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는 만큼 보인다?”…실재와 허상의 불일치와 배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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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는 만큼 보인다?”…실재와 허상의 불일치와 배반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7.05.12 08:0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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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⑪…관조(觀照)와 경계(境界)와 사이(際)의 미학②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⑪…관조(觀照)와 경계(境界)와 사이(際)의 미학②

[한정주=역사평론가] ‘신루(蜃樓: 신기루)’를 소재로 삼아 글을 쓴 이옥은 이보다 한발 더 나아가 우리가 ‘보고 있는 것’은 마치 신기루(蜃氣樓)처럼 진짜인지 가짜인지 알기도 어렵고 알 수도 없다는 회의와 혼란 속으로 우리를 끌고 들어간다.

실재(實在)인 듯 보이지만 다가가면 허상(虛像)과 환상(幻像)인 것을 알고 돌아섰다가 다시 보면 실재하는 것 같아 다시 가까이 가보면 결국 허상과 환상인 게 신기루다.

이옥은 제 아무리 웅장하고 화려한 것도 한순간 사라지고 마는 신기루처럼 영원히 존재할 수 없다는 사실을 말하면서 이러한 까닭에 실재(實在)도 결국 허상(虛像)이요 환상(幻像)일 뿐임을 밝히고 있다.

실재와 허상의 불일치와 역설적 관계를 신기루에 빗대어 쓰고 있지만 여기에서 필자는 ‘아는 것’과 ‘보는 것’의 관계 역시 실재와 허상의 불일치와 배반에서 한 치도 벗어나지 않는다는 생각을 읽는다.

즉 ‘아는 만큼 보이는 것’이 아니라 ‘아는 것’과 ‘보는 것’은-비록 일치하는 것처럼 생각하지만-결코 꼭 들어맞지 않고 반드시 서로가 배반한다.

“들판의 기(氣)는 성곽을 이루고 바다의 기는 신기루를 만든다. 어떤 이는 이렇게 말한다. ‘바다 속에 바다짐승이 있어 이름이 신(蜃)인데 뱀의 몸뚱이에 1000자나 되며 불의 갈기에 용의 뿔을 지녔다. 이것이 기(氣)를 뿜어내어 누대의 형상을 이룬다.’

박물학에 밝은 사람은 이렇게 말한다. ‘정말로 그런 것이 있다. 그 뿔에 불을 지펴서 그 연기가 붉은색 푸른색을 내는데 그것을 얽어서 작은 누대를 만든다.’ 그렇다면 그 누대라는 것은 과연 바다의 기인가? 바다의 기가 아니라 과연 신(蜃)의 기가 그렇게 만드는 것인가?

어렸을 적 옆집의 조공(趙公)에게서 이런 이야기를 들었다. 봄에 날마다 영인(靈仁)의 바다에 누대가 만들어져 위로는 세 겹의 층을 이루고 안 길이는 1000길쯤 된다. 푸른 기와, 화려한 서까래, 옥 자물쇠가 채워진 문, 알록달록한 난간, 흰 칠을 한 벽, 봉황을 드리운 서까래가 그림처럼 밝고 거울처럼 현란하여 그 물상을 이루 다 표현해 낼 수 없을 정도다.

잠깐 사이에 홀연 산을 의지하고 구름을 곁에 두어 연꽃 모양의 동자기둥이 작달막하고 황금이 겹겹으로 덮어서 아주 환하게 트이고 화려하다. 다시 잠깐 사이에 붉은 다락이 우뚝 솟아 흰 담이 구름처럼 뻗어 있고 돌문이 달과 같이 둥글며 주단(朱丹)의 수레와 비취 덮개의 마차를 타고 노는 놀이가 느긋하게 시작된다.

게다가 금빛 비늘을 입은 거인이 있어 붉은 삭모(투구지창)를 휘날리며 칼을 잡고 섰는데 칼은 푸른빛을 내며 마치 무지개처럼 기다랗다. 모두들 그것을 신(蜃)이라고 말했다고 한다.

그렇다면 신(蜃)의 기는 그렇게 신령하고 우람하단 말인가? 작은 사람이 와두옥(瓜斗屋: 아주 작은 집)을 일으킨다 해도 산에서 나무를 도끼로 찍고 진흙을 쌓아서 높이는 등 몇 날이 지나서야 비로소 이루며 대옥(大屋)은 한 해, 사기(虒祈: 춘추시대 진평공(晉平公)의 궁궐)는 삼 년, 아방(阿房: 진시황의 궁궐)은 십 년이 걸려도 이루지 못하거늘 순식간도 안 되어 이루고 또 순식간도 안 되어서 이지러뜨리다니 어찌 그렇게 할 수가 있는가?

계(薊: 지금의 북경 지역)의 들판에 나무가 있어 그 숲이 일천리나 되는데 홀연히 나타났다가는 잠깐 사이에 없어지니 이름하여 연곤(烟崑)이라고 한다. 구산(邱山)에는 토수조(吐綬鳥)가 있어 붉은 기운을 불어내어 구부러뜨려 글자를 만든다. 신룡이 숨을 불면 비단 구름이 따르고 도마뱀이 뿜어내면 얼음이 구슬로 된다. 사물도 역시 이러하거늘 기가 영험한 작용을 하는 것을 어찌 측량할 수 있겠는가?

아무런 원인도 없이 경영해내고 아무런 것도 빌지 않고 이루어내니 내가 꼭 바다와 신(蜃)이 만들어낸다고 단정할 필요가 있겠는가? 누대가 아니면서 누대이고, 누대가 없는 데서 누대가 있게 하니 이것은 정말로 볼 만한 광경이다. 하물며 이야기를 전하는 사람들이 말하듯 우뚝하고 번쩍번쩍함에랴 더 말해 무엇하겠는가?

화석(花石)의 바깥은 바다이니 교룡과 신(蜃)이 거처한다. 매번 봄마다 끓는 해가 지질 듯하고 하늘이 비를 내리려는 기색이 있을 때에는 왕왕 신기루를 보는 경우가 있다고 하는데 나만은 아직 보지 못하여 한스러웠다.

하루는 해변에 거처하는 사람이 신기루가 일어난다고 알려주기에 바다로 나가서 바라보았다. 내게서부터 약 10리쯤 되는 곳에 산이 바다를 걸터타고 서 있는데 짙푸르다 못해 검푸렀으며 바람막이를 이루고 병풍을 이루고 담을 이루고 성을 이루어 홀연 구멍이 뻥 뚫려서 큰 성문을 이루었다.

홀연 또 위로 뻗고 아래로 드리워서 일천 기둥의 다리를 이루었으며 홀연 종으로 뻗되 횡으로는 뻗지 않아서 숲처럼 들어선 화표(華表)의 형상을 하였다. 홀연히 뚝 끊어지고 뒤얽혀 일어나 줄줄이 이어진 언덕들이 되고 홀연 또 합하여 다시 바람막이가 되고 병풍이 되고 담이 되고 성이 되었으며, 그 큰 성문은 여전히 닫히지 않은 채였다.

바야흐로 크게 성대할 때에는 바다 한 가운데 섬들이 모두 일어나 답하여 토란 크기만 하던 것이 주먹 크기가 되고 주먹 크기만 하던 것이 한 말 크기가 되며 한 말 크기이던 것이 집 한 채 크기가 된다. 낮은 것은 궁륭 형태이고 뾰쪽한 것은 네모꼴이며 위는 평평하고 처마 같다. 따라서 그것을 누대라 하더라도 안 될 것은 아니다.

또한 홀로 뚝 떨어져서 있는 것은 뿌리로 갈수록 점차 성글어 여위어지고 머리꼭대기는 둥글고 넓적하며 우뚝 서서 덮개 같이 그늘을 드리워 마치 집 위에 있는 버섯 같다. 이것이 곧 신기루의 덮개다.

하지만 이것은 아슴푸레한 모습이요 아득히 푸르른 모양이다. 집채라고 하면 집채이고, 산이라고 하면 산이고, 구름이라고 하면 구름이고, 안개라고 하면 안개다. 사치스럽게 불러서 누각이라고 하거나 과장해서 시장이라고 하여도 역시 틀린 것은 아니다.

하지만 구조의 상세한 모습이라든가, 채색의 화려함이라든가 하는 것은 역시 호사가들이 해대는 말일 따름이다.

옛날 사람은 세상의 누대가 영구하게 존재하지 못한다는 사실 때문에 세상을 슬퍼하였지만 산도 또한 항구적일 수가 없거늘 누대가 어찌 영원할 수 있으랴? 나는 이런 이유로 그 사실을 거듭 슬퍼한다. 내가 일찍이 산의 높은 곳에 올라 들판을 바라보니 몇 이랑이라고 헤아릴 수 없을 바다가 청백색으로 넘실대었다.” 이옥, ‘신기루(蜃樓)’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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