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장은 학문에서 나오고 학문은 문장의 기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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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문장은 학문에서 나오고 학문은 문장의 기초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04.29 07:1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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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⑦ 평범과 일상의 미학①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⑦ 평범과 일상의 미학①

[한정주=역사평론가] 필자는 여러 글과 강의를 통해 조선사의 시대 규정을 한 적이 있다. 예를 들어 조선의 16세기는 ‘사림의 시대’였고 조선의 17세기가 ‘보수의 시대’였다면 조선의 18세기는 ‘혁신의 시대’ 혹은 ‘지식혁명의 시대’라고 정의했다.

필자가 18세기를 이렇게 부르는 까닭은 무엇인가?

18세기 100년 동안 정치·경제·사회·문화·예술 등 모든 방면에서 최대의 화두는 단연 개혁(改革) 혹은 혁신(革新)이었기 때문이다. 특히 지성사와 문학사의 측면에서 볼 때 18세기 조선은 가히 ‘지식과 문학혁명’이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기존의 학문과 지식 그리고 문장에 대한 사고의 대전환이 일어났다.

가장 큰 사고의 전환은 성리학(주자학)만이 유일한 가치이자 학문이라고 여겼던 전통적인 개념의 지식인(사대부)들이 중인 이하의 계층이나 배우고 다루는 ‘잡학(雜學)’이라고 외면하며 배척한 영역들에 새롭게 학문적 가치를 부여하고 공부와 탐구의 중요한 대상으로 삼았다는 점이다.

성리학의 세계에서 학문과 지식의 정통은 경학(經學)과 사서(史書)였다. 경학과 사서 이외의 학문은 주변 지식 혹은 사소하고 하찮고 보잘 것 없는 잡학에 불과했다.

사대부는 유학의 경전이나 성리학서 만을 읽고 배우고 연마하고 수행해야 하며 그밖의 다른 무엇에도 마음을 두어서는 안 된다. 이들 외에 읽어도 될 만한 서책은 역사서가 허용될 뿐이다.

문장론에 있어서도 이들은 경학(經學)과 사서(史書)에 근거한 순정(純正)한 문장인 고문(古文)만을 써야 한다고 주장하면서 우리 주변의 사소하고 하찮고 보잘 것 없는 것들을 주제나 소재로 삼아 글을 쓰기라도 하면 순정한 문장인 고문(古文)을 해치는 시정잡배의 잡문(雜文)인 양 취급하며 멸시하고 배척했다.

그런데 성호 이익은 “나는 사람과 만나 대화할 때 일찍이 유학의 학술을 갖고 말하지 않았다. 아무런 이익이 없기 때문이다”라고 했는가 하면 자신의 조카이자 제자인 이병휴에게 보낸 편지에서는 “너는 이미 실학에 종사하고 있으므로 마땅히 실무에 뜻을 두고 헛된 일을 해서는 안 된다”라는 충고까지 했다.

다시 말해 사람들의 실제 생활에 아무런 이로움도 없는 유학이나 성리학의 고담준론보다는 일상생활에 유용하고 사회현실에 필요한 학문과 지식을 추구해야 하고 또한 그러한 글을 써야한다고 한 것이다.

조선 시대 지식인들에게 학문(공부)과 문장은 둘이 아닌 하나였다.

『용재총화』를 저술한 성현은 “문장과 학문은 둘로 나누어 질 수 없다. 고전은 모두 어질고 현명한 옛사람들의 문장이다. 그런데 오늘날 글을 짓는다고 하는 사람들은 학문에 그 뿌리를 두지 않고 학문에 밝다고 자부하는 사람들은 글을 짓는 것을 모른다. 이들은 모두 한쪽으로 치우친 기예와 습성을 익혔을 뿐이고 문장과 학문을 더불어 갈고 닦으려고 힘을 쏟지 않는다”라고 했다.

점필재 김종직은 “문장이란 곧 학문에서 나오고, 학문은 곧 문장의 기초”라는 자신의 생각을 풀과 나무에 비유해 이렇게 설명하기도 했다.

“학문을 주로 하는 선비는 문장이 보잘 것 없고 문장을 주로 하는 선비는 학문에는 어둡다고들 말한다. 그러나 나는 그렇게 보지 않는다. 문장이란 학문에서 나오고 학문은 곧 문장의 기초기 때문이다.

이 같은 이치를 풀과 나무에 비유해 보자. 뿌리가 없는데 줄기와 잎이 무성할 수 있겠는가, 꽃이 피고 열매가 열릴 수 있겠는가?

『시경(詩經)』과『서경(書經)』을 비롯한 고전들은 모두 학문이지만 문장이기도 하다. 문장에 의거하여 이치를 탐구하고 자세하게 살펴 그 속에서 노닐다 보면 이치와 문장이 하나로 합쳐져 내 마음속으로 모여든다. 그리고 그것이 언어와 문장으로 나타난다. 이렇게 되면 잘 짓지 않으려고 애를 써도 도리어 잘 지어질 수밖에 없다.

요즘 사람들이 하는 학문은 글의 구절이나 떼고 어구나 해석하는 공부에 불과하다. 또한 요즘 사람들이 짓는 문장이란 어구를 다듬고 꾸며 짜임새를 기묘하게 하는 수준에 불과하다.

이 때문에 학문은 문화와 정치를 보좌하는 문장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고 문장은 인간 본성과 진리를 밝히는 학문과는 아무런 관계가 없다. 이렇듯 학문과 문장을 둘로 나누어 놓고 서로 쓰임새가 없다고 의심한다.” 김종직, 『점필재집(佔畢齋集)』, ‘윤상선생 시집 서문(尹先生祥詩集序)’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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