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할 권리’가 아닌 ‘좋은 삶을 살 권리’…『빵의 쟁취』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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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할 권리’가 아닌 ‘좋은 삶을 살 권리’…『빵의 쟁취』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6.06.03 1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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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러시아의 혁명가이자 대표적인 아나키스트인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

“생산 수단들은 인류의 집단적인 노동이 만들어낸 결과이기 때문에 생산 역시 인류 공동의 재산이 되어야 한다는 원칙으로 돌아가야 한다.”

러시아의 혁명가이자 대표적인 아나키스트인 표트르 알렉세예비치 크로포트킨은 정부나 국가 없이 수평적으로 상호 협동하는 아나키스트 코뮌주의 이론을 과학적 기반 위에 정립하려 했던 했던 사회사상가다.

그는 공공재를 오염시키고 사유화해 자신의 부를 축적시키는 자본가들을 통렬하게 비판한다.

“모든 것은 모두에게 속한다”고 주장하는 그는 “모든 것은 모든 사람을 위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모든 사람이 그것을 필요로 하고 모든 사람이 그것을 생산하기 위해 일했기 때문이라는 것이다.

그리고 세상의 모든 부를 생산하는 데 각각의 사람들이 기여한 몫을 측정하는 일은 가능하지 않다고도 주장한다.

러시아 귀족가문에서 태어나 지리학, 동물학, 사회학, 역사학 등 다양한 분야에서 명성을 얻었던 크로포트킨은 세속적인 출세의 길과 귀족 세습권을 버리고 혁명가의 길을 선택한 인물이다.

신간 (행성B잎새)는 크로포트킨이 구상하는 새로운 사회에 대한 밑그림이다. 즉 국가와 자본주의 착취 이전의 사회로 돌아가자는 것이다.

모든 사람에게는 단순히 ‘일할 권리’와 함께 ‘좋은 삶을 살 권리’가 있다는 크로포트킨의 말은 지금도 여전히 유효한 화두다.

‘좋은 삶을 살 권리’는 인간다운 삶을 살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하고 지금보다 더 나은 사회에서 아이들을 키울 수 있는 가능성을 의미한다.

 

반면 ‘일할 권리’는 언제나 임금노예가 되고 고달프고 단조롭게 일하며 미래의 중산층에게 지배당하고 착취당할 권리를 의미할 뿐이다.

좋은 삶을 살 권리는 ‘사회 혁명’을 의미하는 반면 일할 권리는 상업주의와 관련된 단조롭고 고된 노동을 의미할 따름이다.

크로로트킨은 사회를 이끄는 것은 법과 질서가 아닌 사람과 사람 사이의 수평적이고 자유로운 합의와 협약이라고 믿는다.

그래서 “지금이야말로 노동자들이 공동의 유산에 대한 권리를 강하게 주장하고, 그것을 공동으로 손에 넣기에 가장 알맞은 때”라고 역설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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