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쟁자보다 먼저 시작하라”…조선의 황금대왕 최창학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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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쟁자보다 먼저 시작하라”…조선의 황금대왕 최창학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7.02.01 08:12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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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거상에게 배운다]⑥ 한 발 앞서 투자한 시장 선점…새로운 사업 가치 창출
▲ 1938년 당시 49세의 최창학.

[조선 거상에게 배운다]⑥ 한 발 앞서 투자한 시장 선점…새로운 사업 가치 창출

[한정주=역사평론가] 일제강점기 조선 최고의 갑부는 누구였을까? 이 궁금증을 해소해줄 만한 흥미로운 자료가 하나 있다. 해방을 5년 앞둔 1940년 서울 재산가의 1년 소득 순위를 발표한 기록이 바로 그것이다.

이 자료에서 소득 1, 2, 3 순위에 오른 인물을 살펴보자. 먼저 공동 3위에 오른 인물은 20만원의 소득을 올린 경성방직의 김연수와 화신백화점의 박흥식이다. 2위는 ‘조선의 토지대왕’이라고 불린 민영휘의 장남으로 전 동일은행 은행장을 지낸 민대식이다. 그리고 대망의 1위에 오른 인물은 ‘조선의 황금대왕’이라는 별호를 갖고 있던 최창학이다.

‘골드러시(gold rush)’라고 불린 황금의 시대는 19세기 중반 미국에서 일어난 사회 현상을 가리키는 말이다. 그런데 우리 역사에도 ‘골드러시’라고 불린 황금의 시대가 있었다. 그것은 일제 강점기인 1930년대이다.

전봉관 교수가 쓴 『황금광 시대』에 실려 있는 <삭주금광채광관>을 보면 “지금 조선은 그야말로 황금광 시대이다”라는 대목이 나온다. 여기에서는 당시 남녀노소를 불문하고 조선의 백성들이 모두 금광 이야기에 미쳐 있었다고 전한다.

이처럼 모든 사람들이 황금에 매혹되어 미쳐버리다시피 한 1930년대 조선의 ‘골드러시’를 만든 주인공은 다름 아닌 1940년 조선 최고의 소득을 올린 인물 곧 최창학이다.

최창학은 금맥(金脈)을 찾겠다는 한 가지 생각으로 젊은 시절부터 한반도 북부 지역의 산천을 헤매고 다니다가 30대 중반의 나이에 접어든 1923년 자신의 고향 근처인 평안북도 구성군 관서면 조악동에서 마침내 금광을 발견하게 된다.

당시 최창학이 발견한 금광은 전국 최고의 금맥을 자랑하는 광산이었고, 이 때문에 그가 설립한 삼성금광은 운산금광·대유동금광과 더불어 조선을 대표하는 3대 금광이라는 명성을 얻었다.

그러나 최창학이 단지 풍부한 금맥을 자랑하는 금광 하나를 발견한 재주밖에 없었다면 1930년대 이후 조선 제일의 갑부 반열에 오르지 못했을 것이다.

◇ “발 빠른 투자로 시장을 선점하라”

사업 수완이 뛰어났던 최창학은 금만 캐는 방식으로는 큰돈을 벌 수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었다. 그는 금맥을 발견한 조악동 주변의 토지와 산천을 사들였다. 그리고 ‘노다지’ 소문을 듣고 자신을 찾아온 사람들에게 채광구역을 임대해 경영했다.

최창학은 금맥이 풍부한 양질의 광구는 자신이 직접 개발하고 그 밖의 광구를 임대했는데, 이 경우에도 채광구역은 사방 백 척, 채광기간은 최고 6개월을 넘지 않았다. 이런 방식으로 최창학이 올린 금광 수입이 200만원을 넘어섰다고 한다.채광구역에 대한 임대 경영 사업은 최창학에게 ‘금 벼락’ 이외에 ‘돈 벼락’을 안겨 주었다.

조악동 삼성금광의 성공 신화를 발판삼아 최창학은 조선 제일의 ‘금광왕’으로 군림할 수 있었다. 최창학은 항상 자신의 경쟁자들보다 앞서 금맥을 짚는 정확한 안목과 더불어 누구보다 먼저 과감하게 투자하는 용단을 발휘해 독보적인 위치를 차지했다. 이 때문에 그는 어떠한 거래에서도 항상 시장 지배자로서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경쟁자들보다 한 발 앞서 과감하게 투자해 시장을 장악한 후 거래와 협상의 주도권을 행사한 최창학의 사업 수완은 일본 최대 재벌인 미쓰이(三井) 그리고 일본 광업과의 ‘금광 인수합병’ 과정에서 극적으로 드러났다.

금융, 화학, 섬유 산업 분야에서 식민지 조선과 대만에 대규모 투자를 하고 있던 미쓰이 재벌은 1927년 금광업에까지 진출할 계획을 세웠다. 당시 미쓰이 재벌은 금광을 찾아 개발하기보다는 이미 사업성을 보장받은 금광을 인수해 투자하는 것이 유리하다고 판단했다.

▲ 최창학이 포획한 한국호랑이와 함께 기념촬영을 하고 있다.

먼저 그들은 미국인 소유인 운산금광과 프랑스인 소유인 대유동금광과 협상을 벌였으나 여의치 않자 최창학의 삼성금광에 눈독을 들이기 시작했다. 미쓰이 재벌의 상황이 당장에라도 삼성금광을 인수해야 하는 다급한 상황이라는 사실을 안 최창학은 협상의 주도권을 쥔 채 거금 300만원을 받고 금광을 팔아넘길 수 있었다.

이 거래로 최창학은 300만원을 벌어들여 일약 600만원이 넘는 대 자산을 보유한 벼락부자가 될 수 있었다. 당시 『별건곤』이라는 잡지에서는 조선의 벼락부자들을 다루면서 최창학을 일컬어 ‘황금귀(黃金鬼)’라고 했다.

“벼락부자 벼락부자 하지만 근래 조선 사람으로서 이 최창학처럼 벼락부자가 된 사람은 없을 것이다. … 그는 여러 해 동안을 금점판으로 돌아다닌 까닭에 금광에 관한 경험과 지식은 상당히 있어서 몇 해 전에 구성군 관서면 조악동에서 금광 하나를 발견하여 자기의 삼촌 최 첨사에게 약간의 자금(2만원이라는 말이 있다)을 얻어가지고 채금을 시작하였으니 이것이 세상에 유명한 삼성사(三成社)란 금광이다. 이 금광은 한참 잘 날 때에는 20관 한 포대 20냥씩이 나서 불과 몇 달에 돈벼락을 맞아 수백만 원의 장자가 되고 그 뒤 산리총독(山梨總督) 시대에 삼정(三井) 회사에서 그것을 또 삼백만 원에 사가게 되니 놀라지 마시오. 적수공권(赤手空拳)으로 있던 최씨는 하루아침에 약 육백만 원의 거금을 가진 벼락부자가 되었다. 민영휘를 조선의 토지대왕이라 할 것 같으면 최씨는 조선의 황금대왕이라 하겠다.” 오수산, <벼락부자전>, 『별건곤』, 1932.11- (전봉관 저, 『황금광시대』, 살림, 2005에서 재인용)

그러나 최창학의 성공 신화는 여기에서 그치지 않았다. 그는 미쓰이 재벌에 삼성금광을 팔아넘긴 후에도 구성, 삭주, 의주 등 평안북도 일대에 수십 개의 금광을 인수하고 개발했다.

이때에도 돈이 될 만하다 싶으면 자신의 경쟁자들보다 앞서 과감하게 투자해 시장을 선점하는 최창학의 사업 전략이 발휘되었다. 이 투자로 최창학은 훗날 자신을 진정한 ‘황금대왕’으로 만들어 준 또 다른 대박 신화를 연출할 수 있었다.

◇ “한 발 앞서 투자해 시장을 선점하라”

황금대왕 최창학의 첫 시작은 금맥을 발견하고 금광을 개발한 것이다. 그러나 그의 사업 전략은 단순히 금을 캐내어 판매하는데 머무르지 않았다. 정작 그를 조선 제일의 갑부로 만들어 준 것은 광구 임대 경영 사업과 자신이 발견하거나 인수해 개발한 금광들을 일본 굴지의 재벌에게 큰 이익을 남기고 매도한 인수합병 사업이었다.

미쓰이 재벌에게 삼성금광을 팔아넘긴 후 발 빠르게 평북 일대의 여러 금광들을 인수해 투자한 최창학은 1938년 다시 미쓰이 광업과 미쓰비스 광업의 컨소시움으로 설립된 일본광업과 금광 매도 계약을 체결한다.

당시 최창학은 삭주군 벽동과 초산 일대의 광구 76개소를 600만원에 양도하는 계약을 성사시켰다. 이 계약의 성사로 최창학은 자산 규모 1000만원(현재 1조원 상당의 금액)이 넘는 조선 최고의 부자로 거듭 태어나게 되었다.

최창학의 신화는 금광 사업에 대한 뛰어난 안목과 더불어 다른 경쟁자들보다 앞서 투자해 시장을 선점하는 전략이 있었기 때문에 탄생할 수 있었다. 이러한 경영 전략 때문에 그는 자신의 회사와는 비교가 되지 않을 정도로 거대한 규모의 자본을 갖춘 일본 재벌과의 협상에서도 끝까지 주도권을 행사할 수 있었다.

기업을 인수하거나 합병해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사업은 오늘날 세계적 기업들이 널리 활용하고 있는 경영 전략 중 하나이다. 성공적인 인수합병 전략은 해당 산업의 주변부에 위치하고 있던 기업을 단숨에 ‘중심부=시장지배자’의 자리로 끌어올리기도 한다.

여기에서 인수합병 전략을 자세하게 논할 필요는 없다고 생각된다. 다만 황금대왕 최창학의 신화를 가능하게 한 경영 방법 또한 오늘날 황금 알을 낳기 위해 전 세계를 종횡무진하고 다니는 기업들이 채택하고 있는 인수합병 전략 중의 하나라는 사실만 확인해두자.

항상 자신의 경쟁자보다 한 발짝 먼저 투자해 시장을 선점하고 새로운 사업 가치를 창출하는 것, 그것은 바로 투자와 인수합병 시장에서 지금도 블루오션을 찾아다니고 있는 사람들에게 최창학이 가르치고 있는 경영 전략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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