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리경제학의 개척자 이중환…⑤ 이중환의 지리경제학이 남겨놓은 과제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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지리경제학의 개척자 이중환…⑤ 이중환의 지리경제학이 남겨놓은 과제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04.27 07:12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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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경제학자들] 사회 양극화·지역 불균형 해법 제시
 

[조선의 경제학자들] 사회 양극화·지역 불균형 해법 제시

[한정주=역사평론가] 농업경영과 상업 활동으로 재물을 모을 수 있는 지역을 거론한 다음 이중환은 국제무역의 요충지를 밝힌다.

그런데 그는 이곳에서 앞서 설명한 농업이나 상업과는 비교할 수도 없을 만한 재물을 안겨주는 곳이 국제무역의 거점 역할을 하는 지역이라고 분석한다.

“밑천이 많이 드는 큰 장사는, 한 곳에 있으면서 재물을 통해 남쪽으로는 일본과 무역하고 북쪽으로는 중국의 연경(북경)과 무역하는 것이다. 여러 해에 걸쳐 물자를 실어 날라 간혹 수백만금의 재물을 모은 사람도 있다. 이러한 부자는 한양에 가장 많고, 다음이 개성, 그 다음이 평양과 안주다. 이들은 모두 중국의 연경과 통하는 요지에 자리하고 있으면서 큰 부자가 되었다. 그 이익은 배를 통해 얻는 이익과 비교할 수 없을 정도로 크다. 삼남(충청도·전라도·경상도) 지방에는 이러한 부자가 없다.” 『택리지』 복거총론 생리편

이중환은 18세기 조선에서 가장 큰 이득을 안겨주는 상업 활동은 중국과 교통하는 국제무역로에 자리하고 있는 한양·개성·평양·안주라고 보았다.

실제 이들은 경강상인·개성상인(송상)·평양상인(유상)·의주상인이라는 거대 상인집단을 형성해 역관을 밀어내고 국제무역의 상권을 장악하면서 18세기 조선 최대의 갑부로 자리 잡았다.

중국과의 무역 이외에 거대한 재물을 안겨준 국제무역 거점이 또 있었다. 그 곳은 경상도 밀양과 동래다.

“(밀양은) 강을 끼고 있고 바다와 가까워 생선이나 소금과 배로 통상하는 이익이 있어서 또한 번화한 도회지를 이루었다. 한양의 역관들이 이곳에 많이 머물면서 엄청난 재물로 왜국 사람들과 장사해 많은 이익을 얻었다. 밀양 동남쪽이 동래인데 이곳은 동남쪽 바닷가에 있어서 일본에서 우리나라로 들어오는 첫 경계이다. 임진년 이전부터 동래 남쪽 바닷가에 왜관을 짓고 둘레 수십 리에다 나무 울타리를 쳐서 경계로 삼았다. 병사를 세워 지키도록 하고, 우리나라 사람들이 드나들며 교제하는 일을 엄격하게 금했다.” 『택리지』 팔도총론 경상도편

개성이나 평양 등이 중국과의 무역 거점이었다면 밀양과 동래는 일본과의 무역 요충지였다는 얘기다. 이곳을 거점 삼아 일본어 통역을 담당한 왜역관이나 동래 상인들은 일본 상인들과 교역을 해 막대한 이득을 얻었다.

이중환의 지적에 따르면 조선 제일의 갑부가 되기 위해서는 농업보다는 상업에 종사하는 것이 낫고, 상업 중에서도 국내보다는 국제무역에 나서는 것이 더 낫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중국과의 교역을 위해서는 의주나 개성 등을 거점으로 삼아야 하고 일본과의 교역을 위해서는 밀양이나 동래를 거점으로 삼아야 한다.

이중환 자신이 매우 불우한 상황에 놓여 있었기 때문인지 후대에 그의 사상적·학문적 계보를 이은 학자나 인물은 찾아보기 어렵다.

반면 『택리지』는 『팔역지』, 『사대부가거처』, 『복거설』, 『동국산수록』 등 수많은 다른 이름의 필사본으로 널리 읽혀져 왔다. 그러나 그동안 『택리지』는 인문지리서, 더욱 심하게는 풍수지리서 정도로만 이해되어 왔다. 『택리지』가 담고 있는 이중환의 경제사상이 적극적으로 드러나지 못했다는 얘기다.

필자는 『택리지』만큼 우리나라 8도의 지리적 조건·환경과 경제의 상호관련성을 종합적으로 다룬 책을 보지 못했다.

이 책은 ‘전국 8도 지리경제백서’라고 불러도 좋을 만큼 각 지역과 고을의 지리경제를 잘 보여주고 있다. 아마도 『택리지』가 취하고 있는 지리경제학의 모델을 좇는다면 현대에도 아주 훌륭한 전국 지리경제백서 혹은 지도가 탄생할 수 있지 않을까 싶다.

또한 이중환이 『택리지』에서 보여준 경제사상은 현재 우리나라의 경제발전 전략과 계획을 담당하는 정책 입안자들에게 분명한 메시지를 던져주고 있다. 그것은 탁상공론에서 벗어나 전국 방방곡곡을 현장 답사하면서 각 권역별 혹은 지역별로 경제발전을 추진할 수 있는 특성화 전략을 세우라는 권고다.

만약 이중환이 전하는 메시지를 충실히 실천한다면 지금 우리 사회가 안고 있는 사회 양극화, 곧 계층간 혹은 지역간 불균형으로 인한 사회적 갈등과 비용 역시 최소화할 수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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