통상 개화 통한 자주적 부국(富國)의 길…통상개국론
상태바
통상 개화 통한 자주적 부국(富國)의 길…통상개국론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7.01.25 10:09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의 경제학자들] 근대 개화파 경제학의 효시…환재(桓齋) 박규수(朴珪壽)④

[조선의 경제학자들] 근대 개화파 경제학의 효시…환재(桓齋) 박규수(朴珪壽)④

[한정주=역사평론가] 청나라의 현실을 목격한 이후 ‘민본 중심의 부국론(富國論)’이 조선의 부국강병을 위한 대내 전략이 곧 사회·경제 개혁으로 자리를 잡았다면 ‘통상개국론’은 서구 열강과의 관계를 스스로의 힘으로 주도하면서 최대의 경제적·외교적 이익을 얻겠다는 대외 경제·외교 전략이었다고 할 수 있다.

박규수는 18세기 실학파 중에서도 가장 적극적으로 해외 통상을 주장한 북학파 사상의 계승자다. 따라서 그가 해외 통상에 대한 어떠한 거부감도 없었을 것이라고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1860년대 이전까지만 해도 박규수는 통상론자라기보다는 해방론자(海防論者: 오랑캐인 서구 열강을 방어하자는 쇄국론)의 모습을 보인다. 필자 나름의 생각으로는 아마도 서학(西學)에 대한 탄압과 위정척사 및 쇄국론이 압도적인 정치 상황 탓에 그가 공적(公的)인 공간이나 공론의 장(場)에서는 통상개국을 주장하지 않았던 듯하다.

그러나 청나라 사행을 다녀온 후 그는 공공연하게 미국을 비롯한 서구 열강과 통상개국할 것을 주장한다. 청나라가 서구 열강에 대한 방파제 역할을 할 수 없음을 확인한 이상 자주적인 개국(開國)을 통해 서양의 선진 문명과 과학기술을 받아들이고 또한 통상(通商)으로 경제적·외교적 이득을 얻는 것이 조선이 나아갈 길이라고 확신하기에 이르렀기 때문이다.

박규수가 미국과의 수교를 통해 선진 과학기술을 받아들이고 필요한 물산(物産)을 수입해 부국강병을 꾀하고자 했다는 사실은 그의 제자인 김윤식을 통해 확인할 수 있다.

김윤식은 일찍이 박규수가 “미국은 지구상의 여러 나라 중에서 가장 부유하고 영토를 확장하려는 욕심도 없다고 하면서 우리가 먼저 수교 맺기를 청해 굳은 맹약을 맺는다면 고립의 우환을 모면할 수 있다”고 했다고 전해주고 있다.

특히 박규수는 세계 각국과 통상하는 전략이 서구 열강이 부강함을 누릴 수 있는 근본적인 힘이라고 보는 한편 그들이 조선을 침탈하는 까닭 역시 통상에 목적이 있으므로 우리가 제대로 대처만 한다면 개국이 해로움보다는 오히려 커다란 경제적 이익을 가져다 줄 수 있다고 주장했다.

“서양의 각 나라는 오로지 교역과 상업 활동을 중요하게 여깁니다. 그래서 출항하는 상선(商船)을 모두 장부에 기재하고 그곳에 실은 화물을 계산해 세금을 받아 나라의 재정으로 사용합니다. 이것이 그들이 자랑하는 부강(富强)의 방법입니다. 그들은 세계 여러 나라와 통상을 하는데 유독 우리나라와는 통상할 수 없었습니다. 그들이 몇 해에 걸쳐 우리나라를 침입해 사단을 일으킨 까닭 역시 모두 여기에 있습니다.” 박규수, 『일성록』 ‘고종 11년 6월25일’ 중에서

“과거에 중국은 강남(江南) 지방에서 전쟁을 할 때 서양의 대포를 많이 사서 사용했기 때문에 서양인들은 대포를 제조해 경제적으로 큰 이득을 보았습니다. 그러나 최근에는 중국이 서양의 대포를 모방해 제조하고 있기 때문에 서양인은 이익을 잃게 되었습니다. 또 예전에는 중국 상인들이 화륜선을 세내어 사용했기 때문에 서양인들이 큰 이득을 누렸습니다. 그러나 지금은 중국이 또한 화륜선을 모방해 제조하기 때문에 서양인은 이익을 잃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예전에 서양인들은 아편으로 큰 이득을 얻었는데 지금은 중국도 아편을 제조하기 때문에 서양인들이 이익을 잃었다고 합니다.” 박규수, 『일성록』 ‘고종 9년 12월26일’ 중에서

박규수가 서구 열강에게 문호를 개방하면 그들로부터 부강해지는 방법을 배울 수 있고, 또한 그들과 통상을 하면 커다란 경제적 이득을 누릴 수 있다고 보았다는 사실을 알 수 있다. 이 때문에 박규수는 미국이나 일본의 수교 요청에 조정이 적극적이고 주도적으로 나서야 한다고 주장했다.

미국은 세계에서 가장 부유한 나라이고 일본은 지리적으로 근접한 탓에 여러 가지 경제적·외교적 이해관계가 얽혀 있기 때문에 가장 우선적인 통상개국의 대상으로 삼는 것이 유리하다고 본 것이다.

박규수의 ‘통상개국론’은 북학파의 ‘해외통상론’과 맥락을 같이한다. 그러나 북학파의 ‘해외통상론’이 외국(청나라)의 선진 문물과 과학기술을 수용하고 상품 교역을 통한 부국(富國)을 지향하는 중상주의적 입장에 서 있었다면 박규수의 ‘통상개국론’은 중상주의 이외에 서구 열강에 맞서 조선의 독립과 자주적 발전의 길을 찾아야 한다는 절박함이 덧붙여져 있었다.

따라서 그의 통상개국론은 나라와 백성을 부유하게 하는 ‘부국사상(富國思想)’과 더불어 서구 열강의 침입을 막기 위한 ‘강병사상(强兵思想)’의 요소를 두루 담고 있었다고 평가할 수 있다.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