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봉(三峰) 정도전④유교적 의미의 이름과 삼각산에서 차명한 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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삼봉(三峰) 정도전④유교적 의미의 이름과 삼각산에서 차명한 호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14.05.25 13:4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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호(號), 조선선비의 자존심⑩
▲ 북한산으로 불리는 서울 삼각산

[헤드라인뉴스=한정주 역사평론가] “단양지방에 내려오는 위 전설은 아마도 정도전에게 보복을 당한 단양우씨(丹陽禹氏) 집안이나 후세인들이 사실을 과장하여 만든 것으로 보인다. 이 이야기에는 진실과 거짓이 함께 섞여 있다. 정운경이 금강산을 갔다는 이야기는 사실에 맞는 것 같다. 그는 젊은 시절에 가정(稼亭) 이곡과 더불어 동방(관동지방)을 여행했다는 기록이 정도전이 쓴 ‘정운경 행장’에 보이기 때문이다.

또한 정도전의 어머니에 관한 이야기는 상당 부분 진실을 말해주는 것으로 보인다. 정운경은 나이 38세에 맏아들 정도전을 얻었다. 이 사실은 10년 뒤에 결혼하면 재상이 될 아이를 얻는다는 관상가의 예언과 상당히 일치한다. 또한 정도전의 어머니가 우씨라는 사실도 기록과 일치한다.

그렇지만 정도전의 이름이나 호에 관한 이야기는 사실과 다른 것으로 느껴진다. 도전(道傳)이라는 이름은 앞에서 설명한 것처럼 도를 전한다는 유교적인 뜻이 담긴 것이고, 삼봉(三峰)이라는 호는 단양의 삼봉에서 차명한 것일 수도 있지만 그의 옛집인 개경 부근의 삼각산(三角山)에서 차명했을 가능성도 있기 때문이다.”

한영우 교수는 여기에서 자신이 처음 제기한 후 이미 하나의 정설(定說)처럼 굳어져버린 ‘도담삼봉’설에 대한 견해를 조심스럽게 뒤집으면서 삼봉(三峰)이 지금은 북한산이라고 불리는 삼각산(三角山)에서 뜻을 취했을 가능성을 제기했다.

여기에다가 지난해(2013년) 4월 심경호 교수(고려대 한문학과)가 새롭게 국역(國譯)한 『삼봉집』을 출간하면서 여기에 실린 정도전의 시 ‘삼봉(三峯)에 올라’에 “삼봉은 지금 서울의 삼각산(三角山)을 가리킨다. 정도전이 살며 학문을 하던 집이 있던 곳이다. 그의 호가 삼봉인 것은 여기서 비롯되었다”는 주석을 달아 정도전의 호 삼봉은 ‘삼각산 삼봉’에서 유래한 것이라고 주장했다.

역사학계의 원로 학자가 예전 자신의 주장을 조심스럽게(?) 뒤집고, 다시 한문 고전의 번역과 연구에 일생을 바친 대표적인 고전 한문학자가 국가기관에서조차 이미 정설(定說)로 받아들인 ‘도담삼봉’설에 의문을 제기하고 새롭게 ‘삼각산 삼봉’설을 주장하면서 정도전의 호 삼봉(三峰)을 둘러싼 논쟁은 이제 피할 수 없게 되었다고 하겠다.

심경호 교수는 ‘삼봉에 올라’라는 시에 주석을 달면서 간단하게 정도전의 호가 ‘삼각산 삼봉’에서 비롯되었다고 언급하고 있지만 그 파장은 적지 않다고 할 수 있다. 어쨌든 이미 사람들 사이에서 하나의 정설(定說)처럼 굳어져있는 ‘도담삼봉’설을 정면으로 뒤엎는 일이기 때문이다.

심경호 교수의 이러한 주장을 눈여겨 본 경향신문 기자 조운찬씨는 정도전이 남긴 글과 기록을 통해 삼봉이 ‘도담삼봉’에서 유래한 것인지 아니면 ‘삼각산 삼봉’에서 비롯된 것인지를 본격적으로 탐구하는 기사를 썼다.

그는 정도전이 자신의 호의 유래에 대해 남겨놓은 글이나 기록을 찾아볼 수는 없지만 『삼봉집』에 실려 있는 여러 편의 시(詩)를 통해 삼봉의 지명(地名)과 위치를 가늠해볼 수는 있다고 밝혔다.

조운찬씨가 먼저 ‘삼각산 삼봉’설의 근거로 들고 있는 글은 『삼봉집』 제1권 ‘오언고시(五言古詩)’ 편에 실려 있는 ‘삼봉(三峰)에 올라 경도(京都 : 개경)의 옛 친구를 추억하며(登三峯憶京都故舊)’라는 시(詩)다.

“단정하게 앉아 있다가 먼 그리움이 일어나 / 삼봉(三峰) 마루에 오르네 / 서북쪽으로 송악산을 바라보니 / 검은 구름 높게 무심히 떠 있네 / 그 아래 옛 친구가 있어 / 밤낮으로 서로 어울려 놀았네 / 날아가는 새는 구름 뚫고 들어가니 / 나의 그리움은 아득하고 멀기만 하네 / 지초(芝草)를 캐 보았자 한 줌도 아니 되니 / 저기 길가에 내버려 두네 / 한 번 다녀오는 것 어려운 일 아니지만 / 어째서 이다지 망설이게 되는지 / 도성과 궁궐 안이 아무리 즐거운 곳이라고 해도 / 깊고 그윽한 바윗골을 사랑하기 때문이네 / 계수나무 가지 움켜잡고 노래 부르며 / 한 세월 가도록 편안하고 한가롭게 지내네.”

이 시는 정도전이 1366년부터 아버지와 어머니의 상(喪)을 연이어 당하여 선영이 있는 경북 영주에 살면서 복제(服制)를 마친 다음 1369년 삼봉(三峰)의 옛집으로 돌아와 지은 것이다.

여기에서 정도전은 삼봉(三峰)의 꼭대기에 올라가 서북쪽으로 개경의 송악산을 바라보며 오랫동안 만나지 못했던 옛 친구를 추억하고 있다. 따라서 서북쪽으로 개경의 송악산이 바라다 보이는 곳에 삼봉(三峰)이 자리하고 있다는 사실을 짐작해볼 수 있다.

조운찬씨가 ‘삼각산 삼봉설’을 밝힐 수 있는 근거로 삼은 두 번째 글은 『삼봉집』 제2권 ‘칠언절구(七言絶句)’ 편에 실려 있는 ‘삼봉으로 돌아올 때 약재(若齋) 김구용이 전송해 보현원(普賢院)까지 오다(還三峯若齋金九容送至普賢院)’라는 시(詩)다.

“말 맞대고 함께 노래하면서 도성문을 벗어나니 / 조시(朝市)와 산림(山林)이 한 가지 길로 나누어지네 / 다른 날에 서로 생각이 어디에 있느냐 하면 / 소나무 산에 가을 달 화산(華山)의 구름일세.”

이 시에는 『삼봉집』의 편찬자가 그 때가 언제인지는 정확하게 밝히지 않은 채 “이해 여름에 공(公 : 정도전)이 삼봉(三峰)의 옛집으로 돌아왔다”는 주석을 달아놓았다.

여기에서 삼봉의 위치를 가늠해볼 수 있는 단서는 제목에 등장하는 ‘보현원(普賢院)’과 마지막 구절의 ‘화산(華山)’이다.

『신증동국여지승람(新增東國輿地勝覽)』에는 보현원이 경기도 장단(長湍)에서 남쪽으로 25리 떨어진 곳에 있다고 설명되어 있는데, 조운찬씨는 이곳을 현재의 파주 임진강변쯤으로 추정하면서 삼봉이 파주 인근의 지명임을 알 수 있다고 했다.

또한 화산(華山)은 삼각산의 다른 이름이다. 미수(眉叟) 허목이 지은 우리나라 역사서인 『동사(東事)』에 보면 “태조가 도읍을 한양으로 정하고 호걸(豪傑)과 대족(大族)을 이주시켰다. … 삼각산(三角山)은 화산(華山)이라고 한다”고 기록되어 있다.

『신증동국여지승람』의 「한성부(漢城府)」 ‘형승(形勝)’에서도 “북쪽으로 화산(華山)을 의지하고, 남쪽으로 한수(漢水)에 임하였다”고 하여 화산(華山)이 다름 아닌 삼각산임을 증명해주고 있다.<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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