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국민과 유권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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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국민과 유권자
  • 강기석 기자
  • 승인 2013.11.26 12:3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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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 동시 지방 선거전이 한창이던 지난 5월 집에서 거리로 나오기만 하면 많은 사람들이 허리를 90도로 꺾어 인사를 하는 장면을 볼 수 있었다. 형형색색의 옷을 갖춰 입고 저마다 고유번호를 새긴 어깨띠를 두른 이들은 모든 행인들을 향해 깍듯한 예의로 지지를 호소했다.

자유당 정권 시절부터 지금까지 국회의원과 대통령을 선출하는 수많은 선거 때도 마찬가지였다. 국민을 섬기겠다는 출마자들의 겸손함과 가난하고 힘없는 서민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의지를 이들은 아침저녁 출퇴근길에서 국민들에게 머리 숙여 인사함으로써 다짐하곤 했다.

이들이 내놓은 공약도 밝은 미래를 꿈꾸게 하기에 충분했다. 권력을 가진 자들보다 약한 자들을 위한 각종 정책은 모두가 평등한 사회실현이 당장이라도 가능할 것만 같았다.

그러나 선거가 끝나면 어떠했는가. 당선자는 ‘당선사례’, 낙선자는 ‘낙선사례’라는 플래카드와 벽보한 장으로 모든 것을 과거로 되돌려 놓을 뿐이었다. 더 이상 거리에서 인사하는 사람도 없고, 국민을 섬기겠다는 겸손함과 힘없는 서민들을 위해 봉사하겠다는 의지도 찾아볼 수 없었다. 그들은 마치 전제군주와 같은 권력을 누리고, 탐관오리와 같은 치부를 즐기고, 더러는 검찰청을 드나드는 범죄자로 전락했을 뿐이었다. 선거 홍보물에서 보았던 활짝 웃는 자상하고 봉사정신이 투철한 이들이 아니었다.

선거 전과 선거 후 무엇이 이들을 전혀 다른 사람으로 바꿔놓을까.

한 통계에 따르면 선거 때 가장 많이 사용되는 단어는 '국민(혹은 시민)'이었다. 선거 때 등장하는 모든 공약의 목적어가 바로 국민이기 때문이다. 그러나 실상 선거 출마자들에게 국민은 없다.

선거라는 특수한 상황에서 그들에게 국민은 별반 의미가 없다. 중요한 것은 '국민'이 아니라 '유권자'이기 때문이다. 머리 숙여 인사했던 겸손함과 봉사정신도 상대방이 유권자였기 때문이지 국민이기 때문은 아니었다.

유권자는 한시적인 신분이다. 대통령 선거에서는 5년마다 한 번씩 그 신분이 주어진다. 국회의원과 지방선거에서는 4년마다 한 번씩 주어진다. 이때, 즉 국민이 유권자일 때에만 국민은 정약용의 <목민심서>에 등장하는 목민관과 같은 꿈을 꾸는 이들을 만날 수 있다. 또 선거 출마자들도 이때에만 그와 같은 목민관을 말할 뿐이다.

지난 5월 유권자 신분의 국민은 지방선거 출마자에게 머리 숙여 인사하지 않았다. 오히려 인사를 받았다. 그러나 국민의 신분으로 되돌아온 지금 그 유권자는 더 이상 선거를 통해 선출된 이들에게 똑같이 머리 숙여 인사를 받지 못한다. 오히려 선거 때 출마자가 그랬듯 이제는 유권자가 머리 숙여 인사를 해야 한다.

프랑스 사회학자 피에르 부르디외는 “위로 오르려면 고난을 함께 했던 사람들도 한때의 인연에 불과하다고 여기는 변절이 필요하다”고 말했다. 지금까지 우리가 보아왔던 수많은 위정자의 모습이 그랬다. 각종 선거 때마다 유권자는 당선자와 고난을 함께 했던 한때의 인연에 불과했던 것이다.

우리 사회에서 많은 권력은 각종 선거를 통해 주어지고 있다. 그 권력이 선거 때 유권자 대하듯 행해지기를 바라는 것은 헛된 꿈에 불과한 것일까.

<2010년 7월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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