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화(禍)는 벗어날 수 없고, 복(福)은 다시 구할 수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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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화(禍)는 벗어날 수 없고, 복(福)은 다시 구할 수 없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5.09 08:0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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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3강 순명편(順命篇)…운명에 순응하라③
▲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秦)나라가 멸망하고 천하 패권을 다툰 항우와 유방의 승패를 결정적으로 가른 것은 ‘인재를 알아보고 포용하는 안목과 도량’에 있었다. 왼쪽부터 항우, 한신, 유방.

[명심보감 인문학] 제3강 순명편(順命篇)…운명에 순응하라③

[한정주=역사평론가] 景行錄云(경행록운) 禍不可倖免(화불가행면)이요 福不可再求(복불가재구)니라.
(『경행록』에서 말하였다. “재앙은 요행으로 모면할 수 없고, 복(福)은 두 번 다시 구할 수 없다.”)

앞선 『명심보감』의 경고, 곧 “나쁜 짓과 악한 일은 종국에는 악한 결과, 즉 재앙을 낳을 뿐이다”는 가르침에 따른다면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는 나쁜 짓과 악한 일을 하면서 재앙을 모면할 수 있다는 생각 자체가 바로 요행, 즉 뜻밖의 행운을 바라는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중국사에서는 제왕을 미혹시켜 국정을 농단하고 백성을 도탄에 빠뜨리고 나라를 멸망에 이르게 한 대표적인 요녀(妖女)로 앞선 이야기에서 언급했던 걸왕의 말희, 주왕의 달기와 더불어 주(周)나라의 제12대 제왕인 폭군 유왕(幽王)의 애첩 포사를 꼽는다.

유왕은 포사의 비위를 맞추고 즐겁게 하기 위해 온갖 잔치를 베풀고 재주를 부렸지만 이상하게도 포사는 전혀 웃지 않았다. 유왕은 포사를 웃게 하기 위해 모든 방법을 다 동원했다. 그러나 포사는 단 한 번도 웃지 않았다고 한다.

포사를 웃게 하려고 궁리에 궁리를 거듭하던 유왕은 어느 날 외적이 침입할 때 밝히는 봉화(烽火)를 피우고 큰북을 두드려 거짓으로 나라가 존망의 위기에 처했다고 천하에 알렸다. 이에 각국의 제후들이 군사를 거느리고 유왕에게 달려왔다. 그러나 외적의 침입이 거짓이라는 사실을 안 제후들은 실망하고 돌아갔다.

그런데 이상하게도 이 광경을 지켜보던 포사가 크게 웃는 것이 아니겠는가. 이때부터 유왕은 오직 포사를 웃게 하려는 목적으로 시도 때도 없이 봉화를 올렸다. 처음 몇 번 거짓 봉화에 속은 각국의 제후들은 어느 정도 시간이 지나자 봉화가 올라도 아예 군사를 동원하지 않게 되었다.

이렇듯 포사의 국정 농단과 유왕의 폭정이 계속되자 민심은 등을 돌리고 천하는 크게 혼란해졌다. 그러자 반란의 뜻을 품은 신(申)나라와 증(繒)나라의 제후가 이민족인 서이(西夷)와 견융(犬戎) 등과 연합해 유왕을 공격하기 위해 군사를 일으켰다.

위태로워진 유왕은 이번에는 실제로 봉화를 올려 각국의 제후들에게 군사를 동원하라고 알렸다. 그렇지만 그동안 숱하게 유왕과 포사의 거짓 봉화 놀음에 속았던 제후들은 이번에도 자신들을 속이는 것이라고 여겨서 단 한 명도 군사를 거느리고 오지 않았다.

결국 신나라와 증나라의 제후 그리고 서이와 견융의 연합군에 쫓겨 달아나던 유왕은 여산(驪山)에서 죽고 포사는 사로잡혔다. 그리고 신나라 제후는 자신의 뜻에 따라 포사가 쫓아냈던 본래 태자 의구(宜臼)를 제왕으로 세웠다. 그가 곧 주나라의 제13대 제왕인 평왕(平王)이다.

이렇게 보면 거짓과 악행을 저지르며 스스로 재앙을 불러들이고 있으면서도 아무 일 없이 안락과 쾌락을 누렸던 유왕과 포사야말로 요행으로 재앙을 모면하려고 한 어리석은 자들이라고 하겠다.

그렇다면 “이미 놓쳐버린 복은 두 번 다시 구할 수 없다”는 말은 무슨 뜻일까?

중국 최초의 통일국가인 진(秦)나라가 멸망하고 천하 패권을 다툰 항우와 유방의 승패를 결정적으로 가른 것은 ‘인재를 알아보고 포용하는 안목과 도량’에 있었다.

명문가 출신이자 역발산기개세(力拔山氣蓋世)의 영웅 항우를 멸망의 나락으로 떨어뜨리고 미천한 집안 출신이자 시골 건달에 불과했던 유방을 황제의 자리에 오르게 하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한 사람은 누구나 알고 있는 것처럼 명장 한신이었다.

그런데 한신은 애초 유방의 부하가 아니라 항우의 부하였다. 처음 한신이 찾아가 자신의 능력과 재주를 의탁했던 사람은 항우였다. 한신은 항우의 경계 호위를 맡은 금위군의 하급 군관인 낭중(郎中)을 지내면서 여러 차례 항우에게 군사 계책을 올렸다. 그러나 항우는 이를 받아들이기는커녕 거들떠보지도 않았다.

결국 항우에게서 더 이상 기대할 것이 없다고 판단한 한신은 유방이 지금의 사천성인 촉(蜀) 땅으로 들어갈 때 도망쳐 나와 유방에게로 귀순했다. 유방은 재상이자 후방 병참의 총사령관이었던 충신 소하(蕭何)의 천거를 받아들여 하급 장교에 불과했던 한신을 일약 자신의 군대를 총지휘하는 대장군으로 삼았다.

항우는 스스로 굴러들어온 복조차 알아보지 못한 반면 유방은 자칫 항우의 복이자 자신에게는 화(禍)가 될 수도 있었던 인물을 자신의 복으로 만든 셈이다.

자신의 재주와 능력을 지나치게 과신해 스스로의 힘으로 천하를 얻을 수 있다고 생각했던 항우는 한신이 필요 없다고 생각했을지 모른다. 반면 자신의 힘과 능력만으로 천하를 얻는 것이 부족하다고 생각했던 유방은 자신을 보좌할 인재를 항상 갈망했기 때문에 그러한 사람을 만나면 발탁해 중용하는 것을 주저하지 않았다.

자만심과 오만함 때문에 한신이라는 인재를 걷어차 버린 항우는 두 번 다시 한신과 같은 명장을 구할 수 없었다. 그 결과는 어땠나? 어느 누구도 패배할 것이라고 예상하지 못한 ‘역발산기개세’의 영웅 항우는 시정잡배 출신인 유방에게 쫓겨 오강(烏江) 가에서 스스로 목숨을 끊는 비참한 최후를 맞게 된다.

“복불가재구(福不可再求)”, 즉 “이미 놓쳐버린 복은 다시 구할 수 없다”는 여기 『명심보감』의 구절은 항우처럼 자기 과신과 자만심과 오만함 때문에 스스로 복을 걷어 차 버리면 다시 그 복을 구하려고 해도 구할 수 없게 된다는 뼈아픈 가르침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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