개인의 취향까지 군자의 고상한 성품으로 포장하고 우아한 외양으로 꾸민 성리학자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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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인의 취향까지 군자의 고상한 성품으로 포장하고 우아한 외양으로 꾸민 성리학자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7.09.13 08:4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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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⑫…완상(玩賞)과 기호(嗜好)의 미학②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⑫…완상(玩賞)과 기호(嗜好)의 미학②

[한정주=역사평론가] 권상하(1641〜1721년)는 우암 송시열의 수제자로 사계 김장생→신독재 김집→우암 송시열로 이어지는 서인 노론 계열의 학통을 계승한 대학자이다.

그는 정읍에서 송시열이 죽음을 맞을 당시 의복과 서적 등을 유품으로 받았을 뿐 아니라 스승의 유지(遺志)를 받들 제자로 지목되었다.

이에 송시열의 유언에 따라 권상하는 화양동에 만동묘(萬東廟)를 짓고 청나라에 의해 멸망한 명나라의 황제인 의종과 신종의 제사를 지냈다. 이로써 권상하는 송시열을 계승한 서인(노론) 기호학파의 지도자라는 사실을 만천하에 알렸다.

그가 일찍이 우인(友人) 윤노동에게 써준 ‘송석재기(松石齋記)’는 특별히 소나무와 돌을 사랑했던 친구의 취향과 기호에 담긴 깊은 뜻을 밝히고 있는 글이다. 이 글 역시 평생 출사(出仕)의 뜻을 접고 산림에 은거한 채 오로지 학문 연구와 제자 강학에 힘쓴 선비의 삶을 소나무와 돌의 덕성(德性)에 비추어 찬양하는데서 크게 벗어나지 않고 있다.

특히 권상하가 윤노동이 “소나무와 돌을 사랑한 까닭이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빛깔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곧고 단단한 덕성(德性)을 구하기 때문이다”고 변호하는 대목에 이르면 이른바 도학자들이 개인의 취향과 기호조차 군자의 고상한 성품으로 포장하고 우아한 외양으로 꾸미려고 얼마나 애썼는가를 짐작해볼 수 있다.

“소나무의 푸른빛과 돌의 하얀 빛은 단지 겉으로 드러난 화려함이고, 그 본성은 곧음과 단단함이라고 할 수 있다. 세상 사람들은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빛깔만 사랑할 뿐 그것의 곧고 단단한 덕성(德性)에 대해서는 아득하게 여겨 어느 누구도 마음을 두지 않는다.

사람들은 추운 겨울철에 홀로 푸르른 소나무와 거센 물결에도 우뚝 서 있는 돌 역시 사랑하지만 어떤 것도 빼앗을 수 없는 곧음과 해칠 수 없는 단단함이야 누가 따라갈 수 있겠는가?

우인(友人) 윤성조(尹聖照: 윤노동)는 길을 가다가 우연히 조그만 소나무와 돌 한 조각을 마주쳐도 그때마다 시가(詩歌)를 읊으면서 자리를 쉬이 뜨지 못한다. 다른 사람의 눈에는 여기저기 널려 있는 돌 한 조각, 푸른 소나무 한 그루에 불과하건만 그가 그들을 사랑하는 마음은 북송의 시인 소동파가 소나무를 두고 친구라고 하고 송나라의 서화가 미불이 석장(石丈)에게 절을 한 것보다 더욱 심했다. 이 때문에 세상의 웃음거리가 된 지 오래이다. 그러나 세상 사람들이 자신을 비웃어도 화내지 않고 오히려 더욱 소나무와 돌을 사랑했다.

이에 소나무와 돌로 자신이 거처하는 서재의 이름으로 삼았다. 그곳 서재에도 또한 돌과 소나무가 널려 있을 뿐이다. 이렇게 볼 때 그가 소나무와 돌을 사랑하는 까닭이 겉으로 드러난 모습과 빛깔 때문이 아니라 오로지 곧고 단단한 덕성(德性)을 구하기 때문임을 알 수 있다.

아침저녁으로 오로지 소나무 그림자와 돌 빛깔을 좌우로 둘러놓고 그 가운데에 고요히 앉아 스스로 정취에 잠기는 것은 오로지 소나무와 돌의 곧고 단단한 덕성이다. 이것은 마치 계수나무에 붙어사는 좀벌레가 계수나무만 뜯어 먹고 사는 바람에 저절로 맑은 향기가 온몸을 두루 감싸고 있는 것과 같은 이치다. 나는 훗날 그가 사용할 자료가 모두 여기에서 나와 온 세상에 깨우침을 줄 것임을 알고 있다.” 권상하, 『한수재집』 ‘송석재기(松石齋記)’

이러한 까닭에 변계량과 권상하와 장유와 그들이 쓴 글 속 인물들의 매화·소나무·돌을 사랑한 까닭과 뜻은 유학(성리학)적 사유 및 세계와 사대부의 삶에서 용납하는 취향과 기호의 범위 안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았다고 해석할 수 있다.

따라서 진정한 의미에서 특정 학문과 이념의 외부적·내재적 구속과 지배에서 벗어나 개인의 취향과 기호를 자유롭게 추구한 지성사적·문학사적 경향은 성리학의 세계 바깥으로 일탈과 탈주를 감행한 지식인과 문인들이 등장하면서 비로소 시작되었다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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