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모방이 창조이고, 창조가 모방이지 않는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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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모방이 창조이고, 창조가 모방이지 않는가”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04.22 07:29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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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⑥차이와 다양성의 미학…모든 글은 나름의 묘미를 갖고 있다⑨
 

[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⑥차이와 다양성의 미학…모든 글은 나름의 묘미를 갖고 있다⑨

[한정주=역사평론가] 산수 유람과 경치를 우열(優劣)의 관계로 보지 말라고 하면서 시문 또한 이와 같아서 각자의 솜씨와 안목을 갖추고 있는데 이 글과 저 글을 우열(優劣)로 비교하고 평가할 필요가 없다는 조희룡의 글에도 ‘차이와 다양성’의 묘리(妙理)가 깊게 스며들어 있다.

“일찍이 단양을 유람하였는데 옥순봉(玉筍峯)·도담(島潭)·사인암(舍人庵)·삼선암(三仙庵) 등 여러 승경(勝景)은 우열(優劣)로서 차례를 매길 필요가 없다. 각기 기이한 경치를 갖추어서 모두 사람의 뜻에 맞는다.

옛사람의 시문 역시 이와 같다. 각자의 솜씨와 안목을 갖추고 있어 이것으로써 저것을 비교할 필요가 없다. 다만 그 사람의 성령(性靈)이 있는 바를 살펴보아 나의 시야를 넓히게 할 것이다.

나는 늙었으니 다시 유람을 다니지 못하겠지만 예전에 노닐던 것을 추억해보니 산을 보는 방법이 글을 보는 방법과 더불어 두 가지 이치가 아니다. 마음을 같이하는 사람과 더불어 이를 논할 만하다.” 조희룡,『석우망년록』

심지어 조희룡은 오래된 서화(書畵)를 볼 때 그 조예와 솜씨가 어떠한 것인지를 먼저 보아야지 그것이 진짜인지 가짜인지 논할 필요조차 없다는 파격적인 주장까지 했다. 설령 그 서화가 가짜일지라도 독창적인 조예와 탁월한 솜씨를 갖추고 있다면 도대체 무엇이 진짜이고 무엇이 가짜이냐고 반문하는 듯하다.

우열(優劣)의 관계는 물론 진가(眞假)의 구분조차 별반 의미가 없다는 획기적이고 혁신적인 사고가 아닐 수 없다.

조희룡의 철학은 우리에게 이렇게 묻고 있다. “모방이 창조이고, 창조가 모방이지 않는가?”

그래도 자신만의 글을 쓰는 것을 두려워하는 사람이 있다면 여기에 다시 이가환의 말을 덧붙여 용기를 주고 싶다. 당신이 자신의 감성과 감정에 진솔(眞率)하고 꾸밈이 없다면 세상 누구라도 훌륭한 시인이 될 수 있고 또한 훌륭한 작가가 될 수 있다.

“천하에 성정(性情: 감성과 감정)이 없는 사람이 없으므로 시(글)를 짓지 못하는 사람은 없다. 그러므로 사람이라면 누구나 시를 지을 수가 있지만, 단 성정이 질곡된 자는 시를 지을 수가 없다.

성정을 질곡시키는 것으로는 부귀가 가장 심하다. 성정이 질곡되면 그 재주가 아무리 고상하고 그 언어가 아무리 공교하다 해도 말품(末品)에 속하니 어찌 시라고 말할 수 있겠는가?

이것이 고금에 이름난 시가 곤궁하면서도 지위가 낮은 사람에게서 많이 나온 까닭이다.” 이가환, 『풍요속선(風謠續選)』서문(序文)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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