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세기 실학과 경제학의 거두 성호 이익…④ 빈부격차 줄어드는 ‘점진 방식의 토지 개혁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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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8세기 실학과 경제학의 거두 성호 이익…④ 빈부격차 줄어드는 ‘점진 방식의 토지 개혁안’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09.07 07:38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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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경제학자들] 농업 중심의 자급자족 경제체제 꿈꾼 경제학자

[조선의 경제학자들] 농업 중심의 자급자족 경제체제 꿈꾼 경제학자

[한정주=역사평론가] 이익은 모든 토지의 국가 소유를 전제로 한 정전제(井田制)를 ‘농업 중심 경제 체제’의 이상으로 삼았고 또한 대토지 소유로 인한 국가 재정의 약화와 백성들의 피폐해진 삶을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부자는 대토지를 점유하게 되고 가난한 자는 관청의 부역과 부호(富豪)의 빚에 찌들려 파산지경에 이르고, 마침내 자신의 토지까지 잃고 만다.” 이익, 『성호사설』 ‘결부지법(結負之法)

그러나 다른 한편으로 그는 정치적·경제적 권력을 독점하고 있는 권문세가나 부유층의 세력을 무시한 토지 개혁은 반드시 실패한다고 보았다.

그래서 그는 농민들이 소유할 수 있는 일정한 면적의 토지, 곧 영업전(永業田)을 정하는 한편 권문세가나 부유층의 대토지 소유를 제한하는 토지 개혁을 실시해 빈부 격차를 줄여나가면서 점차적으로 균일(均一)하게 하자고 주장했다.

이익의 토지 개혁론에서 영업전은 일체의 매매 행위가 금지된다. 그리고 영업전 이외의 토지는 자유롭게 매매하되 소유할 수 있는 토지의 상한선을 정해 대토지 소유로 인해 발생하는 폐단을 억제하고자 했다.

이렇듯 이익의 토지 개혁안은 토지 소유의 상한선을 정해 농민들이 먹고 살 수 있고 나라에 세금을 바칠 수 있는 생계 기반을 확보하는 한편 양반 사대부 혹은 지주 계층의 토지 강탈이나 편법 취득을 통한 대토지 소유를 막는데 역점을 두었다고 해서 ‘한전론(限田論)’이라고 불린다.

한전론의 토지 개혁에서는 영업전의 기준선을 초과하는 토지를 소유하고 있다고 하더라도 강제로 빼앗지 않고 또한 그 기준선에 미달한다고 해도 토지를 더해 주지 않는다. 즉 이익은 대토지 소유자의 땅을 빼앗아 농민 혹은 가난한 사람들에게 재분배하는 토지 개혁에 대해 매우 부정적인 시각을 갖고 있었다.

이익이 『성호사설』에 기록한 ‘균전론(均田論)’의 요점을 간추려보면 그가 빈부 갈등과 분쟁을 야기하는 급진적인 방식의 토지 개혁보다는 부자와 가난한 사람 모두가 받아들일 수 있는 점진적인 방식의 토지 개혁을 선호했다는 사실을 매우 뚜렷하게 확인할 수 있다.

“내가 예전에 균전론을 지었는데, 그 대략은 이렇다. 토지 몇 마지기로 한계를 정해 한 사람의 농민의 영업전으로 만들되 노력에 따라 많이 점유한 자의 토지를 빼앗지 않고 없는 사람을 추궁하지 않는다. 또 한계로 정해놓은 몇 마지기 이외의 토지는 마음대로 사고팔 수 있게 한다.

단 토지를 많이 가진 자의 토지 가운데 다른 사람의 영업전이 몇 마지기라도 들어 있으면 반드시 장부를 빼앗아 불사르고 다시 돌려준다. 다만 관청에서 토지 장부를 보관하여 함부로 팔 수 없게 하면 토지가 없는 사람들이 간혹 조금씩이나마 토지를 얻을 수 있을 것이다. 영업전의 한계에 들어 있는 토지만 위의 사례에 따라 하되 그 이외의 토지에 대해서는 묻지 않는다.

무릇 토지를 파는 자는 가난한 법인데 만약 가난해도 토지를 팔 수 없다면 겸병(兼幷: 대토지 소유)하는 자가 있을 수 없다. 또 영업전을 경작해 수입만 있고 지출이 없다면 가난한 사람 역시 망하지 않을 것이다.

토지가 많은 부자에게는 토지 파는 일을 허용한다면 그 자식들이 나누어 점유한 경우에 못난 자들은 반드시 토지를 팔게 된다. 그러면 점차로 토지가 모든 사람에게 골고루 나누어지게 될 것이다.” 이익, 『성호사설』 ‘균전(均田)’

이익은 한 가구가 소유할 수 있는 토지는 50묘(1묘는 대략 200평) 정도로 한계를 두어도 되지만 권세가나 부자들의 토지 매수를 경계해 차라리 100묘로 제한하는 것이 바람직하다고 보았다.

그는 이렇게 100묘의 토지 소유 상한선을 정한 다음 토지를 파는 사람은 반드시 가난한 사람이기 때문에 그들이 토지를 못 팔도록 금지한다면 토지겸병(대토지 소유)의 폐해를 줄일 수 있다고 보았다.

그리고 가난한 사람일지라도 지혜롭고 부지런한 자는 토지를 늘리고 재산을 일으킬 수 있는 반면 토지를 많이 소유한 부자라고 하더라도 자식이 많으면 그들에게 토지가 나누어지고 또 그 중 못난 자식은 토지 소유 상한선(영업전) 이외의 토지를 팔아 치울 것이기 때문에 불과 몇 세대 만에 일반 농민과 다름없게 된다고 예측했다.

이렇게 해서 부자와 가난한 자의 격차는 점차 줄어들고 대부분의 백성들이 토지 소유의 상한선 이내에서 자급자족하는 농업 경제 체제를 유지할 수 있다는 것이 이익의 ‘점진적인 방식의 토지 개혁안’이었다고 하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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