다.

간혹 청계천7가를 지나칠 때면 잠깐씩 황학시장 안을 기웃거려본다. 그러나 번잡하고 왁자지껄했던 그 시절의 정취는 사라지고 없다. 청계천 정비사업으로 길거리 상인들은 신설동에 조성된 풍물시장과 길 건너편 동묘 골목으로 쫓겨났다.

인위적으로 만들어진 시장은 모든 게 부실하다. 규격화된 가게와 상품에는 감동이 없다. 동묘 골목의 벼룩시장이 그나마 비슷한 흉내를 내고 있지만 역시 흉내뿐이다.

30대까지는 미래를 먹고 살지만 40대부터는 추억을 먹고 산다고 했던가. 일상의 흔적이 별 것 아닌 것처럼 여겨질 수도 있지만 불현듯 그것의 소중함을 느꼈을 때 기억할 아무런 흔적도 없다는 것처럼 슬픈 일이 또 있을까.

화려한 첨단기술이 삶의 소소한 멋까지 빼앗아버리는 개발·재개발 사업은 오늘날에도 계속되고 있다. 보존이라는 가치 앞에서 모든 걸 가두고 박제해 버리는 영리함과 그럴듯한 보존지정 일련번호를 매겨놓은 안내문구로 미래 세대를 향한 책임을 다했다는 천박함으로 자위하면서 말이다.

활터라고 사정이 다르지 않다. 어쩌면 불과 수년 뒤면 전국의 모든 활터가 온갖 종목이 한 곳에 집결된 체육공원으로 옮겨갈 지도 모른다. 그렇다고 그곳의 중심부를 차지할 수 있는 것도 아니다. 안전이라는 민원에 쫓겨 가장 외진 한쪽 귀퉁이에 겨우 둥지를 틀 뿐이지만 이마저도 감지덕지하게 되지 않을까.

◇ 체육공원으로 옮겨가는 활터들
순천 환선정에서 마주해야 했던 가슴 한 구석의 무거운 돌덩어리를 내려놓지 못한 채 전남 영암 열무정(閱武亭)으로 향하는 발걸음은 이미 지워져 버린 케케묵은 흔적을 찾아가는 것만 같았다.

광주광역시를 출발해 목포로 향하는 광목간 도로를 따라 30~40분여를 달렸을까. 나주시를 지나 신북면 표지판이 보일 즈음 거대한 벽이 앞을 가로막았다. ‘달이 뜨는 산’이라는 월출산(月出山)이었다.

▲ 무겁 쪽에서 바라본 열무정. 웅장한 월출산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사진=한정곤 기자>

한반도 최남단의 산악형 국립공원인 월출산은 천년 이상의 역사와 국보 문화재를 간직하고 있는 도갑사와 무위사 그리고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하고 있는 국보인 마애여래좌상을 품고 있다. 주변에는 청동기시대 이래의 선사유적을 비롯한 옛 사람들의 풍물과 전통이 그대로 남아 있어 자연과 역사와 문화를 어우르는 남도답사 출발지로 불린다.

특히 정상에 오르면 사방이 탁 트여 능선상의 바위경관과 영암·강진 벌판의 아름다운 전원경관 조망이 일품이며 국내에서 가장 높은 곳에 위치한 구름다리와 구정봉의 아홉 개 물웅덩이 그리고 미왕재의 억새밭은 명소로 알려져 있다.

영암읍 남쪽을 병풍처럼 둘러싸고 있는 월출산의 품에 채 안기지도 않았건만 열무정이 들어선 역리 일원의 종합스포츠타운에 도착해 버렸다. 지난 2014년 3월 준공식을 가진 영암종합스포츠타운은 7만1000㎡(2만1900여평)의 부지에 국궁장, 축구장, 야구장, 테니스장 등이 조성돼 있다.

5월 어느 월요일 아침의 따사로운 햇살이 과녁에 쏟아지고 있는 열무정엔 연세 지긋한 3명의 사원이 1관에서 습사를 하고 있었다. 한 순을 낸 뒤에는 번갈아 한 명씩 연전(揀箭)을 다녀오는 모양새가 질서 잡힌 활터임을 짐작케 했다.

전통 맞배지붕 양쪽으로 우진각지붕이 겹쳐진 한옥 콘크리트건물 형태의 사정(射亭) 건물 내부에는 중앙 홀 격인 휴게실이 널찍하게 들어섰고 왼쪽에는 사두실을 겸한 사무실이, 오른쪽으로는 노인회와 사포계 사무실 등이 배치돼 있다. 궁방과 사원들의 개인사물함은 물론 주방이 딸린 식당 공간도 갖춰졌다. 2층 넓은 공간은 궁방 겸 휴궁장으로 사용하고 있다.

각종 대회를 개최하는 데에는 부족할 것 없이 넓고 여유로운 최신 활터다. 다만 아쉬운 것은 최근 건립된 활터들이라면 똑같겠지만 열무정에서만 느낄 수 있는 습사의 특징을 찾을 수 없는 평이함이었다.

▲ 사대에서 북서쪽으로 60도 방향에 배치된 과녁. <사진=한정곤 기자>

어쩌면 이미 인공적으로 규격화된 활터가 보편화되고 있어 부질없는 트집 잡기일 수도 있다. 그러나 전국 400여개 활터마다 고유한 지형에 따라 습사 방법까지 달라진다면 활쏘기 유람은 한층 매력적이지 않을까.

살이 계곡을 넘고 바다를 건너고 바람을 피하고 햇빛을 따라 오르는, 또 연전길은 봄과 여름에는 울긋불긋 꽃길을 지나고 가을엔 풍성한 열매 주렁주렁한 과수원을 통과하는 자연친화적인 활터를 꿈꾸는 것은 나만의 허황된 사치일까. 마치 골프장처럼 국가와 지역에 따라 코스가 다르고 같은 골프장 안에서도 같은 골프코스가 없듯이 말이다.

◇ 연전길의 낭만 꿈꾸는 허황된 사치?
어쨌든 고른 평지에 인공적으로 조성된 열무정의 과녁은 착시현상 탓인지 유난히 커 보였다. 열무정 사원 송태근 접장과 함께 한 습사에서도 평소보다 시수가 좋았다.

배원식 사두는 “살이 떨어지는 지점이 다 보이고 과녁도 크게 보인다”며 “전남지역에서는 입·승단률이 높은 활터로 알려져 있다”고 열무정의 특징을 설명했다.

지난 1987년 집궁한 배원식 열무정 사두는 17년간의 휴궁 이력이 있는 궁사다. 활과는 무관한 일로 어깨를 다쳐 철심을 박았단다. 웬만큼 어깨가 나아졌다 싶었지만 활터에는 나오지 않았던 그가 고문들 성화에 못 이겨 다시 활을 잡은 것은 4년 전이다. 그런데 복궁 두 달 만에 등을 떠밀어 부사두 자리에 앉히더니 이듬해에는 내친 김에 사두까지 해보라는 우격다짐에 두 손 들고 현재 사두 직을 수행하고 있다. 복궁 이후에는 각종 대회에서 수차례 우승도 거머쥐었다.

최근 서울의 어느 활터에서는 일부 사원들의 반대에도 5년 이상 휴궁자 50여명을 무더기 제명시키기까지 했다는데 17년 휴궁 후 복궁은 믿어지지가 않았다. “열무정은 사원들이 몇 년 휴궁하더라도 언제든 복궁이 가능하다”고 말하는 배 사두는 이해하기가 어렵다고 말했다. 50여명의 휴궁자를 제명한 활터가 배 사두를 비롯한 여러 활터의 사원들에서는 믿기 어려운 비현실적이고 비상식적인 결정이더라도 때때로 어느 곳에서는 현실이 되는 게 또 현실이다.

열무정은 사대에서 북서쪽으로 60도 방향에 과녁이 버티고 서 있다. 배원식 사두와 열무정 사원들에 따르면 바람은 봄부터 가을까지는 사대에서 과녁 방향으로, 11월부터는 과녁에서 사대방향으로 바뀌어 분다. 사대에는 하루 종일 햇빛이 들지 않지만 눈이라도 내리는 겨울철엔 사대까지 눈보라가 들이닥치는 북향 과녁의 특징도 강조한다.

사대에서 과녁 방향으로는 별다른 장애물 없이 시야가 탁 트인 것과 달리 무겁에서 사대를 바라보면 웅장한 월출산 전경이 한 눈에 들어온다. 이곳이 바로 영암 열무정이라는 사실도 이때서야 새삼 깨닫는다.

▲ 영암읍성 동북쪽 야트막한 언덕 위에 보존돼 있는 열무정 전경. <사진=한정곤 기자>

애초 열무정은 월출산을 바라보는 방향, 즉 북쪽 사대에 남쪽 과녁이었다. 남동쪽 30도 방향으로, 현재 영암종합스포츠타운의 활터와는 사실상 정반대 방향에 과녁이 서 있었다.

열무정의 본래 사정은 현재의 신축 사정에서 직선거리로 불과 600여 미터 떨어진 영암읍성 동북쪽 야트막한 언덕 위에 보존돼 있다. 그러나 사정 외관만 볼 수 있을 뿐 내부는 커다란 열쇠뭉치로 굳게 갇혀 있다. 지난 1988년 3월 전라남도문화재 제160호로 지정돼 2009~2011년 군에서 대대적으로 중수한 후 원형을 보존하고 있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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