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부적격자를 적격자라 우기는 대통령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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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부적격자를 적격자라 우기는 대통령
  • 한정곤 기자
  • 승인 2014.07.01 08:3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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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지난 6월30일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하고 있는 박근혜 대통령. <사진:청와대 홈페이지>

박근혜 정부 2기 내각 후보자들과 관련된 각종 의혹들이 봇물처럼 쏟아지고 있다. 이미 두 명의 총리 후보자가 청문회에도 서지 못한 채 스스로 낙마했고 청문회를 앞둔 장관 후보자 몇몇의 앞날도 장담할 수 없다. 정부 관료들에 대한 엄격한 검증의 결과다.

그동안 우리 사회는 개발독재의 묵인 하에 지도층의 온갖 비리가 횡행했다. 조그만 권력이라도 쥐었다 싶으면 어김없이 뒷거래에 발을 담았고 지위를 이용한 특혜까지 누렸다.

관료제 속에서 행해지는 의사결정 구조에 이 같은 비합리적인 부정비리는 그들을 더 높은 권력으로 빠르게 이동시켜주는 또 다른 수단이기도 했다.

10여 년 전 도입된 청문회 제도는 이들을 걸러내는 최소한의 역할을 하고 있다.

어쩌면 청문회 제도가 아니더라도 첨단 IT기기들이 동원되는 정보화 사회에서 감추려 하는 부정비리를 들추어내는 것은 그리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다. 낙마한 두 명의 총리 후보 역시 이미 청문회 이전에 온갖 부적절한 행위로 인해 부적격자 판정이 나지 않았던가.

그런데도 대통령의 잣대는 다른 곳을 바라보고 있다. 두 명의 총리 후보자 낙마와 관련한 지난 6월30일 발언은 한마디로 어이가 없다.

이날 대통령은 수석비서관회의를 주재한 자리에서 “총리 후보자의 국정수행 능력이나 종합적인 자질보다는 신상털기식, 여론재판식 비판이 반복돼 많은 분들이 고사하거나 가족 반대로 무산됐다”고 말했다.

또 “청문회에 가기도 전에 개인적인 비판과 가족 문제가 거론되는 데는 어느 누구도 감당하기 어려웠던 것 같고 높아진 검증기준을 통과할 수 있는 분을 찾기가 현실적으로 매우 어려웠다”고 정원홍 총리 유임의 배경을 강조했다.

대통령의 말을 뒤집으면 스스로 고사하거나 가족이 반대하는 것은 감추고 있는 무언가가 있다는 의미다. 후보로 추천할 만한 이들은 털릴 게 많아 손사래를 친다는 말과 무엇이 다른가.

털어서 먼지 안 나는 사람은 없겠지만 사회통념상 결코 용납할 수 없는 사람도 존재한다.

지난해 1기 내각 후보자 가운데 낙마한 이들과 두 명의 총리 후보의 경우가 그렇다. 논문표절 등의 의혹을 받고 있는 김명수 사회부총리 겸 교육부장관 후보자 역시 다르지 않다. 오죽하면 여당에서조차 대통령과 다른 견해들이 나오는지를 생각해야 한다.

그러나 대통령과 이들 후보자는 자신의 잘못이 무엇인지조차 깨닫지 못하고 있는 것 같다. 부정비리를 당연시하고 신상털기식 의혹과 여론재판식 검증기준으로 억울한 희생자인 양 행세하고 있다.

알면서 모른 체 하는 건지, 실상은 전혀 모른 채 겉모습만 보고 미국 청문회 운운하는 건지는 알 수 없지만 능력과 자질 중심의 청문회로 제도를 뜯어고치자는 발상은 차라리 안쓰럽다.

실례 하나를 들어보자. 지난 1993년 빌 클린턴 대통령 당시 조 베어드는 미국 역사상 첫 여성 법무장관 후보에 올랐다. 그는 장관 취임도 못하고 불법 체류자를 가정부로 고용한 사실이 드러나 사퇴했다.

멀리 갈 것도 없다. 올해 초에는 마크 하퍼 영국 이민장관 역시 집에서 고용한 청소부가 불법체류자라는 사실을 뒤늦게 알고 바로 자진사퇴했다. 이들 대통령의 말처럼 신상털기의 희생양들인지 묻고 싶다.

국민의 눈에 부적격자가 대통령 눈에 적격자인 박근혜식 청문회가 지금 21세기 대한민국에서 진행되고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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