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악한 짓이 가득 차면 하늘이 죽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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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악한 짓이 가득 차면 하늘이 죽인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4.26 08:3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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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명심보감 인문학] 제2강 천명편(天命篇)…하늘의 명(命)을 따르라④
▲ 탕왕의 초상화. 탕왕은 걸왕이 포악무도한 정치와 엽기적인 성 행각으로 인해 천하의 민심을 잃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하늘의 뜻(천명)’을 명분삼아 걸왕을 토벌하기에 이르게 된다.

[명심보감 인문학] 제2강 천명편(天命篇)…하늘의 명(命)을 따르라④

[한정주=역사평론가] 益智書云(익지서운) 惡鑵(악관)이 若滿(약만)이면 天必戮之(천필육지)니라.
(『익지서』에서 말하였다. “악의 두레박이 가득 차면 하늘이 반드시 죽일 것이다.)

‘지혜를 더하는 책’이라는 뜻을 지닌 『익지서』는 송(宋)나라 시대에 지어졌다고만 알려져 있을 뿐 지금은 전하지 않는 서적이다.

중국사에서 ‘걸주(桀紂)’는 폭군의 대명사를 가리키는 말이다. 걸(桀)은 중국사 고대 3왕조 중 하(夏)나라의 마지막 왕인 걸왕(桀王)을 일컫고, 주(紂)는 은(殷)나라(혹은 상(商)나라)의 마지막 왕인 주왕(紂王)을 가리킨다.

걸왕은 탕왕(湯王)에 의해, 주왕은 무왕(武王)에 의해 죽임을 당하는데 탕왕과 무왕이 걸왕과 주왕을 왕위에서 내쫓고 죽일 때 정치적 명분으로 내세운 것이 다름 아닌 ‘천명(天命)’, 즉 ‘하늘의 뜻’이었다. 걸왕과 주왕에게 벌을 내려 죽인 것은 하늘이지 자신들이 아니라는 얘기이다.

악한 짓이 온 세상에 가득 차 사람들의 원망과 분노가 넘쳐나면 반드시 하늘이 그를 죽인다는 이치에 따라 자신들은 단지 하늘의 뜻을 좇아 포악무도한 걸왕과 주왕을 정벌했을 뿐이라는 것이다.

먼저 하늘을 대신해 걸왕을 죽였다고 한 탕왕에 관한 이야기부터 살펴보자. 기록에 따르면 걸왕은 몸집이 크고 당당했으며 힘도 세어 단단한 뿔을 한 손으로 부러뜨릴 수도 있고 또 구부러진 쇠갈고리를 가뿐하게 바로 펼 수도 있었다고 한다.

외모는 영웅호걸의 기개를 지녔지만 성정이 매우 포악무도해 충언하는 신하들을 살해하고, 총애하는 비(妃) 말희와 함께 방탕한 세월로 날을 지새웠다. 걸왕과 말희의 엽기적인 행각이 얼마나 심했던지 말희가 비단 찢기는 소리를 듣기 좋아한다 하여 나라 안의 곳간에 있는 온갖 아름다운 비단을 가져다가 한 필 한 필 찢으며 즐겼다고 한다.

탕왕은 하나라로부터 상(商)이라는 땅을 봉지로 받아 대대로 다스려온 제후의 후손이었다. 즉 걸왕의 신하였던 것이다. 탕왕은 걸왕이 포악무도한 정치와 엽기적인 성 행각으로 인해 천하의 민심을 잃었다고 판단했다. 그래서 ‘하늘의 뜻(천명)’을 명분삼아 걸왕을 토벌하기에 이르게 된다.

그런데 탕왕은 신하의 신분인 제후로서 자신이 섬긴 걸왕을 정벌하러 나서는 것이 세상 사람들로부터 빈축을 사지 않을까 두려웠다. 이에 탕왕은 자신이 걸왕을 정벌하러 나서게 된 까닭을 밝히는 글을 온 세상에 공표했다.

이 글은 ‘탕서(湯誓)’, 즉 ‘탕왕의 맹서’라는 제목으로 『서경(書經)』 〈상서(商書)〉편에 실려 있다. 여기에서 탕왕은 이렇게 말한다.

“나같이 보잘 것 없는 사람이 어떻게 반란을 도모하겠는가. 나는 감히 반란을 일으키려고 하는 것이 아니다. 나는 반란을 일으키고 싶지 않다. 하지만 걸왕의 죄가 너무나 커서 하늘이 내게 그를 정벌해 멸망시키라고 명하셨다. 나는 하늘이 두려워 하늘의 명을 따라 세상을 바로잡지 않을 수가 없다.”

이 ‘탕서’에 나오는 “有夏多罪(유하다죄) 天命殛之(천명극지)”, 곧 “하나라의 걸왕이 수많은 죄를 지어서 하늘이 그를 죽이라고 명하였다”는 구절은 ‘악이 가득차면 하늘이 반드시 죽인다’는 이른바 천명사상(天命思想)을 증명하는 역사적 기록이라고 하겠다.

어쨌든 이렇게 해서 걸왕은 악한 짓이 가득 차 마침내 하늘로부터 죽임을 당하고 나라는 멸망한 중국사 최초의 제왕이라는 불명예스러운 인물로 길이길이 전해지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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