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상 모든 일은 이미 분수가 정해져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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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상 모든 일은 이미 분수가 정해져 있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5.05 08:5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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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3강 순명편(順命篇)…운명에 순응하라②

[명심보감 인문학] 제3강 순명편(順命篇)…운명에 순응하라②

[한정주=역사평론가] 萬事分已定(만사분이정)인데 浮生空自忙(부생공자망)이니라.
(모든 일에는 분수가 이미 정해져 있는데, 덧없는 인생 부질없이 자기 혼자 분주하구나.)

“만사분이정(萬事分已定) 부생공자망(浮生空自忙)”은 『남송명현집(南宋名賢集)』에 실려 있다고 전해지는 아래와 같은 시 구절의 일부이다.

이 시는 주희(주자)가 지은 것이라는 주장도 있지만 지은이가 분명하지 않다고 보는 것이 타당하다.

耕牛無宿草(경우무숙초) 밭 가는 소 자기 먹을 풀조차 없는데
倉鼠有餘糧(창서유여량) 창고 속 쥐는 양식이 남아도는구나
萬事分已定(만사분이정) 모든 일에는 분수가 이미 정해져 있는데
浮生空自忙(부생공자망) 덧없는 인생 부질없이 자기 혼자 분주하구나

하루 종일 밭을 갈며 죽자 살자 일만 하는 소는 자기 먹을 풀도 없어서 항상 배가 고프다. 그런데 창고 속 쥐는 빈둥거리며 놀아도 항상 먹을 양식이 넘쳐나서 굶주림에 대한 걱정이 전혀 없다.

죽어라 일만 해도 배고픔을 면치 못하는 소의 처지와 빈둥빈둥 놀아도 굶주림에 대한 걱정 없이 배부르게 지내는 쥐의 처지는 각자의 운명에 따라 이미 정해진 분수라는 얘기이다.

헛된 욕망 때문에 되지도 않을 일을 좇아 공연히 분주하게 이리 뛰고 저리 뛰어봤자 사람의 운명은 -밭 가는 소나 창고 속 쥐처럼- 이미 정해진 분수에서 벗어나기 어렵기 때문에 몸만 수고롭고 마음만 황폐해질 뿐이라는 뜻일 게다.

이 구절은 모든 일에는 분수가 이미 정해져 있어서 아무리 애를 써도 소용없으므로 그저 ‘분수에 맞게 살아야 한다’는 체념과 한탄의 말로 들릴 수도 있지만 좀 더 적극적으로 풀이하면 헛된 꿈만 좇다가 인생을 망치지 말고 바로 지금 여기 자신의 삶에 충실해야 한다는 말로 해석할 수도 있다.

앞서 필자가 지적했던 것처럼 여기 ‘순명’ 편에 실려 있는 구절들은 운명에 순종하거나 굴복하며 살라는 수동적인 삶의 가르침이 아니라 자연의 이치나 섭리를 거스르지 말고 도리에 맞게 살고 순리에 따라 행동하라는 적극적인 도덕적 삶의 가르침이라고 볼 때 필자는 전자의 해석보다는 후자의 해석이 더 맞지 않겠나 하는 생각을 해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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