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서하는 사람이 있을 뿐 독서하는 장소란 없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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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독서하는 사람이 있을 뿐 독서하는 장소란 없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08.26 07:2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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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⑧ 소품(小品)의 미학⑤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⑧ 소품(小品)의 미학⑤

[한정주=역사평론가] 이용휴의 아들인 이가환 역시 독특한 사유와 강렬한 메시지가 담겨 있는 소품문을 남겼다.

그러나 안타깝게도 정조 시대 말기 남인의 영수였던 이가환은 정조 사후 천주교도의 수괴라는 역적의 누명을 쓴 채 노론 세력에 의해 처참한 죽임을 당했기 때문에 그의 작품 중 다수가 사라져 현재 전해오는 글이 많지 않다.

‘잠자는 창(睡窓)’이라는 희한한 이름을 갖고 있는 집에 붙인 소품문을 한 번 읽어보자.

“허(許) 선생은 몹시 가난하여 튼튼한 문이 달리고 호젓하게 들어앉아 조용한 집이 없다. 대신 골목에 자그마한 집 한 채를 겨우 갖고 있다. 이 집은 창이 나 있고, 그 창을 열어젖히면 골목이 나오는 지극히 초라한 집이다.

집은 사방이 한 길쯤 되는 넓이지만 허 선생은 겨우 칠 척 단신에 불과하므로 방에서 발을 뻗더라도 남는 공간이 있다. 이보다 넓어 비록 천만 칸이 있다 한들 어디에다 쓰랴? 더구나 창 낭으로는 먼지가 들어오지 않고 서책이 죽 꽃혀 있어 마음은 즐겁고 기분은 쾌적하다.

창밖에서 무슨 일이 벌어지는지 전혀 모른다. 이 얼마나 상쾌한가! 어떤 분은 이렇게 말한다. ‘창밖에서 벌어지는 일은 허 선생이 알 수 있는 것이 아니요, 설사 안다 해도 그가 간여할 일이란 없다. 따라서 잠을 잔다는 핑계를 대고 창 안에 숨어서 ‘잠자는 창(睡窓)’이라는 이름을 붙였다. 그의 잠을 깨는 사람으로는 오직 가끔 찾아오는 희황상인(羲皇上人)이 있을 뿐이다.’” 이가환, ‘수창기(睡窓記)’ (안대회 지음,《고전산문산책》, 휴머니스트, 2008. 인용)

창 안의 삶에 만족할 뿐 창밖 세상의 일에는 상관하지 않겠다는 뜻에서 집의 이름을 ‘잠자는 창’이라고 붙였다는 글 속에는 시속(時俗)의 유행이나 명예와 이욕에 초연한 채 자신의 길을 가겠다는 심오한 의미가 담겨져 있다.

아들을 위해 한적하고 경치 좋은 곳에 독서할 집을 만들어주고 이가환에게 축하하는 글을 지어달라고 한 조대구(趙待求)라는 사람에게 “독서하는 사람이 있을 뿐 독서하는 장소는 따로 있을 수 없다”고 하면서 독서하려고 하면 초가집의 부뚜막 위도 독서처(讀書處)가 되지만 술잔치를 벌이려고 하면 경치 좋고 한적한 독서처(讀書處)도 술판이나 벌이는 장소가 되기 십상이라는 재치 넘치는 조언 역시 ‘독서처기(讀書處記)’라는 한 편의 소품문으로 구성되어 있다.

“세상에 독서하는 사람은 있지만 독서하는 장소란 없다. 독서하고자 한다면 쓰러져가는 초가집이나 부뚜막 위, 부서진 의자 위, 망가진 담요 위도 모두 책이 쌓여 있는 도서실이다. 반면 책을 읽고자 하는 마음이 없다면 시원한 누각이나 따뜻한 저택, 둥근 연못 옆과 방형(方形)의 우물가, 찾아오는 이 없어 빗장 닫아건 집이나, 얼음같이 시원한 대자리와 따뜻한 담요 위가 곧잘 바둑 두고 술잔치 벌이는 장소가 되기 십상이다.

조대구(趙待求) 군이 이러한 사실을 모를 리 없건마는 그래도 독서하는 집을 만든 건 그 아들 길증(吉曾)을 위해서이다. 아들을 사랑하는 부모는 할 수 있는 한 최선을 다하는 법이다. 길증이 부모의 마음을 알고 있다면 비록 무릎이 시리고 눈이 침침해질 지경이거나 웅얼웅얼 책을 읽어 입술이 바짝 마르더라도 결코 독서를 그쳐서는 안 될 것이다.

만약 책 한 권을 다 마치지도 않고 기지개를 켜고 책을 덮은 다음 창문을 열어젖혀 저 멀리 흘러가는 강을 바라보고 구름같이 떠가는 돛배와 모래사장의 새들을 즐긴다면 나는 더 이상 길증에게 아무런 기대도 걸지 않을 것이다.” 이가환, ‘독서처기(讀書處記)’ (안대회 지음,《고전산문산책》, 휴머니스트, 2008. 인용)

또한 이용휴의 외손자이자 이가환의 외조카이면서 동시에 어렸을 때부터 그 제자로 학문을 배우고 문장을 익혔던 이학규 또한 소품문에 탁월한 재능을 발휘했던 문장가였다. 그는 외삼촌 이가환이 역적의 수괴로 지목되어 처형당한 이후 일종의 연좌 죄에 걸려들어 무려 24년 동안이나 경상도 김해에서 유배살이를 했다.

그러나 폐족(廢族)과 유배객의 신세로 전락한 참혹한 세월도 창작을 향한 그의 열정을 꺾지 못했다. 이로 인해 이학규는 다산 정약용과 함께 19세기 초반 남인 계열의 문인들을 대표하는 독보적인 존재가 되었다.

특히 추위와 굶주림의 육체적 고통은 물론 고뇌와 번민의 정신적 고통을 푸는 8가지 방법을 자유분방하게 써 내려간 ‘비해팔칙(譬解八則)’은 당대의 어떤 문인에게서도 찾아보기 힘든 기발한 발상과 독특한 구성 그리고 생생한 묘사가 돋보이는 소품문이다.

“추울 때에는 가난한 집의 거지 아이를 생각해본다. 눈 내리는 밤, 남의 집 낮은 처마 밑에 누워서 솜옷에다 담요를 깔고 손등이랑 정강이는 살이 터진 채 눈물 흘리며 애원한다.

더울 때에는 잠방이를 걸치고 일하는 머슴을 생각해 본다. 한창 정오 무렵, 호미를 쥐고 밭을 가는데 땀이 비 오듯 한다. 잡풀을 헤치며 구부정하게 기어서 대낮이 다 가도록 힘을 다해 일을 한다.

배가 고플 때에는 이 문 저 문 찾아다니며 구걸하는 거지를 생각해본다. 매미같이 텅 빈 창자에 거북이 등처럼 쭈글쭈글하지만 힘을 다해 서둘러 걸음을 재촉한다. 죽이라도 입에 넣지 못할까봐 걱정이다. 기운이 없어 이마에는 땀이 송글송글, 그럭저럭 죽기만을 기다린다.

목이 마를 때에는 소금을 갈망하는 사람을 생각해본다. 독이 퍼져 목구멍이 타들어 가는데 그 정상을 표현할 길이 없다. 옷을 잡아당기고 침상을 더듬는다. 이때 별안간 가슴이 답답하여 폭발할 것만 같고 눈알은 퉁퉁 부어 굴려지지 않아, 가진 힘을 다해 미친 듯 소리친다.

수심이 찾아올 때에는 가화(家禍)를 입은 사람을 떠올린다. 피붙이는 벌써 모두 죽었고, 가산은 보이는 대로 몰수되어 사라졌다. 게다가 자신은 노비가 되어 외딴 변방에 유배된 신세. 지난날 즐겁게 웃으며 노닐던 일들을 돌이켜 생각하니, 가슴과 창자를 칼로 도려낸 듯 눈물이 먼저 솟구친다.

번민이 찾아들 때에는 순장(旬葬)을 당하는 사람을 떠올린다. 땅굴 속으로 들어가며 머리를 쳐들어 위쪽을 보니 칠흙 같이 새까만 동굴 끝에 등불은 가물가물 꺼지기를 기다린다. 그 찰나 다시 벼락에 맞아 죽을지언정 그저 인간세상의 이런저런 소리를 한번만이라도 듣는다면 가슴이 시원하리라.

근심스러울 때에는 임종을 앞둔 사람을 떠올려본다. 혀는 꼬부라지고 숨은 헐떡이는데 아직도 눈은 빛을 잃지 않았고 감정은 뿌리가 끊어지지 않았다. 곁을 보니 늙으신 부모님이 나를 부르는데 무어라고 대꾸를 해야 하나? 착한 아내는 눈물을 삼키며 흐느껴 우는데 어떻게 부탁을 해야 하나? 자식들을 어떻게 장가보내고 시집보내며 세간과 전답은 어떻게 처리하라고 해야 하나? 고민하는 사이 저승사자가 도착하였다. 손을 내저으며 모든 것을 포기하는 수밖에 도리가 없다.

병들어 누워 있을 때에는 이미 죽은 옛사람을 생각해본다. 벌써 흙무덤 속에서 뼈는 썩고 몸뚱어리는 사라졌다. 하염없이 이어지는 긴긴 밤, 아침은 언제 다시 찾아올까?” 이학규, ‘고통을 푸는 8가지 방법(譬解八則)’ (안대회 지음,《고전산문산책》, 휴머니스트, 2008.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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