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흔히 볼 수 있는 소재·알기 쉬운 글자·읽고 외우기 쉬운 문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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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흔히 볼 수 있는 소재·알기 쉬운 글자·읽고 외우기 쉬운 문장”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05.27 07:1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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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⑦ 평범과 일상의 미학④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⑦ 평범과 일상의 미학④

[한정주=역사평론가] ‘일상에서 쓰는 말’과 ‘흔히 볼 수 있는 소재’와 ‘알기 쉬운 글자’로 쓴 글이야말로 진정 문장이 추구해야 할 올바른 길이며, 어렵고 교묘하게 글을 꾸미거나 이해하기 힘든 글을 잘 지은 글이라고 하는 것은 ‘문장의 재앙’에 불과하다고 주장한 교산 허균과 지봉 이수광 또한 일찍이 ‘평범과 일상의 미학’을 깨우친 문장의 선각자였다.

“심약은 ‘문장을 쓸 때는 세 가지 쉬운 방법이 있다. 흔히 볼 수 있는 소재, 알기 쉬운 글자 그리고 읽고 외우기에 쉬운 문장이 바로 그것이다’라고 했다.

또한 강기는 ‘사람들이 쉽게 말하는 것을 나는 쉽게 쓸 뿐이다. 이것이 곧 글을 짓는 방법이다’라고 했다. 그런데 오늘날 글을 짓는다는 사람들은 이해하기 어려운 글을 잘 지은 글이라고 여긴다.” 이수광, 『지봉유설(芝峯類說)』, ‘문장(文)’

“한 손님이 내게 물었다. ‘당대에 옛 문장에 능숙하다고 여기는 사람들은 반드시 당신을 최고로 꼽는다. 내가 볼 때 당신의 글은 넓고 깊어 끝을 가늠하기 힘들지만 주로 일상에서 쓰는 말을 사용했다.

그래서 마치 입을 벌리고 목구멍을 들여다보는 것처럼 그 뜻을 이해한 사람이나 이해하지 못한 사람이나 상관없이 아무런 장애 없이 읽어 내려갈 수 있다. 옛 문장을 하는 사람들 또한 이와 같았는가?’

이 질문에 나는 이렇게 대답하였다. ‘그와 같은 것이 바로 옛 문장이다. 『서경(書經)』에 실려 있는 여러 편의 명문장을 보라. 모두 문장으로 최고의 경지에 이르렀지만 어려운 말로 교묘하게 꾸민 구절이 있는가?

공자도 글이란 자신의 의사를 전달할 따름이라고 하였다. 예전에는 임금과 신하가 글로 마음과 뜻을 서로 전하고, 또한 도리를 실어 보냈기 때문에 확실하고 뚜렷하며 곧고 올바르며 정성스러워 듣는 사람이 분명하게 알 수 있었다. 글의 효용성이란 바로 이런 것이다.

제자백가서만 보더라도 모두 자신들의 도리를 논했기 때문에 그 글은 쉽고 간결했다. 그런데 후대에 와서는 문장과 도리가 둘로 쪼개져 마침내 어렵고 교묘한 말로 글을 꾸미는 일이 생겨났다.

이것이야말로 최고의 경지에 이른 글이 아니라 문장의 재앙이다. 글이란 자신의 마음과 뜻을 다른 사람에게 제대로 전할 수 있도록 쉽고 간략하게 짓는 것뿐이다.’

손님이 다시 말했다. ‘나는 그렇게 생각하지 않는다. 당신은 좌씨, 장자, 사마천, 반고와 한유, 유종원, 구양수, 소식의 글을 보았는가? 그들의 글이 일상에서 사용하는 용어로만 쓰였는가? 더욱이 당신의 글은 옛것을 본받지 않은 채 넓고 크고 무성하기만 하니 스스로 거만에 빠진 꼴이 아닌가?’

나는 대답했다. ‘그들의 글 또한 일상에서 쓰는 말과 무엇이 다르단 말인가? 내가 볼 때 그 글들은 간결하게도 보이고 웅장하고 막힘이 없는 듯도 하며 심오한 듯도 하고 거리낌이 없는 듯도 하며, 때로는 굳세고 기이한 듯도 하지만 대개 당시 일상에서 쓰는 용어를 바꾸어 우아하고 고상하게 표현한 것이다. 진실로 쇳덩이를 달구어서 황금을 만들어냈다고 말할 수 있다.

훗날 다음 세대의 사람들이 우리 세대의 글을 볼 때, 어떻게 우리 세대의 사람들이 그 옛날 문장가들의 글을 보는 것과 같지 않을 줄 알겠는가?’” 허균, 『성소부부고』, ‘문설(文說)’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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