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마천·반고·사마광’ 3명의 사학자가 본 한무제…『혼군, 명군, 폭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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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사마천·반고·사마광’ 3명의 사학자가 본 한무제…『혼군, 명군, 폭군』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6.11.04 08: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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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한무제(서기전 154년~서기전 87년).

중국의 위대한 역대 제왕으로 ‘진황한무(秦皇漢武) 당종송조(唐宗宋祖)’가 전해진다. 진시황과 한무제, 당태종과 송태조를 일컫는다.

이 가운데 청나라 건륭황제를 제외하면 가장 긴 54년을 통치했던 한무제는 고대 중국을 대표하는 전형적인 제왕으로 꼽힌다.

특히 한무제는 중국에서 진시황과 함께 불세출의 인물로 평가받는 제왕이자 중화제국의 기초를 닦은 영웅으로 칭송받고 있다.

신간 『혼군, 명군, 폭군』(왕의서재)는 한무제의 업적과 일생을 사마천, 반고, 사마광을 통해 재조명한다.

당대 최고의 사가인 그들이 쓴 『사기』, 『한서』, 『자치통감』을 단서로 단편적인 사건과 기록 뒤에 숨겨진 배경을 살펴보고 생략되고 빠진 사실을 이어붙여 맥락을 찾는다.

한무제의 업적과 일생은 16글자로 압축 정리할 수 있다. ‘내강황권(內强皇權: 안으로 황권을 강화하고), 외복사이(外服四夷; 밖으로 사방의 오랑캐를 복종시켰다), 미신신선(迷信神仙: 미신과 신선을 숭배하며), 만년개철(晩年改轍: 만년에 종래의 정책을 철회했다)’이 그것이다.

16자로 요약된 한무제의 행보는 많은 사람에게 익히 알려져 있다. 그러나 저자는 이를 하나하나 되묻고 사마천, 반고, 사마광의 기록을 분석·종합해 한무제를 혼군(昏君)이자 명군(名君)이며 폭군(暴君)으로 재구성한다.

특히 세 사학자의 붓에서 살펴본 한무제의 면모는 각기 다르다. 사마천은 자신이 살았던 시대와 한무제의 통치 기간이 거의 일치해 친히 목격한 것을 서술했다.

 

반고의 경우에는 한무제가 죽은 지 120년이 지나 장차 서한(西漢)이 멸망하고 동한(東漢)이 일어나 다시 한실)漢室)을 부흥하려는 시대에 서술했다.

사마광은 한무제가 죽은 지 1000여년이 지난 송대(宋代)에 와서 썼다. 사마광은 한무제 시대와 너무 차이가 나서 마치 다른 산 위에 서서 조망하듯이 기술했다.

이 세 사학자와 한무제 간의 거리는 큰 차이가 있다. 그들이 한무제를 바라보는 시각과 관심 또한 큰 차이가 있다.

왜 한무제 시대를 살펴보고 또 반복해 해석해야 할까?

저자는 “다른 시대에 다른 관념과 사명으로 지난 역사를 새롭게 해석해야 하기 때문”이라며 “역사란 마치 어린 처녀를 어떻게 분장하느냐와 같기 때문”이라고 말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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