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장 친한 이의 일화 소재로 사회 위선과 신분질서 허구성 풍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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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장 친한 이의 일화 소재로 사회 위선과 신분질서 허구성 풍자”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06.17 08: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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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⑦ 평범과 일상의 미학⑦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⑦ 평범과 일상의 미학⑦

[한정주=역사평론가] 이덕무가 자신의 주변 가까이에 있는 온갖 사물과 생활풍속을 글감으로 삼아 주로 관찰하고 성찰하는 글을 즐겨 썼다면 박지원은 이덕무처럼 우리 생활 주변에 있는 것과 자신의 가까이에서 일어난 일들을 글의 소재로 삼았지만 주로 사회비판적이고 사회풍자적인 글을 많이 썼다.

박종채는 박지원이 이미 20세 무렵 젊었을 때부터 자신의 주변 가까운 곳에서 글의 소재를 찾아 사회를 비판하고 풍자하는 이른바 ‘전기(傳記)’를 즐겨 썼다고 증언하고 있다.

“아버지는 젊을 때부터 이런 세태를 미워하셨다. 그래서 아홉 편의 전(傳)을 지어 세태를 풍자하셨는데, 그 속에는 왕왕 우스갯소리가 들어 있다. 아홉 편의 전에는 각기 시적인 서문을 붙였는데, 그것은 다음과 같다.

‘세 미치광이가 서로 벗 삼아 세상을 피해 거지로 살아가네. 아첨배를 조롱하는 말 들어보니 그 작태가 환히 눈에 보이듯. 이에 ‘마장전’을 쓴다.

선비가 배고파 구차해지면 온갖 행실이 어그러지는데 엄행수는 똥을 져 날라 스스로 먹을 것 마련하니 하는 일은 더럽지만 입은 깨끗하지. 이에 ‘예덕선생전’을 쓴다.

민옹은 골계를 잘하고 세상을 조롱하며 비웃었으나 해마다 벽에 글을 써서 스스로 분발했으니 정말 게으른 자를 깨우칠 만하지. 이에 ‘민옹전’을 쓴다.

명분과 절개를 힘써 닦지 않고 문벌과 지체를 밑천삼아 조상의 덕을 파니 장사치와 뭐가 다를까? 이에 ‘양반전’을 쓴다.

김홍기는 큰 은자라 세속의 노님 속에 숨었으나 어떤 상황에서도 잘못이 없었고 남을 시기하지도 않고 탐욕도 없었지. 이에 ‘김신선전’을 쓴다.

비렁뱅이 광문은 그 명성이 지나쳐서 자신은 명성을 좋아하지 않았건만 형벌 그만 못 면했네. 이에 ‘광문자전’을 쓴다.

아름다운 저 우상은 옛 문장에 힘썼다네. 예(禮)가 사라지면 초야에서 구하는 법. 삶은 짧았지만 그 이름 영원하리. 이에 ‘우상전’을 쓴다.

세상이 말세가 되자 허위를 높이고 꾸며 짐짓 은자인 체해 벼슬을 얻는구나. 이런 짓은 옛날부터 부끄러이 여겼던 일. 이에 ‘학문을 팔아먹는 큰 도둑놈전’을 쓴다.

집에서 효도하고 밖에서 웃어른 공경하면 배우지 않았어도 배웠다고 할 만하네. 이 말이 혹 지나칠지 모르지만 위선자를 경계하는 말은 되지. 이에 ‘봉산학자전’을 쓴다.

이 아홉 편의 전은 모두 스무 살 남짓 때 지으신 것이다. 이 중 마지막 두 편은 잃어버리고 지금 일곱 편만 남았다. 일곱 편 가운데 ‘예덕선생전’, ‘광문자전’, ‘양반전’, 이 세 작품은 세상에 널리 알려져 있다.” 박종채, 『과정록』(박종채 지음, 김윤조 옮김,『역주 과정록』, 태학사, 1997. 인용)

박지원이 지은 이들 전(傳) 가운데 필자가 특별히 주목하는 글은 다름 아닌 ‘예덕선생전’이다. 왜냐하면 이 글은 정말로 특별할 것 없는 아니 오히려 사회적으로 가장 하찮은 계층이자 가장 보잘 것 없는 일을 하는 이른바 ‘똥 장군’ 엄행수를 주인공으로 삼아 쓴 글이기 때문이다.

당시의 사회 관습과 가치관에서 보자면 박지원이 아닌 다른 사람은 감히 엄두도 내지 못할 글이 아닐 수 없다. 특히 이 엄행수는 박지원과 가장 가까운 사우(師友)였던 이덕무와 진정한 우정을 나눈 이였다.

다시 말해 ‘예덕선생전’은 박지원과 가장 친근한 이의 일화를 소재로 삼아 사회의 ‘위선(僞善)’과 신분질서의 ‘허구성’과 인간관계의 ‘진정성’을 날카롭게 풍자한 걸작이다.

“선귤자(蟬橘子: 이덕무)에게 예덕선생이라 부르는 벗이 한 사람 있다. 그는 종본탑(宗本塔) 동쪽에 살면서 날마다 마을 안의 똥을 치는 일을 생업으로 삼고 지냈는데 마을 사람들은 모두들 그를 엄행수(嚴行首)라 불렀다. ‘행수’란 막일꾼 가운데 나이가 많은 사람에 대한 칭호요, ‘엄’은 그이 성(姓)이다.

자목(子牧: 이서구의 사촌동생이자 이덕무의 제자인 이정구)이 선귤자에게 따져 묻기를 ‘예전에 제가 선생님께 벗의 도를 들었는데 벗이란 함께 살지 않는 아내요 핏줄을 같이하지 않은 형제와 같다고 말씀하셨습니다. 벗이란 이같이 소중한 것인 줄 알았습니다. 세상의 이름난 사대부들이 선생님을 따라 그 아랫자리에서 노닐기를 원하는 자가 많았지만 선생님께서는 아무도 받아들이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저 엄행수라는 자는 마을에서 가장 비천한 막일꾼으로서 열악한 곳에 살면서 남들이 치욕으로 여기는 일을 하고 있는 사람인데 선생님께서는 자주 그의 덕(德)을 칭송하여 선생이라 부르는 동시에 장차 그와 교분을 맺고 벗하기를 청할 것같이 하시니 제자로서 심히 부끄럽습니다. 그러하오니 문하에서 떠나기를 원하옵니다’하니 선귤자가 웃으면서 ‘앉아라. 내가 너에게 벗을 사귀는 것에 대해 말해 주마. 속담에 의원이 제 병 못 고치고 무당이 제 굿 못 한다고 했다. 사람마다 자기가 스스로 잘한다고 여기는 것이 있는데 남들이 몰라주면 답답해하면서 자신의 허물에 대해 듣고 싶은 체한다. 그럴 때 예찬만 늘어놓는다면 아첨에 가까워 무미건조하게 되고, 단점만 늘어놓는다면 잘못을 파헤치는 것 같아 무정하게 보인다.

따라서 잘하지 못하는 일에 대해서는 얼렁뚱땅 변죽만 울리고 제대로 지적하지 않는다면 제아무리 크게 책망하더라도 화를 내지는 않을 것이니 상대방의 꺼림칙한 곳을 건드리지 않았기 때문이다. 그러다가 비슷한 물건을 늘어놓고 숨긴 것을 알아맞히듯이 자신이 잘한다고 여기는 것을 은근슬쩍 언급한다면 마치 가려운 데를 긁어 준 것처럼 진심으로 감동할 것이다.

가려운 데를 긁어 주는 것에도 방법이 있다. 등을 토닥일 때는 겨드랑이에 가까이 가지 말고 가슴을 어루만질 때는 목을 건드리지 말아야 한다. 뜬구름 같은 말을 하는 것 같으면서도 그 속에 결국 자신에 대한 칭찬이 들어 있다면 뛸 듯이 기뻐하며 자신을 알아준다고 말할 것이다. 이렇게 벗을 사귄다면 되겠느냐?’하였다.

자목은 귀를 막고 뒷걸음질 치며 말하기를 ‘지금 선생님께서는 시정잡배나 하인놈들이 하는 짓거리를 가지고 저를 가르치려 하시는군요’하니 선귤자가 말하기를 ‘그렇게 말하는 것을 보니 네가 부끄럽게 여기는 것은 과연 전자가 아니라 후자로구나.

무릇 시장에서는 이해관계로 사람을 사귀고 면전에서는 아첨으로 사람을 사귀지. 따라서 아무리 친한 사이라도 세 번 손을 내밀면 누구나 멀어지게 되고, 아무리 묵은 원한이 있다 하더라도 세 번 도와주면 누구나 친하게 되기 마련이지. 그러므로 이해관계로 사귀게 되면 지속되기 어렵고, 아첨으로 사귀어도 오래갈 수 없다네.

훌륭한 사귐은 꼭 얼굴을 마주해야 할 필요가 없으며, 훌륭한 벗은 꼭 가까이 두고 지낼 필요가 없지. 다만 마음으로 사귀고 덕으로 벗하면 되는 것이니, 이것이 바로 도의(道義)로 사귀는 것일세.

위로 천고(千古)의 옛사람과 벗해도 먼 것이 아니요, 만리(萬里)나 떨어져 있는 사람과 사귀어도 먼 것이 아니라네. 저 엄행수라는 사람은 일찍이 나에게 알아 달라고 요구하지 않았는데도 나는 항상 그를 예찬하고 싶어 못 견뎌했지.

그는 밥을 먹을 때는 끼니마다 착실히 먹고, 길을 걸을 때는 조심스레 걷고, 졸음이 오면 쿨쿨 자고, 웃을 때는 껄껄 웃고, 그냥 가만히 있을 때는 마치 바보처럼 보인다네. 흙벽을 쌓아 풀로 덮은 움막에 조그마한 구멍을 내고 들어갈 때는 새우등을 하고 들어가고 잘 때는 개처럼 몸을 웅크리고 잠을 자지만 아침이면 개운하게 일어나 삼태기를 지고 마을로 들어와 뒷간을 청소하지.

9월에 서리가 내리고 10월에 엷은 얼음이 얼 때쯤이면 뒷간에 말라붙은 사람똥, 마구간의 말똥, 외양간의 소똥, 홰 아래에 떨어진 닭똥이며 개똥과 거위똥 그리고 돼지똥, 비둘기똥, 토끼똥, 참새똥 따위를 주옥인 양 긁어 가도 염치에 손상이 가지 않고, 그 이익을 독차지하여도 의로움에는 해가 되지 않으며, 욕심을 부려 많은 것을 차지하려고 해도 남들이 양보심 없다고 비난하지 않는다네.

그는 손바닥에 침을 발라 삽을 잡고는 새가 모이를 쪼아 먹듯 꾸부정히 허리를 구부려 일에만 열중할 뿐, 아무리 화려한 미관이라도 마음에 끌리는 법이 없고 아무리 좋은 풍악이라도 관심을 두는 법이 없지. 부귀란 사람이라면 누구나 원하는 것이지만 바란다고 해서 얻을 수 있는 것이 아니기에 부러워하지 않는 것이지. 따라서 그에 대해 예찬을 한다고 해서 더 영예로울 것도 없으며, 헐뜯는다 해서 욕될 것도 없다네.

왕십리의 무와 살곶이의 순무, 석교의 가지·오이·수박·호박이며 연희궁의 고추·마늘·부추·파·염교며 청파의 미니리와 이태인의 토란들은 상상전(上上田)에 심는데 모두 엄씨의 똥을 가져다 써야 땅이 비옥해지고 많은 수확을 올릴 수 있으며, 그 수입이 1년에 6000전(錢: 600냥)이 된다네.

하지만 그는 아침에 밥 한 사발이면 의기가 흡족해지고 저녁이 되어서야 다시 한 사발 먹을 뿐이지. 남들이 고기를 먹으라고 권하였더니 목구멍에 넘어가면 푸성귀나 고기나 배를 채우기는 마찬가지인데 맛을 따져 무엇 하겠느냐고 대꾸하고, 반반한 옷이나 좀 입으라고 권하였더니 넓은 소매를 입으면 몸에 익숙하지 않고 새 옷을 입으면 더러운 흙을 짊어질 수 없다고 하더군.

해마다 정월 초하루 아침이나 되어야 비로소 의관을 갖추어 입고 이웃들을 두루 찾아다니며 세배를 하는데 세배를 마치고 돌아오면 곧바로 헌 옷으로 갈아입고 다시 삼태기를 메고 마을 안으로 들어간다네. 엄행수와 같은 이는 아마도 ‘자신의 덕을 더러움으로 감추고 세속에 숨어 사는 대은(大隱)’이라 할 수 있겠지.

『중용(中庸)』에 이르기를 ‘부귀를 타고나면 부귀하게 지내고 빈천을 타고나면 빈천한 대로 지낸다’ 하였으니, 타고난다는 것은 이미 정해져 있음을 말한다데.

『시경(詩經)』에 ‘이른 새벽부터 밤까지 공소(公所)에 있으니 진실로 명이 똑같지 않기 때문이라’ 하였으니 명이란 그 사람의 분수를 말하는 것이네. 하늘이 만백성을 낼 때 정해진 분수가 있으니 명을 타고난 이상 무슨 원망할 까닭이 있으랴.

그런데 새우젓을 먹게 되면 달걀이 먹고 싶고 갈포옷을 입게 되면 모시옷이 입고 싶어지게 마련이니 천하가 이로부터 크게 어지러워져 백성들이 들고 일어나고 농토가 황폐하게 되는 것이지.

진승·오광·항적의 무리들은 그 뜻이 어찌 농사일에 안주할 인물들이었겠는가. 『주역(周易)』에 이르기를 ‘짐을 짊어져야 할 사람이 수레를 탔으니 도적을 불러들일 것이다’ 한 것도 이를 두고 말한 것이네.

그러므로 의리에 맞지 않으면 만종(萬鍾)의 녹을 준다 하여도 불결한 것이요, 아무런 노력 없이 재물을 모으면 막대한 부를 축적하더라도 그 이름에 썩는 냄새가 나게 될 걸세. 그런 까닭에 사람이 죽었을 때 입속에다 구슬을 넣어 주어 그 사람이 깨끗하게 살았음을 나타내 주는 걸세. 엄행수는 지저분한 똥을 날라다 주고 먹고살고 있으니 지극히 불결하다 할 수 있겠지만 그가 먹고사는 방법은 지극히 향기로우며, 그가 처한 곳은 지극히 지저분하지만 의리를 지키는 점에 있어서는 지극히 높다 할 것이니, 그 뜻을 미루어 보면 비록 만종의 녹을 준다 해도 그가 어떻게 처신할는지는 알 만하다네.

이상을 통해 나는 깨끗한 가운데서도 깨끗하지 않은 것이 있고, 더러운 가운데에서 더럽지 않는 것이 있을 알게 되었네. 나는 먹고사는 일에 아주 견디기 힘든 경우를 당하면 언제나 나보다 못한 사람을 떠올리게 되는데,

엄행수를 생각하면 견디지 못할 일이 없었지. 진실로 마음속에 좀도둑질할 뜻이 없는 사람이라면 언제나 엄행수를 생각하지 않을 수 없겠지. 이를 더 확대시켜 나간다면 성인(聖人)의 경지에도 이를 것일세.

선비로서 곤궁하게 산다고 하여 얼굴에까지 그 티를 나타내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요, 출세했다 하여 몸짓에까지 나타내는 것도 부끄러운 일이니 엄행수와 비교하여 부끄러워하지 않을 자는 거의 드물 걸세.

그래서 나는 엄행수에 대하여 스승으로 모신다고 한 것이네. 어찌 감히 벗하겠다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러한 이유에서 나는 엄행수의 이름을 감히 부르지 못하고 예덕선생이라 부르는 것일세.’” 박지원, 『연암집』, ‘예덕선생전(穢德先生傳)’ (박지원 지음, 신호열 외 옮김,『(국역) 연암집』, 한국고전번역원, 2004. 인용)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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