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지런함은 나의 보물이고, 신중함은 나의 신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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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지런함은 나의 보물이고, 신중함은 나의 신표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5.30 07:4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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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5강 정기편(正己篇)…몸을 바르게 하라⑦
▲ 도연명의 증조부이기도 한 위진남북조시대 동진(東晋) 사람 도간은 광주자사(廣州刺史)로 있을 때 만약 관청의 업무가 없어 한가하면 항상 아침에 벽돌 100장을 집 밖으로 옮겼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그 벽돌을 집안으로 옮겼다고 한다. 한 순간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기 위해서였다.

[명심보감 인문학] 제5강 정기편(正己篇)…몸을 바르게 하라⑦

[한정주=역사평론가] 太公曰(태공왈) 勤爲無價之寶(근위무가지보)요 愼是護身之符(신시호신지부)니라.
(태공이 말하였다. “부지런함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고, 신중함은 자신의 몸을 보호해주는 신표이다.”)

근면함과 부지런함은 유학이 추구하는 최고의 가치이다. 농업이 모든 것의 근본이라고 생각한 중국 고대 사회에서 근면함과 부지런함은 최고의 미덕이기도 하다.

왜 그럴까? 농경은 월마다 또는 절기마다 해야 할 일이 정해져 있다. 1월에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5월에 해야 할 일을 하지 않거나 24절기에 맞게 행동하지 않으면 그해 농사는 망치게 된다. 그래서 한 시도 게을리 하지 않고 부지런해야 하는 것이다.

근면하고 부지런해야 한다는 관념은 농경 사회 전반을 지배하는 사고방식이다. 벼슬아치도 예외가 아니었다. 청렴결백함과 더불어 벼슬아치를 평가하는 최고의 덕목 역시 근면함과 부지런함이었다.

이러한 까닭에 자녀들을 어떤 사람으로 가르쳐야 하는가를 담았던 『소학(小學)』에도 근면함과 부지런함의 사표가 될 만한 사람들에 관한 일화가 자주 등장한다.

그 중 특별히 필자의 눈길을 사로잡은 인물은 무릉도원의 고사로 유명한 도연명의 증조부이기도 한 위진남북조시대 동진(東晋) 사람 도간(陶侃: 259년 ~ 334년)이다. 그는 항상 사람들에게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하나라의 우왕(禹王)은 성인으로 세상 모든 사람들로부터 존경과 추앙을 받았다. 그런데도 우왕은 촌음(寸陰: 한 치의 시간)을 아껴 일했다고 한다. 하물며 보통 사람에 불과한 우리들이야 단 1분의 시간이라도 아껴야 하지 않겠느냐. 어떻게 제멋대로 놀고 게으름이나 피우면서 술에 취해 흥청망청 헛되게 세월을 보낼 수 있겠느냐. 살아 있을 때는 시대에 아무런 이익이 되지 않고, 죽어서는 후세에 명성을 남기지 못할 것이다. 이것은 스스로 자신을 포기하고 스스로 자신을 버리는 짓에 다름없다.”

도간은 광주자사(廣州刺史)로 있을 때 만약 관청의 업무가 없어 한가하면 항상 아침에 벽돌 100장을 집 밖으로 옮겼다가 저녁이 되면 다시 그 벽돌을 집안으로 옮겼다고 한다. 한 순간도 게으름을 피우지 않기 위해서였다.

또한 형주자사(荊州刺史)로 부임해서는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하루 종일 천 가지로 설키고 만 가지로 얽힌 관청의 헤아릴 수 없이 많은 복잡한 일들을 처리해냈다고 한다.

이렇듯 자기가 맡은 일에 부지런하고 치밀했던 도간은 훗날 자신의 근면함으로 쌓은 공로를 인정받아 재상의 반열인 태위(太尉)에까지 올랐다. 촌음을 아꼈던 우왕처럼 단 1분의 시간도 헛되게 낭비하지 않으려고 했던 도간의 고사야말로 “勤爲無價之寶(근위무가지보)”, 곧 “부지런함은 값을 매길 수 없는 보물이다”는 격언의 본보기로 삼을 만하다고 하겠습니다.

그렇다면 근면함과 부지런함의 본보기가 되는 도간의 고사처럼 신중함의 길잡이로 삼을만한 사람으로는 누구를 찾아볼 수 있을까? 그는 다름 아닌 노자(老子)이다. 노자는 『노자』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 노자(老子). 그는 신중함의 길잡이로 삼을만한 사람이다.

“도리를 행하는 사람은 미묘하고 신묘하고 통달하고 깊어서 알 수가 없다. 알 수가 없기 때문에 구태여 형용하자면 이렇다. 머뭇거림이여! 마치 겨울에 차디찬 시냇물을 건너는 것처럼. 경계함이여! 마치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엄숙함이여! 마치 손님인 것처럼. 풀림이여! 마치 얼음이 녹는 것처럼. 두터움이여! 마치 통나무인 것처럼. 텅 비움이여! 마치 계곡인 것처럼. 혼탁함이여! 마치 더러운 물인 것처럼. 누가 혼탁한 것을 잠잠하게 해서 서서히 맑아지게 할 수 있는가? 누가 가만히 있는 것을 움직여서 서서히 살아나게 할 수 있는가? 이와 같이 도리를 보전하려는 사람은 가득 채우려고 하지 않는다.”

도리를 행하는 사람의 외면과 내면을 표현한 노자의 말 중 여기 『명심보감』에서 강조하고 있는 신중함과 관련이 있는 대목은 “머뭇거림이여! 마치 겨울에 차디찬 시냇물을 건너는 것처럼(豫兮若冬涉川)”과 “경계함이여! 마치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猶兮若畏四隣)”이다.

겨울에 차디찬 시냇물을 건너는 것처럼 머뭇거리는 사람보다 더 신중하게 행동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는 것처럼 경계하는 사람보다 더 신중하게 처신하는 사람이 어디에 있겠는가!

신중함은 분명 복을 불러들이는 덕목은 아니다. 그러나 재앙을 피하는 데는 신중함만큼 최선의 덕목은 없지 않을까?

일찍이 정약용이 ‘여유당(與猶堂)’이라는 당호(堂號)를 짓고 스스로 글을 지어 밝힌 ‘여유당기(與猶堂記)’에서도 노자의 말을 찾아볼 수 있다.

정약용은 자신은 예전에 “신중하라!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듯(與兮若冬涉川). 경계하라!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猶兮若畏四隣)”이라는 『노자』의 구절을 본 적이 있다고 하면서 ‘겨울에 시냇물을 건너듯 신중하고〔與〕, 사방의 이웃을 두려워하듯 경계하는〔猶)’ 삶을 살겠다는 뜻을 담아 ‘여유당(與猶堂)’이라는 당호를 지었다고 했다.

정약용은 노자의 말을 적극 인용해 오직 ‘신중한 삶’을 살겠다는 뜻을 밝혀 정조 사후 집권한 노론벽파 세력의 자신을 향한 숙청의 칼날을 피하려고 했던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노자의 말이야말로 동양 고전의 구절 중 ‘신중함’의 뜻을 가장 잘 담고 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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