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광화문 복원, 그 개운치 않은 뒷맛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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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광화문 복원, 그 개운치 않은 뒷맛
  • 박원석 기자
  • 승인 2013.11.26 12: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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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난 2006년 말부터 추진됐던 ‘광화문 제 모습 찾기’ 사업이 마무리 단계에 접어들고 있다. 오는 8월15일 광복절에 맞춰 그 위용이 공개된다고 하니 기대가 크다.

정부는 일제에 의해 훼손?변형된 왕궁을 원형대로 복원하기 위해 지난 1990년부터 경복궁 복원 사업을 진행하고 있다. 광화문 복원도 그 일환이다. 광화문은 일제에 의해 헐려 원래의 자리를 지키지 못하고 옮겨졌다. 또 1968년 중앙청(구 조선총독부 청사) 축에 맞춰 철근콘크리트로 건립됨으로써 원형도 왜곡된 채 전해져 왔다. 때문에 이번 광화문 복원은 그 의미가 남다르다 할 수 있겠다.

그런데 뒷맛이 개운하지 않은 이유는 뭘까. 그것은 문화재를 현대적 시각에서 바라보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한다는 우려다. 광화문 복원 사업은 광화문이 역사 속에서 왜곡됐다는 평가에서부터 출발하고 있다. 그리고 그 왜곡된 역사를 바로잡겠다는 현대적 시각이 더해졌다. 부끄럽고 왜곡된 역사는 역사가 아니던가.

달라스란 도시를 방문했을 때 느꼈던 미국인들의 역사의식에 놀랐던 기억이 떠오른다. 불과 200년이 조금 넘는 역사밖에 가지지 못한 미국인들은 그들의 역사를 원형 그대로 보존하려는 노력이 필사적이다.

남북전쟁 때 남군의 병참기지 역할을 했던 달라스를 예로 들어보자. 달라스는 존 F. 케네디를 추억하는 도시로도 유명하다. 1963년 11월23일, 달라스 다운타운에서 퍼레이드를 하던 케네디 대통령은 리 하베이 오스왈드란 청년에 의해 암살당한다.

저격장소는 텍사스주 교과서 창고 7층. 현재 이곳은 아이러니컬하게도 케네디기념관으로 사용되고 있다. 특히 오스왈드가 저격한 7층 현장은 비록 유리로 보호돼 있지만 조금도 훼손되지 않은 채 원형 그대로 보존돼 있다.

반면 우리는 어떠한가. 부끄러운 역사라며 지난 1990년대 초반 ‘역사 바로 세우기’ 일환으로 모든 것을 철거해 버렸다.

박정희 전 대통령이 암살당했던 궁정동 안가는 현재 형체도 찾을 수 없고, 일제 식민지 시대를 대표했던 중앙청 역시 흔적을 찾기 힘들다. 심지어 힘없는 백성들이 권력을 피해 활개치고 다녔던 조선시대의 피맛골도 개발에 밀려 사라지고 있다.

그 자리에는 대신 현대식 건축물들이 조성되고 있다. 겉모습만으로 과거의 유산이라며 역사성을 주장할 수 있을지 모르겠지만 실제로는 20세기 혹은 21세기의 산물일 뿐이다.

최근 복원 중인 광화문의 현판을 놓고 일부 이익단체들 사이에서 논란이 일고 있는 것도 이미 광화문이 역사적 가치를 가진 유산이라기보다 현대적 건축물로서의 의미가 강하다는 반증이다. 한문 현판이냐 혹은 한글 현판이냐, 여기에 1968년부터 2006년까지 사용됐다는 이유로 박정희 전 대통령의 친필로 새긴 한글 현판으로의 복원을 촉구하는 시위까지 벌어지고 있다.

무엇이 문화재를 문화재로서의 가치를 유지하게 하는 길인지는 전문가들이 더 잘 알겠지만 곁에서 지켜보는 비전문가의 눈에 자꾸만 문화재들이 사라져 가는 것 같아 안타깝기만 하다.

<2010년 8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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