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먹물들’의 위세와 권위 의식에 도전한 기인(奇人)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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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먹물들’의 위세와 권위 의식에 도전한 기인(奇人)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7.02.10 07:1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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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⑩…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⑧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⑩…해학(諧謔)과 풍자(諷刺)의 미학⑧

[한정주=역사평론가] 건어물을 짊어지고 가깝고 먼 곳을 따지지 않고 장터를 돌아다니는 장돌뱅이 가수재(賈秀才)가 유생(儒生)들을 조롱하거나 꾸짖고 술에 취해 스님들을 희롱하는 광태(狂態)를 기록한 김려의 ‘가수재전(賈秀才傳)’ 또한 해학과 풍자로 말끝마다 공자나 맹자 같은 성현을 들먹이거나 혹은 부처를 팔아먹고 사는 이른바 ‘먹물들’의 위세와 권위 의식에 도전한 한 기인(奇人)에 대한 이야기라고 할 수 있다.

“가수재(賈秀才)는 어떠한 사람인지 모른다. 늘 적성현 청원사(淸原寺)에 드나들었으며 건어물 파는 것을 직업으로 하였다.

그는 팔 척 신장에 머리를 땋아 늘이고 얼굴이 숯검정 같았다. 누가 혹 성명을 물으면 늘 다음과 같이 말했다. ‘나의 성은 천(天)이요, 이름은 지(地)요, 자는 현황(玄黃)이라오.’ 그러면 묻던 사람이 허리를 잡았다. 두 번 세 번 꼬치꼬치 물으면 ‘나는 장사꾼이라 성이 가(賈)씨라우’라고 하였기에 그는 그때부터 가수재로 통하게 되었다.

언제나 새벽이면 일어나서 건어물을 짊어지고 원근의 장터로 다녔다. 하루에 동전 오십 전만 벌면 술을 사 마셨고 평생 밥을 먹는 것 같지 않았다.

청원사는 적성현의 남쪽 한적한 곳에 자리 잡고 있는데 지방의 유생들이 집을 찾아와서 글을 읽곤 하였다.

함박눈이 그친 어느 날 가수재가 눈 속에 빠져 흠뻑 젖은 발로 유생들이 모여 앉은 사이로 불쑥 들어가 앉았다. 유생들이 화를 내며 꾸짖자 가수재는 그들을 흘겨보며 말했다. ‘당신들 위세는 진시황을 뺨치겠는걸. 나의 장사는 여불위만 못하구려. 어이쿠 무서워라. 무서워!’ 그러고는 벌떡 누워서 코를 드르렁 고는 것이었다.

유생들은 더욱 화를 내며 중을 불러 끌어내라 하였다. 그러나 무거워서 꼼짝할 수도 없었다.

이튿날 불전(佛殿) 위에서 누군가가 이태백의 시 ‘원별리(遠別離)’를 읊는데 목청이 아주 청아했다. 유생들이 달려가 보니 바로 가수재가 아닌가. 유생들은 비로소 이상하게 여기고 물었다.

‘자네, 시 지을 줄 아느냐?’ ‘암 짓지요.’ ‘글씨는 쓸 줄 아느냐?’ ‘암 쓰지요.’ 유생들은 종이와 붓을 주며 시를 지어 보라고 하였다. 그러자 가수재는 벼루맡에 앉아서 미친 듯이 먹을 갈더니 왼손으로 뭉뚝한 붓을 들어서 종이 위에다 어지러운 초서로 써 내려갔다.

‘청산 좋고 녹수 좋다 / 녹수청산 천 리 길에 / 고기 팔아 술 마시고 귀거래여! / 한 백년 길이길이 이 산중에 늙으리라.’

가수재는 붓을 던지고 껄껄 웃었다. 그의 글씨는 고산 황기로와 거의 비슷했다. 그러자 유생들이 가수재를 달리 보게 되었다. 다시 시 한 수를 청하자 벌컥 성을 내어 유생을 꾸짖고 끝내 듣지 않았다.

어느 날 술에 크게 취하여 복어를 갖다 부처님 전에 공양하고 합장하여 절을 올리는 것이었다. 중들이 질색을 하고 나섰다.

‘너희들 불경을 못 본 모양이구먼. 불경에 석가여래가 복어를 잡수셨다 하지 않았나?’ ‘어떤 불경에 그런 말이 있나요?’ ‘『보리경』에 있지. 내가 외어 보지.’

그러고는 가수재가 갑자기 대불전 아래 가부좌를 틀고 앉아 웅얼거렸다. ‘여시아문(如是我聞), 부처님이 일시 서양의 바다 가운데 계실 적에 파사국(婆娑國)에서 바친 큰 복어를 잡수시더라. 부처님 이마 위에서 천만장무외광명(千萬丈無畏光明)이 발해지자, 비구(比丘)와 모든 대중에게 고하되, ‘이 복어는 큰 바다 가운데 놀며 청정(淸淨)한 물을 마시고 청청한 흙을 먹은지라 여래(如來)에게 무상의 묘미(妙味)로다’ 하시더라.’

이 말을 듣는 자들이 모두 크게 웃었다. 가수재는 청원사에 머문 지 한 해 남짓하여 어디론가 떠났다.

기이하도다. 가수재의 사람 됨됨이여! 기특한 재주를 품고 탁월한 뜻을 지녔으되 어찌하여 그다지 제멋대로 광태를 부려 사람들로 하여금 자기의 참모습을 알지 못하게 하였던가. 아마 그는 옛날의 소위 은군자(隱君子)의 부류일 것이다.

구성에 사는 정씨 아저씨가 여릉으로 나를 찾아와서 이 이야기를 아주 자세히 들려주셨다. 나는 가수재를 만나보고 싶어 청원사로 갔으나 그가 떠난 지 이미 사흘 뒤였다.” 김려, ‘가수재전(賈秀才傳)’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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