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형체만 남기고 가는 것은 정신이고 영원히 남는 것은 마음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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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형체만 남기고 가는 것은 정신이고 영원히 남는 것은 마음이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8.01.31 14:3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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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⑬…자의식(自意識)의 미학⑨
▲ 1866년 병인양요에 참전했던 프랑스 해군장교 쥐베르가 목격한 장면을 스케치한 삽화 ‘작은 방에서 붓으로 글을 쓰고 있는 조선 선비’. 조선 주재 프랑스 공사관에 근무했던 모리스 쿠랑의 『한국서지』에 게재돼 있다.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⑬…자의식(自意識)의 미학⑨

[한정주=역사평론가] 이덕무의 가장 절친한 벗이자 북학사상을 함께 한 동지였던 박제가의 자전적 기록인 ‘소전(小傳)’ 역시 이덕무의 ‘기호(記號)’처럼 마치 자화상을 보는 듯 그 외모는 물론 내면세계까지-비록 짧은 문장 속이지만-매우 강렬한 색채와 기운을 담아 표현해내고 있다.

“나는 조선이 일어난 지 384년째 되는 해에 압록강 동쪽으로 1000여리 떨어진 곳에서 태어났다. 나의 조상은 신라에서 나왔고 밀양이 본관이다. 『대학(大學)』의 한 구절인 ‘수신제가치국평천하(修身齊家治國平天下)’의 뜻을 취해 이름을 ‘제가(齊家)’라고 하였다. 또한 ‘초사(楚辭)’라고 부르는 『이소(離騷)』의 노래에 의탁하여 ‘초정(楚亭)’이라고 자호하였다.

그 사람됨은 이렇다. 물소 같은 이마와 칼 같은 눈썹에 초록빛 눈동자와 하얀 귀를 갖추었다. 유독 고고(孤高)함을 가려서 더욱 가까이 하고, 번잡함과 화려함은 더욱 멀리하였다. 이러한 까닭에 세상과 맞지 않아서 항상 가난함을 면치 못했다.

어렸을 때는 문장가의 글을 배웠고 장성해서는 나라를 경영하고 백성을 구제할 학문과 기술을 좋아했다. 수개월 동안 집에 들어가지 않았지만 당시 사람들은 알지 못했다. 마음은 고명(高明)한 것만 좋아해 세상사에 대해서는 무관심했다. 수만 가지 사물의 명칭과 이치의 그윽하고 미묘한 곳을 깊이 연구하였다.

오로지 시간적으로는 백세(百世) 이전의 사람들과 대화하고 공간적으로는 만 리를 넘나들며 훨훨 날아다녔다. 구름과 안개의 기이한 자태를 분별하고, 온갖 새의 신선한 소리에 귀 기울였다. 대체로 머나 먼 산과 개울과 해와 달과 별자리 그리고 지극히 작은 풀과 나무와 벌레와 물고기와 서리와 이슬은 하루하루 변화하는데 그 이유를 알지 못하는 것들을 흉중(胸中)에서 빼곡하게 깨달았다.

그러나 말을 가지고서는 그 정상(情狀)을 모두 드러낼 수 없고, 입과 혀를 가지고서는 그 맛을 설명하기에 부족하다. 스스로 홀로 얻었을 뿐 세상 사람들은 그 즐거움을 알지 못한다고 생각했다.

아! 형체만 남기고 가는 것은 정신이고 뼈는 썩는다 해도 영원히 남는 것은 마음이다. 이 말을 아는 사람은 생사(生死)와 성명(姓名)의 밖에서 그를 거의 만날 수 있을 것이다. 다음과 같이 찬(贊)한다.

‘대나무와 비단에 기록하고 단청으로 모사(模寫)하지만 / 해와 달은 도도히 흘러 그 사람은 멀어지는구나 / 하물며 자연(自然)에 정화(精華)를 남겨두고 / 남들과 같은 진부(陳腐)한 말만 모은다면 / 어찌 영원히 남게 하겠는가 / 무릇 전기(傳記)는 전하는 것이니 / 비록 그 조예(造詣)를 지극히 드러내거나 그 인품을 다 드러낼 수는 없다고 해도 / 오히려 아주 뚜렷하게 그 한 사람을 알고 / 천(千) 사람 만(萬) 사람과 다름을 알게 해야 / 머나 먼 세상 하늘 끝이나 아득한 세월이 흐른 뒤에도 / 사람들은 나를 만나보게 될 것이네.’” 『정유각집』, ‘소전’

이렇듯 당대의 상식을 뛰어넘는 기이한 기상과 독창적인 사유를 추구한 지식인(선비)일수록 더욱 강렬한 ‘자의식’을 갖고 있었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시대와 불화하는 글쓰기를 마다하지 않았던 이옥 또한 작가로서의 ‘자의식’을 극명하게 보여주는 글을 남겼는데 여기에서 그는 이렇게 말한다. 자신은 “마지못해서 글을 쓰고 외진 곳에서 지긋지긋하게 지루한 시간을 보내기 위해 글을 쓴다”라고.

이 말은 글을 쓴다는 것을 하나의 특권처럼 여기던 당시 지식인과 문인의 지적 우월의식을 전복하는 획기적인 발상이다. 이옥은 여기에서 스스로 출세와 명예를 얻기 위해서 혹은 다른 사람에게 과시하기 위한 글을 쓰는 것이 아니라 평생에 할 수 있고 하고 싶은 일이 단지 글쓰기 밖에 없기 때문에 글을 쓸 뿐이라고 말한다.

이 말은 당시 사람들이 추구한 글쓰기와는 전혀 다른 글쓰기를 하는 작가로서의 자기 정체성과 존재의식에 대한 긍지와 자부심을 역설적으로 표현한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이옥은 거창한 대상과 중대한 주제가 아닌 지극히 사소하고 하잘것없는 사물인 새와 꽃과 벌레와 나무와 풀 등을 글벗과 글감으로 삼아 글을 쓸 따름이다.

“이 저작에 왜 백운필(白雲筆)이라는 이름을 붙였는가? 백운사(白雲舍)에서 붓을 들어 썼기에 붙였다. 백운필은 무엇 때문에 썼는가? 마지못해서 썼다. 왜 마지못해서 썼는가? 백운사는 본래 외지고 여름날은 한창 지루하다. 외져서 찾는 이가 없고 지루하여 할 일이 없어서다. 할 일도 없는데다 찾는 이조차 없으므로 내 어떻게 본래 외진 곳에서 이 지긋지긋하게 지루한 시간을 보내야 좋단 말인가?

길을 나서고 싶지만 갈 만한 데가 없을 뿐 아니라 이글거리는 해가 등짝을 달구기 때문에 겁이 나서 감히 나가지 못한다. 낮잠을 자려 하지만 발 사이로 바람은 멀리서 불어오고 풀냄새가 가까이서 올라온다.

심하면 입이 삐뚤어질까 걱정이고 못해도 학질에 걸릴까 염려되어 겁이 나서 감히 눕지 못한다. 책을 읽고자 하지만 몇 줄 읽으면 입이 마르고 목구멍이 아파서 억지로 읽지를 못한다. 책을 보고자 해도 겨우 몇 장만 보면 책으로 얼굴을 덮고 잠이 드니 이도 할 수 없다.

바둑을 두고 장기를 놓으며 쌍륙(雙陸)과 아패(牙牌)를 하고자 해도 집안에 쓸 만한 도구가 없기도 하고 성품에 즐기지도 않으므로 이도 할 수 없다. 그러니 나는 무엇을 하며 이런 곳에서 이런 날을 그럭저럭 보낸단 말인가? 부득불 손으로 혀를 대신하여 먹 형님, 붓 동생과 함께 말없이 수작을 나누는 일밖에 딱히 할 일이 없다.

그럴진대 내가 이야기하려는 것은 무엇인가? 내가 하늘에 대해 말하면 사람들이 반드시 천문을 배웠다고 할 텐데 천문을 배운 자는 재앙을 입으므로 말할 수 없다. 땅에 대해 말하면 사람들은 반드시 지리를 안다고 할 텐데 지리를 아는 자는 남에게 부림을 당하므로 말할 수 없다. 사람에 대해 말하면 남에 대해 말하는 자를 남들로 말하므로 이도 말할 수 없다. 귀신을 말하면 사람들은 반드시 내가 망언한다고 할 테니 이도 말할 수 없다.

성리(性理)를 말하고자 하나 내가 평소 들은 바가 없고 문장을 말하고자 하나 문장은 우리 같은 자가 평할 수 있는 것이 아니다. 부처와 도가, 방술(方術)을 말하고자 하나 내가 배우지 않았을 뿐만 아니라 내가 말하고 싶은 것도 아니다. 나아가 조정의 이해관계, 지방관의 우열장단, 관직과 재물, 여색과 주식(酒食)은 범익겸(范益謙: 범중)이 말해서는 안 될 일곱 가지 일이라고 한 것으로서 내 일찍이 좌우명으로 써두었으므로 이도 말할 수 없다.

그렇다면 나는 또 무엇을 가져다 말하고 붓으로 써야 할 것인가? 내 형편이 부득불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럼에도 말하지 않는다면 그만이지만 굳이 말해야 한다면 부득불 새를 말하고, 물고기를 말하고, 짐승을 말하고, 벌레를 말하고, 꽃을 말하고, 곡식을 말하고, 과일을 말하고, 채소를 말하고, 나무를 말하고, 풀을 말하는 것 외에는 다른 방도가 없다.

이것이 ‘백운필’을 마지못해서 쓴 까닭이고 겨우 이런 것이나 말한 까닭이다. 사람이 말하지 않을 수 없기도 하지만 말해서는 안 되는 실정도 이런 지경이로구나! 아! 말을 조심할지어다. 계해년(1803) 오월 상순, 백운사(白雲舍) 주인이 백운사의 앞마루에서 쓴다.” 이옥, ‘백운필소서(白雲筆小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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