중상주의 경제학파의 브레인 박제가…③중상주의 바이블 『북학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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중상주의 경제학파의 브레인 박제가…③중상주의 바이블 『북학의』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05.18 07:3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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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경제학자들] 상공업 발전과 상업적 농업 경영에서 부국(富國) 전략을 찾다
▲ 『북학의』 내편과 서문.

[조선의 경제학자들] 상공업 발전과 상업적 농업 경영에서 부국(富國) 전략을 찾다

[한정주=역사평론가] 보통 박지원과 박제가를 일러 북학파의 양대 산맥이라고 하는데 박지원이 이 그룹을 이끄는 리더였다면 박제가는 브레인 혹은 싱크탱크였다고 할 수 있다. 그만큼 박제가가 북학파의 학문과 사상을 논리적이고 체계적으로 밝혀놓았기 때문이다.

이 가운데 박제가의 경제사상은 자신의 문집(文集)을 비롯한 여러 곳에서 나타나고 있지만 대부분의 내용은 『북학의』에 집약돼 있다.

박제가는 청나라에서 돌아온 지 3개월 만인 1778년 9월 『북학의』를 1차 완성한 다음 저자 서문까지 써 놓았다. 자신의 생각을 하루라도 빨리 세상에 알려 백성의 ‘가난’과 나라의 ‘쇠퇴‘와 지식인의 ‘무지’를 벗기고 싶었기 때문이다.

1차로 『북학의』를 세상에 내놓은 다음에도 박제가는 수년 동안 내용을 수정·보완하는 작업을 했고 마침내 내편(內篇)과 외편(外篇)의 체계를 갖추어 완성했다. 그리고 십수 년이 지난 1798년(정조 22년) 정조에게 『북학의』의 핵심 내용을 간추리고 새롭게 보완하여 ‘진소본 북학의’를 올렸다.

이렇게 해서 현재 전해오는 『북학의』는 ‘내편’과 ‘외편’ 그리고 ‘진소본’의 세 부분으로 구성돼 있다.

여기에서 박제가는 발상을 근본적으로 뒤바꾸는 자못 충격적인 방식으로 ‘북학(北學)’, 즉 청나라의 선진 문물과 제도 그리고 경제정책과 시스템을 배워야 할 필요성을 제기했다.

먼저 박제가는 올바른 윤리와 도덕이 선 다음에야 백성들의 삶이 윤택해질 수 있다는 주류 성리학의 정통 학설을 정면으로 부정하고 백성들의 삶과 생활이 부유해야 비로소 올바른 사회 윤리와 도덕을 세울 수 있다고 주장했다. 나라 정책의 최우선 과제를 ‘민생과 경제발전’에 두어야 한다는 것이 박제가의 생각이었다.

이와 더불어 그는 ‘소중화(小中華)’를 자처하며 청나라를 미개한 오랑캐라고 취급하는 당대의 지식인들에게 청나라는 매우 발달한 문물과 제도를 갖춘 ‘선진국’이고 조선은 한참 뒤떨어져 있는 ‘후진국’이라는 사실을 주지시켰다.

그는 냉철하게 현실을 바라보지 못하고 단지 ‘오랑캐’라는 한 마디 말과 허울뿐인 ‘소중화’ 의식에 사로잡혀 청나라를 배척하려고만 한다면 나라의 후진성과 백성의 가난을 구제할 길은 없다고 생각했다.

이와 같은 절절하고 피 끓는 자신의 심정을 그는 이렇게 밝혀 놓았다.

“오늘날 백성들의 삶은 날이 갈수록 곤궁해지고 나라의 살림살이는 날이 갈수록 고갈되고 있다. 현실이 이러한데도 사대부라는 사람들이 팔짱만 낀 채 바라보고 있을 뿐 나라와 백성을 구제하지 않을 것인가? 아니면 과거의 인습과 풍속에 갇힌 채 편안한 생활을 누리면서 현실을 외면만 할 것인가?” 『북학의』 ‘자서(自序)’ 중에서

이처럼 박제가에게 ‘북학’은 나라와 백성을 구제할 수 있을 것인가 혹은 그렇지 못할 것인가를 가늠하는 절박한 문제였다. 따라서 『북학의』에 드러나 있는 박제가의 경제사상은 모두 나라와 백성을 구제하는 방법과 전략이라고 할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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