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상주의 경제학파의 브레인 박제가…④ “가난하면 상업에 종사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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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상주의 경제학파의 브레인 박제가…④ “가난하면 상업에 종사하라”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05.25 07:29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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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경제학자들] 상공업 발전과 상업적 농업 경영에서 부국(富國) 전략을 찾다

[조선의 경제학자들] 상공업 발전과 상업적 농업 경영에서 부국(富國) 전략을 찾다

[한정주=역사평론가] 『북학의』를 비롯한 여러 문헌에 나타난 박제가의 경제사상과 경제발전 전략은 크게 상업을 중시하라는 ‘중상론(重商論)’, 소비를 중시하라는 ‘소비론(消費論)’, 문호를 개방하라는 ‘통상론(通商論)’으로 나누어 살펴볼 수 있다.

무엇보다도 먼저 박제가는 백성들이 가난을 모면하고 나라가 부유해지기 위해서는 ‘상업을 중시하는 경제적 마인드’를 갖추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한 마디로 “가난하면 상업에 종사하라”는 것이다.

그는 “중국 사람은 가난하면 장사를 한다. 비록 장사를 하고 먹고살아도 사람만 현명하다면 훌륭하게 대접받고 살 수 있다. 사대부라고 할지라도 거리낌 없이 시장을 출입하고 물건을 거래한다”고 당시 청나라의 풍속을 소개한다.

반면 조선의 사대부들은 장터에 나가 물품을 사고팔거나 혹은 기술을 갖추어 먹고사는 일을 아주 부끄럽게 여긴다는 것이 그의 분석이다. 그는 이러한 경제적 마인드의 차이가 청나라는 풍요롭고 조선은 가난한 근본적인 이유 중의 하나라고 생각했다.

또한 박제가는 조선이 상업을 중시하는 경제 시스템을 갖추기 위해서는 개국 초기부터 나라 경제의 근간을 이루어 온 ‘농본상말(農本商末)’과 노비를 제외한 백성 가운데 상인을 가장 하류로 취급한 ‘사·농·공·상’의 신분 질서를 근본적으로 개혁해야 한다고 주장했다.

특히 그는 양반 사대부의 생활방식과 사고체계를 전면적으로 뜯어고치는 일을 중요하게 여겼다.

이 같은 이유 때문에 박제가는 당시의 시각에서 볼 때는 가히 혁명적인 발상이라고 할 수 있는 ‘양반 상인론’을 제기했다.

그는 밥을 빌어먹을망정 농사나 장사에 종사하는 것을 부끄러운 짓이라고 여기며 거들먹거리고 다니는 양반 사대부들을 두고 장터의 장사꾼보다 못한 존재라고 비판하면서 차라리 중국인들처럼 떳떳하게 장사에 나서라고 했다. 그것은 신분과 체면 때문에 사대부라는 허울에 갇힌 채 살기보다는 자신과 나라의 부강을 위해 경제활동에 나서라는 뼈아픈 주문이었다.

박제가는 상업의 발달 못지않게 공업, 곧 물품을 생산하는 활동을 중시했다. 그런데 여기에서도 그는 매우 독특한 경제발전 전략을 내놓는다.

그는 활발한 생산 활동이 풍요로운 소비를 일으킨다는 생산→소비의 경제 순환 시스템보다는 적극적인 소비만이 활력 넘치는 생산 활동을 불러온다는 소비→생산의 경제 순환 시스템 이론을 내놓았다.

또한 ‘양반도 상업을 하라’는 양반 상인론 못지않은 파격적인 주장을 했는데, 그것은 ‘근검절약이 미덕이 아니라 소비가 미덕’이라는 것이다.

박제가는 농업을 근간으로 한 조선사회가 미덕으로 여겨온 근검절약보다는 소비를 장려해 생산을 촉진하고 상업을 활성화시켜야 한다고 생각했다. 그는 조선은 검소함 때문에 반드시 쇠퇴할 것이라고 하면서 소비는 물품의 생산과 재생산을 자극하고 유통을 활성화시켜 나라와 백성을 부유하게 만든다고 했다.

특히 박제가는 재물을 우물에 비유해 퍼내면 퍼낼수록 가득하지만 사용하지 않으면 결국 말라버리는 것이 재물이라고 했다. 이 때문에 화려한 비단옷을 입지 않는 나라에는 비단을 짜는 사람이 없어 직조 기술이 나날이 쇠퇴하고 튼튼하고 수려한 물건을 만드는 일을 높여 칭찬하지 않는 나라에서는 장인(匠人)과 기술자의 솜씨가 형편없어 날로 기술이 도태된다고 주장했다.

소비가 없으면 생산도 없고, 생산한 물품이 없으면 상업도 발달할 수 없어 나라와 백성은 가난과 곤궁함에서 벗어날 수 없는 반면 소비를 촉진하면 생산 역시 활기를 띠고 상업은 나날이 발전해 나라와 백성은 풍요로워진다는 얘기다.

‘소비가 미덕’이라는 경제적 사고는 근대 자본주의의 발생 이후에 보편화했다고 할 수 있다. 이렇게 보면 박제가는 시대를 앞서 다가올 미래 사회의 흐름을 읽는 통찰력을 보여준 셈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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