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패한 권력과 허망한 권위에 기댄 명예보다는 차라리 광대의 삶 살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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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부패한 권력과 허망한 권위에 기댄 명예보다는 차라리 광대의 삶 살겠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7.04.06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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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⑩…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⑮
▲ 조선말기 풍속화가 기산 김준근의 ‘탈판’.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⑩…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⑮

[한정주=역사평론가] 옴에 걸려 참을 수 없는 가려움 때문에 큰 고통을 겪으면서도 오히려 ‘옴 삼매(三昧)’라는 재미난 말을 지어내 한 번 크게 웃는 것으로 가려움의 고통을 잊어버리는 조희룡의 글은 ‘해학으로 묘사할 수 있는 문장의 극치’를 보여준 한 편의 희작(戱作)이다.

“내가 최근에 옴에 걸렸는데 무엇이 빌미가 되었는지 모르겠다. 가만히 생각건대 나는 본래 해물을 먹지 못하고 오직 닭고기를 좋아하는 식성이라 이 섬에 들어온 두 해 동안 거의 몇 백 마리를 먹은 것 같다. 이로 인해 풍(風)이 발병한 것인가? 큰 구슬 작은 구슬이 온 몸에 오돌토돌 돋아나 근질근질 가려운 것이 한정이 없어 열 손가락 손톱이 다 닳아 무디어졌다.

하지만 그 가려움을 자세히 살펴보면 은미한 이치가 있다. 한 몸에서도 증상이 각기 달라 천심(淺深), 완급(緩急), 경중(輕重), 소밀(疎密), 취산(聚散), 부침(浮沈)하는 것 외에 얕으면서도 깊고 깊으면서도 얕은 것이 있고, 깊은데 더욱 깊고, 얕은데 더욱 얕은 곳도 있다.

한 곳에 두 가지 증상이 있거나 여러 곳이 한 가지 증상인 곳도 있고, 가려움 밖에 가려움이 있고 가려움 안에도 가려움이 있으며, 가려움이 다한 곳에 또 가려움이 다하지 않거나 가려움이 다하지 않았는데 가려움이 멈춘 곳도 잇다. 여기저기 퍼져 거두어지지 않는 것도 있고, 난데없이 나타나는 것도 있다.

깊음이 다한 곳에서 다시 살 속을 뚫고 들어가려는 것도 있으며, 솟구쳐 꼭대기까지 이르러서 다시 높이 오르려 하는 것도 있다. 혹은 동쪽으로 혹은 서쪽으로 혹은 위로 혹은 아래로 향하기도 한다.

척추뼈가 끝나는 곳을 ‘구’라 하고, ‘퇴’라 하는데 가려움은 이곳에 이르러서야 그 증세가 그치게 된다. 이는 언어와 문자로 설명할 수 있는 것이 아닌데, 그 설명할 수 없는 곳에서 선리(禪理)를 얻게 된다. 이는 철적도인(鐵篴道人)의 ‘옴 삼매(三昧)’라 할 것이다. 한번 웃는다.” 조희룡, 『화구암난문』

아울러 꿩 그림에 탐닉하는 아들에게 고양이를 잘 그린 변상벽(卞相璧)이라는 이를 사람들이 ‘변고양이’라고 불렀던 일을 상기시키면서 만약 ‘꿩을 잘 그린 너에게 사람들이 ‘강꿩’이라고 부른다면 기분이 어떻겠느냐?’고 반문하는 듯한 강세황의 글 또한 질책보다는 한마디의 우스갯소리 속에 가르침을 담았던 옛 사람들의 지혜를 엿볼 수 있게 해 준다.

“기유년(己酉年: 1789년) 4월에 회양(淮陽) 관아에 꿩을 바친 사람이 있었다. 아들 신이 그것을 그렸는데 모습이 꼭 닮았다.

예전에 변상벽이란 사람이 고양이를 잘 그려서 당시 사람들이 그를 ‘변고양이’라고 불렀는데, 지금 혹 ‘강꿩’으로 불린다면 누가 더 부끄럽겠는가? 마땅히 꿩 그리는 데 애쓰지 않는 것이 좋겠다.” 강세황, 『표암유고』, ‘아들 신의 꿩 그림 뒤에 쓰다(題信兒畵雉後)’

특히 앞서 ‘동심의 미학’에서 니체를 만난 것처럼 필자는 ‘해학과 풍자의 미학’에서도 다시 니체의 철학을 만날 수 있었다. 특히 니체는 자전적인 기록이라고 할 수 있는 책인 『이 사람을 보라!』의 서문에서 “나는 이를 테면 허깨비 인형도 아니고 도덕괴물도 아니다. 더욱이 나는 이제껏 덕 있다고 존경받았던 인간 종류에 정반대되는 본성을 지닌 존재이다. 우리끼리 말하자면 이 점이 바로 내 긍지의 일부분인 것 같다는 생각이 든다. 나는 철학자 디오니소스의 제자다. 나는 성인이 되느니 차라리 사티로스이고 싶다.”(책세상. p324에서 인용)라고 말했다.

스스로를 디오니소스의 제자이자 사티로스라고 한 것이다. 디오니소스는 ‘술의 신’이자 ‘축제의 신’으로 누구나 알고 있다. 여기에서 니체는 이성을 상징하는 신 아폴론에 대립되는 개념으로 자신을 디오니소스의 제자라고 한 것이다.

잘 알려져 있다시피 니체는 이성이 지배하는 근대 혹은 근대성을 전면적으로 부정하고 전복·해체하고자 한 ‘반이성의 철학자’다.

그런데 ‘사티로스’가 도대체 누구이기에 “나는 왜 이렇게 현명한가?”, “나는 왜 이렇게 영리한가?", “나는 왜 이렇게 좋은 책을 쓰는가?”, “나는 왜 하나의 운명인가?”라고 하며 자신을 찬양하기를 마다하지 않고 스스로 ‘인간을 넘어선 인간(위버멘쉬)’이라 자처했던 서양 철학사 최고의 문제적 인물 니체를 사로잡았던 것일까?

사티로스는 얼굴은 사람이지만 머리에 작은 뿔이 있고 하반신은 염소의 모양을 띤 반인반수(半人半獸)로 디오니소스의 시종(侍從)이다. 디오니소스의 주연(酒宴)에 항상 등장하는데 장난이 매우 심하고 술과 여색을 심하게 밝히는 사내를 뜻하는 영어 ‘사티릭(satyric: 호색한)’의 어원이기도 하다. 디오니소스를 따라다니면서 주연(酒宴)에서 저속하고 익살스러운 말과 우스꽝스러운 몸짓으로 흥을 돋우는 존재라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본다면 어렵지 않게 사티로스가 다름 아닌 ‘광대’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자신은 사티로스이고 싶다는 니체의 말은 스스로 ‘광대’임을 자처한 것이라고 해석할 수 있다.

그가 광대로 자처한 까닭은 무엇인가? 그것은 세상의 모든 권력과 권위를 조롱의 방식과 풍자의 방법을 통해 전복하고 해체하기 위해서였다. 성인이 되어 도덕을 설파하는 권위적인 삶을 살기보다는 차라리 세상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광대로 살겠다는 것이 니체의 의지였다.

실제 니체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에서 차라투스트라를 이해하는 유일한 인간 존재로서 ‘광대’를 높여 찬양했다.

『생활의 발견』의 저자이자 근대 중국을 대표하는 수필가이자 소설가요 비평가로 명성을 떨친 린위탕(林語堂)은 “독특한 해학과 날카로운 풍자의 리얼리즘”을 내포한 글쓰기의 대가(大家)이다. 그는 삶의 해학과 웃음의 미학을 통해 중국인 특유의 기질과 성향을 해부한 『임어당의 웃음』이라는 책의 ‘차라투스트라와 광대의 대화’라는 대목에서 이렇게 말하고 있다.

“니체의 저서에는 『차라투스트라는 이렇게 말했다』가 있는데 거기에서 페르시아의 조로아스터교의 교주가 산을 내려와서 대예언으로 대중에게 설파한다. 그는 지금 바보와 왕궁에 와서 국왕과 수상과 정승들과 왕의 광대와 이야기를 나누고, 그중에서 광대가 가장 현명하다는 것을 느꼈다. 광대만이 왕국에서 무슨 일이 일어났는지를 안다. 광대만이 인생을 희롱하는 것을 허락지 않았다. 그의 웃음 속에는 눈물이 있었으며, 눈물 속에는 웃음이 있었다”라고(『임어당의 웃음』, 임어당 지음, 이평길 옮김. 선영사. 1994. p83에서 인용)

인생의 웃음과 눈물 속에 담긴-다시 말해 요즘 유행하는 말로-‘웃기면서도 슬픈’ 해학과 풍자의 철학을 알고 있는 광대만이 인생을 희롱하는 것을 허락하지 않을 자격이 있는 것이다.

그런데 “나는 성인이 되느니 차라리 사티로스이고 싶다”고 한 니체의 선언은 흥미롭게도 “나는 중년 이후 세상일에 대해 마음이 재처럼 되어 점차 골계(滑稽: 익살과 농담 속에 자신의 뜻을 숨기는 일)를 일삼으며 이름을 숨기고자 하는 뜻이 있었으니 말세의 풍속이 걷잡을 수 없이 더불어 말을 할 만한 자가 없었다. 그래서 매양 사람을 대하면 우언(寓言)과 우스갯소리로 둘러대고 임기응변을 했다”는 박지원의 고백과 일맥상통한다.

그것은 도덕군자(니체의 표현을 빌자면 도덕괴물)인 척하면서 부패한 권력과 허망한 권위에 기대어 명예와 이익을 얻느니 차라리 우스갯소리와 농담 속에서 세상을 조롱하고 풍자하는 광대의 삶을 살겠다는 의지의 표현이었다.

박지원을 비롯한 조선의 지식인들이 ‘해학과 풍자의 미학’에 담았던 철학이 바로 여기에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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