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전국의 모든 토지를 공전 1구획과 사전 8구획의 정전으로 개혁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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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전국의 모든 토지를 공전 1구획과 사전 8구획의 정전으로 개혁한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12.22 08:0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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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경제학자들] 중농주의 경제학 집대성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④

[조선의 경제학자들] 중농주의 경제학 집대성한 다산(茶山) 정약용(丁若鏞)④

[한정주=역사평론가] 강진에서 유배생활을 한 지 15년째 되는 해인 1817년 정약용은 『경세유표』 ‘전제(田制)’를 저술해 이전에 자신이 주장한 여전론과는 사뭇 다른 ‘정전론’이라는 토지개혁론을 내놓는다.

정전론은 예전에 자신이 비판한 중국 고대의 정전제를 조선의 현실에 맞게 새롭게 해석하는 토지개혁론이었을 뿐만 아니라 여전론이 지닌 급진적인 성격에서 벗어나 점진적인 방식으로 토지개혁을 이루고자 한 것이었다.

“반드시 수백 년에 걸쳐 지속적으로 추진하되 절대 굽히지 않아야 한다. 그리고 토지의 수용은 점진적인 방식으로 하되 그 선후(先後)의 순서를 따라 시행한다면 정전제의 이상(토지 공유와 경자유전)을 실현할 수 있을 것이다.” 정약용, 『경세유표』 ‘정전론’ 중에서

이전 여전론에서는 토지의 사적 소유를 철저하게 부정하고 모든 토지를 공유화하기 때문에 부호(富豪)나 지주 소유의 토지를 어떻게 수용할 것인가 하는 문제는 정작 중요하게 다루지 않고 있다.

그러나 사적 소유의 토지를 현실적으로 인정하면서 정전론을 시행하자면 가장 어렵고 곤란하게 대두되는 문제는 다름 아닌 부호나 지주 소유의 토지를 어떻게 정전제로 편입·수용할 것인가 하는 점이다.

이 난제에 대해 정약용이 어떤 해결책을 내놓았는지에 대해 살펴보자.

먼저 국유지나 새롭게 개간되는 토지에서는 지주-소작 관계를 철폐하고 즉시 정전제를 실시하면 된다. 또한 정전에 편입되기를 원하는 자영농 소유의 토지 역시 정전제를 시행한다. 이때 정전에 편입되는 농민은 사전 8구(區)를 경작하는 자영농민이 되고 공전 1구만 공동 경작해 그 수확물을 나라에 세금으로 바친다.

정약용은 정전제를 시행하기 위해서는 나라와 임금이 먼저 스스로 토지개혁의 모범을 보여야 한다고 보았다. 그렇다면 강제적으로 소유권을 빼앗아 정전에 편입시킬 수 없는 부호나 지주 소유의 토지는 어떻게 되는가?

이에 대해 정약용은 초기 정전으로 구획되는 부호나 지주 소유의 토지 중 1/9에 해당하는 공전만 나라에서 돈을 주고 사는 방법을 구상했다. 이때 나라에서 매수하지 못한 토지의 소유권은 여전히 부호나 지주들이 갖는다.

마찬가지로 향후 정전으로 편입되는 부호나 지주 소유의 토지 역시 공전을 제외한 나머지 사전 8구에 대한 소유권이나 그 토지를 경작하는 소작농에 대한 지배권과 소작료 징수 권한은 그들이 갖게 된다. 단 정전 내에서의 지주-소작 관계에서는 부호나 지주들의 일방적인 권력 행사가 견제되기 때문에 소작농은 지주로부터의 일방적인 지배-예속 관계에서 벗어나 일정하게 자유를 누리는 독립농의 지위를 가질 수 있다.

정약용은 지주-소작농의 봉건적 예속 관계나 고율의 소작료 착취를 해체시키고 소작농민을 정전제의 사전 8구와 공전 1구를 경작하는 독립자영농민으로 점차 육성하겠다는 분명한 목표를 갖고 있었다.

정전제를 시행하면 비록 당장에 토지개혁의 이상은 실현할 수 없다고 하더라도 대토지 소유와 지주-소작 관계의 만연으로 피폐해진 나라 재정을 튼튼하게 하는 한편 농민들의 경제적 안정은 확보할 수 있다는 것이 그의 생각이었다.

그리고 정약용은 이러한 부호나 지주 소유의 토지에 대해서는 앞서 말한 대로 수백 년에 걸쳐서라도 점진적으로 나라에서 사들이거나 혹은 헌납·기증을 받아 정전의 본래 목적, 곧 ‘토지 공유와 경자유전’의 원칙에 따라 반드시 개혁해야 한다고 보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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