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임원경제지』에 관한 오해…농업 서적 넘어 조선판 백과사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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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임원경제지』에 관한 오해…농업 서적 넘어 조선판 백과사전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7.02.22 07:3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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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경제학자들] 농업·생활 경제학 완성한 경제학자…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③

[조선의 경제학자들] 농업·생활 경제학 완성한 경제학자…풍석(楓石) 서유구(徐有榘)③

[한정주=역사평론가] 교과서적 역사 지식을 동원해 『임원경제지』가 농학, 즉 농업에 관한 서적이라고 기억하고 있는 독자들은 필자가 줄곧 이 책을 두고 ‘농업 및 일상생활의 경제학서’라고 밝히고 있는 점에 대해 거부감(?)을 가질 지도 모르겠다.

그러나 다시 한번 단언하건대 『임원경제지』는 농업은 물론 일상생활의 경제활동을 종합적으로 밝혀 놓은 ‘경제학 서적’이다. 그 이유를 지금부터 살펴보자.

먼저 다소 지루할지 모르지만 『임원경제지』가 16가지로 분류해 담고 있는 정보와 지식의 내용부터 알아보겠다.

『임원경제지』는 보통 ‘임원십육지’라고도 부르는데, 그 까닭은 서유구가 이 책에서 ‘농업 및 일상생활의 경제’에 관해 모두 16가지 분야로 나누어 저술했기 때문이다.

(1) 본리지(本利志): 13권으로 농사 및 전제(田制)와 경작 등 농업 일반에 관한 내용으로 농업 생산의 이로움과 새로운 농사 기술과 영농법을 다루고 있다.
(2) 관휴지(灌畦志): 4권으로 채소 및 약용식물의 재배에 관해 다루고 있다.
(3) 예원지(藝志): 5권으로 화훼류 66종을 소개하고 그 재배 방법을 자세하게 다루고 있다.
(4) 만학지(晩學志): 5권으로 과수와 차·대나무·담배 등 특용작물의 재배와 수확 및 관리 방법을 다루고 있다.
(5) 전공지(展功志): 5권으로 누에치기와 길쌈·비단 직조와 염색 방법 등 향촌 여성들의 농사 및 일상의 경제활동을 다루고 있다.
(6) 위선지(魏鮮志): 4권으로 농업과 관련한 기상 및 천문 관측을 다루고 있다.
(7) 전어지(佃漁志): 4권으로 축산 및 사냥 그리고 강과 바다의 수산에 관해 다루고 있다.
(8) 정조지(鼎俎志): 7권으로 각종 음식과 요리 방법 및 조미료 그리고 술과 계절 음식을 다루고 있다.
(9) 섬용지(贍用志): 4권으로 집의 건축과 가재도구 및 장식품 그리고 의복과 각종 교통 및 운송수단을 다루고 있다.
(10) 보양지( 養志): 8권으로 건강한 생활을 위한 섭생 및 양생법과 어린아이를 위한 육아법을 다루고 있다.
(11) 인제지(仁濟志): 가장 많은 분량인 28권으로 인체 질병의 원인과 치료에 관한 한방의약 전반을 다루고 있다.
(12) 향례지(鄕禮志): 5권으로 집안에서 반드시 치러야 할 관혼상제와 가정의례를 다스리는 방법을 다루고 있다.
(13) 유예지(遊藝志): 6권으로 독서법·실용수학·활쏘기·서예·서화 등 자기 개발에 관한 내용을 다루고 있다.
(14) 이운지(怡雲志): 8권으로 취미생활과 관련한 도구 와 문방구 그리고 예술품 감상과 장서 및 서적 관리는 물론 여행 등 경제적으로 여가생활을 누리는 방법을 다루고 있다.
(15) 상택지(相宅志): 2권으로 전국의 지리환경을 살펴서 삶의 터전으로 삼을 만한 주거 공간을 선택하는 방법에 관해 다루고 있다.
(16) 예규지(倪圭志): 5권으로 상업 활동과 재산 증식 및 관리 그리고 전국 팔도의 시장경제에 관해 다루고 있다.

농업을 다룬 ‘본리지’에서 시작해 상업과 시장을 다룬 ‘예규지’로 마무리하고 있는 책의 구성과 서술 방식에서 알 수 있듯이 『임원경제지』는 농업은 물론 의식주를 비롯한 당대 사람들의 일상적인 경제생활 전반을 총체적으로 다루고 있는 백과전서라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여기에서 농업은 오히려 향촌의 경제생활의 한 분야로 다루어지고 있을 뿐이다. 물론 당시 농업 경제의 중요성 탓에 ‘본리지’는 첫 시작 페이지를 장식할 만큼 중요하게 다루어져 있다.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본리지(13권)’보다 한방 의약 및 처방법을 다룬 ‘인제지(28권)’가 2배 가까이 많은 분량으로 기록되어 있다는 사실 역시 알 수 있다. 더욱이 여기에다가 건강한 삶과 생활을 다룬 ‘보양지’가 8권을 차지하고 있다. 농사보다 의료 및 건강에 관한 내용이 훨씬 많은 셈이다.

백성들이 가정 및 일상의 생활경제를 다스릴 때 생계나 의식주 문제 못지않게 중요한 것이 건강 및 의료 문제라는 사실을 실제 경험을 통해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기 때문에 서유구는 ‘인제지’와 ‘보양지’에 그토록 많은 지면을 할애할 수 있었다고 하겠다.

그리고 마지막 부분에서 상업과 재산 관리 및 증식 방법은 물론 팔도의 시장에 대해 다룬 것은 당시 시장경제와 상품-화폐 관계의 발전에 걸맞은 향촌의 경제생활을 특별히 강조한 서유구의 의도를 엿볼 수 있는 대목이다. 따라서 『임원경제지』가 ‘농업에 관한 실학 서적’ 즉 농학서라는 교과서적 상식(?)은 이 순간부터 말끔히 지워버려야 할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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