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재가 사소하고 하찮다고 글까지 사소하고 하찮지는 않다”
상태바
“소재가 사소하고 하찮다고 글까지 사소하고 하찮지는 않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05.20 07:16
  • 댓글 0
이 기사를 공유합니다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⑦ 평범과 일상의 미학③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⑦ 평범과 일상의 미학③

[한정주=역사평론가] 대개 사람들은 이익 하면 『성호사설』을 쉽게 떠올리지만 사실 ‘자질구레하고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을 소재와 대상으로 삼아 글쓰기를 즐겼던 이익의 철학이 잘 나타나 있는 책은 『관물편(觀物篇)』이다.

이 책에서 이익은 제목 그대로 세상의 온갖 사물을 관찰하면서 느끼고 생각하고 떠오른 그대로를 메모하는 방식으로 글로 옮기면서 그것의 본질을 파악하고 인간의 삶과 우주의 이치를 깨달아간다.

‘평범한 일상’ 속에서 관찰하고 느끼고 생각한 것을 글의 소재와 주제로 삼아 글을 썼던 이익의 글쓰기 철학이 가장 잘 스며들어 있는 책이 바로『관물편』인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이익은 거창하거나 기이하거나 새롭거나 색다른 것에서 글감을 찾아 글을 쓰지 않았기 때문에 오히려 오늘날까지 더 큰 공감을 불러일으키는 글을 남길 수 있었다고 해야 하지 않을까?

“성호 옹이 마당에서 거닐었다. 개미들이 열을 지어 쉼 없이 오간다. 개미가 움직이는 곳은 사람이 다니는 길이어서 밝혀 죽는 개미가 수를 헤아릴 수 없을 정도다. 그래도 사람들은 미처 깨닫지 못하고 밟아 죽이면서 다닌다. 성호 옹은 병이 들어 잘 다니지 않아서 개미를 잔인하게 죽이지 않는 것이 다행일 뿐이다. 개미의 행렬은 그칠 줄 모르고, 사람 또한 왕래가 멈추지 않는다.

성호 옹이 탄식하면서 말했다. ‘저 개미들은 비록 미물이지만 유독 생명을 아끼지 않을 이유가 있겠는가? 어찌하여 나무 그늘이나 무성한 숲 속에서 살지 않고 가벼이 죽음의 길로 빠져들어 이 지경에 이르렀는가? 하루 종일 쉬지 않고 이 길로만 열을 지어 다니고 있으니 어찌 그렇게 할 수밖에 없는가?’” 이익, 『관물편(觀物篇)』(이익 저, 천광윤 옮김,『관물편(觀物篇)』,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3. 인용)

“성호 옹이 뽕나무를 키웠다. 나무가 처음 자랄 때부터 벌레가 있었는데 이름은 양갑(楊甲)이다. 나무껍질을 갉아 내고 그 속에 새끼를 낳았다. 새끼가 자라면서 나무속을 갉아 먹는데 가지에서부터 줄기로, 줄기에서부터 뿌리로 갉아 먹어가면서 중간 중간 나무에 구멍을 뚫어 공기가 통하는 창을 만들었다.

벌레를 제거하자니 나무가 상할 것이고 내버려 두자니 나무가 말라 죽게 생겼다. 결국 말라 죽게 놓아둘 바에야 차라리 껍질을 가르고 벌레를 없애는 것이 나을 것 같아서 나무를 쪼개 찾도록 했다. 그런데 창구멍이 서쪽에 있으면 벌레는 동쪽에 있고 구멍이 남쪽에 있으면 벌레는 북쪽에 있었다. 깊숙이 숨어서 해를 멀리한 것이다. 그놈 참! 미물이지만 지혜롭구나.” 이익,『관물편(觀物篇)』(이익 저, 천광윤 옮김,『관물편(觀物篇)』,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3. 인용)

“성호 옹이 글을 쓰려고 먹을 갈고 있는데 파리가 떼로 몰려들어서 먹물을 빨았다. 성호 옹이 말했다. ‘먹은 파리를 위해서 가는 것이 아닌데도 파리가 엿보고 있다가 다행이라고 여긴다. 아무리 쫓아도 다시 달려들어 자기 것처럼 우글거린다. 또한 사람이 쫓는 것에 대해 화를 낸다. 슬프다! 천지간의 생물은 살아가는 이치가 각각 다르다.

파리는 훔치는 것이 운명인데 어찌 사람이 파리를 위해 먹을 가는 것이 아님을 알겠는가? 벌레가 태어나면 새가 쪼아 먹고 노루와 토끼는 자라면 호랑이가 잡아먹는다. 이것을 보고 사람은 짐승들이 서로 해치는 것을 싫어한다.

그렇지만 물이나 산에 사는 온갖 물고기와 짐승을 잡아먹고 사람의 몸을 살찌게 하는 것은 동물이 서로 잡아먹는 것과 무엇이 다른가?’” 이익, 『관물편(觀物篇)』(이익 저, 천광윤 옮김,『관물편(觀物篇)』, 지식을 만드는 지식, 2013. 인용)

정약용은 “나의 큰 꿈은 성호를 따라 사숙(私淑)하면서 크게 깨달은 것”이라는 말을 공공연하게 하고 다녔을 만큼 학문뿐만 아니라 문장에서도 성호와 뜻을 함께 했다.

그래서일까. 정약용이 병아리를 즐겨 구경하다가 문득 스쳐 지나가는 생각을 붙잡아 쓴 ‘관계추설(觀鷄雛說)’이라는 글을 읽어보면 마치 이익의 『관물편』을 읽는 듯한 착각에 빠져들 정도다.

“옛날 정부자(程夫子)가 병아리를 관찰하였는데 기록하는 이가 ‘인(仁)이라’ 하였다. 우리 집은 서울에 있어도 해마다 닭 한 배씩을 기르고 그 병아리를 즐겁게 관찰하고 있다. 그것이 처음 알에서 깨어 나오면 노란 주둥이가 연하고 부드러우며 녹색을 띤 털이 더부룩한 것이 잠시도 어미의 날개를 떠나지 않고, 어미가 마시면 따라 마시고 어미가 쪼면 따라 쪼며 화기가 애애하여 자정(慈情)과 효도(孝道)가 지극하다.

조금 자라 어미를 떠나면 또 아우와 형이 서로 따르며 항상 같이 다니고 같이 자고, 개가 기웃거리면 서로 호위하고 새매가 지나가면 서로 소리친다. 그 우애의 정이 볼 만하니 효도와 공손이란 인(仁)을 하는 근본이다.

너희들은 병아리보다는 조금 자랐으니 비록 부모만 오로지 사랑할 수는 없다 하더라도 어찌 형제끼리 정을 독실히 하지 않아서 도리어 저 매우 비천한 미물에게 웃음거리가 되어 멸시를 당할 수 있겠느냐. 아.” 정약용, 『다산시문집』, ‘병아리를 구경한 데 대한 설(觀鷄雛說)’ (정약용 지음, 양홍렬‧박소동‧김윤수 옮김,《다산시문집》, 한국고전번역원, 1983. 인용)

또한 강진 유배 시절 여름날 외진 산골짜기까지 찾아와 극성을 떠는 파리 떼를 소재로 삼아 당시의 부패한 사회상을 풍자한 ‘조승문(弔蠅文)’에 이르면 지극히 평범한 사물과 매우 일상적인 일을 취해 자신의 개혁사상을 능숙하게 전개하는 정약용의 뛰어난 문장력을 볼 수 있다.

글의 소재가 사소하고 하찮고 보잘 것 없다고 해서 그 글까지 사소하고 하찮고 보잘 것 없지는 않다는 글쓰기 철학을 유감없이 보여주는 한 편의 희작(戱作)이자 쾌작(快作)이다.

“가경(嘉慶 청 인종(淸仁宗)의 연호) 경오년(1810년·순조 10년) 여름에 파리가 극성하여 온 집안에 득실거리고 점점 번식하여 산곡(山谷)에까지 만연하였다. 고루거각(高樓巨閣)에서도 일찍이 동사(凍死)하지 않더니 술집과 떡가게에 구름처럼 몰려들고 윙윙거리는 소리가 우뢰 같았다.

노인들은 탄식하며 괴변이라 하고 소년들은 성을 내며 소탕전을 폈다. 그리하여 혹은 구통(笱筒)을 설치하여 거기에 걸려 죽게 하고, 혹은 독약을 쳐서 약기운에 마취되어 전멸하게 하였다.

이에 나는 말하기를 ‘아! 이는 죽여서는 안 되는 것으로, 이는 굶주려 죽은 자의 전신(轉身)이다. 아! 기구하게 사는 생명이다. 애처롭게도 지난해 큰 기근을 겪고 또 겨울의 혹한을 겪었다. 그로 인해서 염병이 돌게 되었고 게다가 또 다시 가혹한 징수까지 당하여 수많은 시체가 길에 널려 즐비하였고, 그 시체를 버린 들것은 언덕을 덮었다.

수의도 관도 없는 시체에 훈훈한 바람이 불고 기온이 높아지자 그 피부가 썩어 문드러져 옛 추깃물과 새 추깃물이 고여 엉겨서 그것이 변해 구더기가 되어 항하(恒河)의 모래보다도 만 배나 많았는데, 아! 이 구더기가 날개를 가진 파리로 변해 인가로 날아드는 것이다.

아! 이 파리가 어찌 우리의 유(類)가 아니랴. 너의 생명을 생각하면 저절로 눈물이 흐른다. 이에 음식을 만들어 널리 청해 와 모이게 하니 서로 기별해 모여서 함께 먹도록 하라.’하고 다음과 같이 조문하였다.

‘파리야, 날아와서 이 음식 소반에 모여라. 소북이 담은 흰 쌀밥에 국도 간 맞춰 끓여 놓았고, 무르익은 술과 단술에 밀가루로 만든 국수도 겸하였으니, 그대의 마른 목구멍과 그대의 타는 창자를 축이라.

파리야, 날아와 훌쩍훌쩍 울지만 말고 너의 부모와 처자를 모두 거느리고 와서 여한 없이 한번 실컷 포식하라. 그대의 옛집을 보니, 쑥대가 가득하며 뜰은 무너지고 벽과 문짝도 찌그러졌는데 밤에는 박쥐가 날고 낮에는 여우가 운다. 또 그대의 옛 밭을 보니 가라지만 길게 자랐다. 금년에는 비가 많아 흙에 윤기가 흐르건만, 마을엔 사람이 살지 않아 황무한 폐허가 되었다.

파리야, 날아와 이 기름진 고깃덩이에 앉으라. 살진 소다리의 그 살집도 깊으며 초장에 파도 쪄놓고 농어 생선회도 갖추어 놓았으니 그대의 굶주린 창자를 채우고 얼굴을 활짝 펴라. 그리고 또 도마에 남은 고기가 있으니 그대의 무리에게 먹이라. 그대의 시체를 보니 이리저리 언덕 위에 넘어져 있는데 옷도 못 입고 모두 거적에 싸여 있다.

장마비가 내리고 날씨가 더워지자 모두 이물(異物)로 변하여 꿈틀꿈틀 어지러이 구물거리면서 옆구리에 차고 넘쳐 콧구멍까지 가득하다. 이에 허물을 벗고 변신하여 구속에서 벗어나고, 송장만 길가에 있어 행인이 놀라곤 한다. 그래도 어린 아이는 어미 가슴이라고 파고들어 그 젖통을 물고 있다.

마을에서 그 썩는 시체를 묻지 않아 산에는 무덤이 없고, 그저 움푹 파인 구렁창을 채워 잡초가 무성하다. 이리가 와 뜯어 먹으며 좋아 날뛰는데, 구멍이 뻐끔뻐끔한 해골만이 나뒹군다. 그대는 이미 나비되어 날고 번데기만 남겨 놓았구나.

파리야, 날아서 고을[縣]로 들어가지 마라. 굶주린 사람만 엄격히 가리는데 서리가 붓대잡고 그 얼굴을 세찰(細察)한다. 대나무처럼 빽빽이 늘어선 사람 중에 다행히 한번 간택된다 하여도 물 같이 멀건 죽 한 모금 얻어 마시면 그만인데도 묵은 곡식에서 생긴 쌀벌레는 상하에 어지러이 날아다닌다.

돼지처럼 살찐 건 호세 부리는 아전들인데 서로 부동하여 공로를 아뢰면 가상히 여겨 견책하지 않는다. 보리만 익으면 진장(賑場 기민(飢民)을 구제하기 위한 임시 구호소)을 거두고 연회를 베푸는데 북소리와 피리소리 요란하며, 아미(蛾眉)의 아리따운 기생들은 춤추며 빙빙 돌고 교태를 부리면서 비단 부채로 가리운다. 비록 풍성한 음식이 있어도 그대는 마음대로 먹을 수가 없단다.

파리야, 날아서 관(館)으로 들어가지 마라. 깃대와 창대가 삼엄하게 나열하여 꽂혀 있다. 돼지고기 쇠고기국이 푹 물러 소담하고 메추리구이와 붕어 지짐에 오리국 그리고 꽃무늬 아름다운 중배끼 약과를 실컷 먹고 즐기며 어루만지고 구경하지만 큰 부채를 흔들어 날리므로 그대는 엿볼 수도 없단다.

장리(長吏)가 주방에 들어가 음식을 살피는데 쟁개비에 고기를 지지며 입으로 불을 분다. 계피물 설탕물에 칭찬도 자자하나 호랑이 같은 문지기가 철통같이 막아서서 애처로운 호소를 물리치면서 소란을 피우지 말라고 한다.

안에선 조용히 앉아 음식 먹으며 즐기고 있고 아전놈은 주막에 앉아 제멋데로 판결하여 역마를 달려 여리(閭里)가 안일하다고 치보(馳報)하면서 길에는 굶주린 사람 없고 태평하여 걱정이 없다고 한다.

파리야, 날아와 환혼(還魂)하지 말라. 지각없이 영원토록 흔흔한 그대를 축하한다. 죽어도 앙화는 남아 형제에게 미치게 되니 6월에 벌써 조세를 독촉하는 아전이 문을 두드리는데 그 호령은 사자의 울음 같아 산악(山岳)을 뒤흔든다.

가마와 솥도 빼앗아가고 송아지와 돼지도 끌어간다. 그러고도 부족하여 관가로 끌어다가 볼기를 치는데 그 매를 맞고 돌아오면 기진하여 염병에 걸려서 풀 쓰러지듯 고기 물크러지듯 죽어가지만 만민의 원망, 천지 사방 어느 곳에도 호소할 데가 없고 백성이 모두 사지에 놓여도 슬퍼할 수가 없다. 어진이는 위축되어 있고 뭇 소인배가 날뛰니 봉황은 입을 다물고 까마귀가 짖어대는 격이다.

파리야, 날아가려거든 북쪽으로 날아가라, 북쪽 천리를 날아가 구중궁궐에 가서 그대의 충정(衷情)을 호소하고 그 깊은 슬픔을 진달하라. 강어(强禦)를 겁내지 않고 시비가 없다. 해와 달이 밝게 비치어 그 빛을 날리니 정사를 폄에 인(仁)을 베풀고 신명에 고함에 규(圭)를 쓴다. 뇌정(雷霆)같이 울려 천위(天威)를 감격시키면 곡식도 잘되어 풍년을 이룰 것이다. 파리야, 그때에 남쪽으로 날아오라.’” 정약용, 『다산시문집』, ‘파리를 조문하는 글(弔蠅文)’ (정약용 지음, 장순범 옮김,《다산시문집》, 한국고전번역원, 1986. 인용)



댓글삭제
삭제한 댓글은 다시 복구할 수 없습니다.
그래도 삭제하시겠습니까?
댓글 0
댓글쓰기
계정을 선택하시면 로그인·계정인증을 통해
댓글을 남기실 수 있습니다.
주요기사
이슈포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