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유일의 여성 경제학자 빙허각 이씨…④경제사상 계승자 서유구와 『임원경제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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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유일의 여성 경제학자 빙허각 이씨…④경제사상 계승자 서유구와 『임원경제지』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03.23 08:26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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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경제학자들] 가계 경영 능력이 나라 경제의 뿌리로 믿었던 여성 경제학자
▲ 서유구(왼쪽)의 『임원경제지』는 빙허각 이씨가 『규합총서』에 담고 싶었지만 차마 담지 못한 뜻과 포부까지 온전하게 계승해놓은 책이다.

[조선의 경제학자들] 가계 경영 능력이 나라 경제의 뿌리로 믿었던 여성 경제학자

[한정주=역사평론가] 여성이었기 때문에 다 펼치지 못한 빙허각 이씨의 뜻과 포부는 그녀의 시동생인 서유구를 통해 온전히 세상에 드러났다고 할 수 있다.

빙허각 이씨가 『규합총서』를 지은 지 16년 후 서유구 역시 농촌 생활과 살림살이에 관한 본격적인 경제 이론서인 『임원경제지』를 저술했기 때문이다.

모두 113권 52책 250만 자에 달하는 어마어마한 분량의 이 책은 농업, 축산업, 수산업은 물론 원예, 요리, 기상, 지리, 의약, 건축, 음악, 서화 등 일상생활과 농촌의 경제 활동과 관련한 16개 분야의 정보와 지식이 총망라되어 있다.

워낙 방대한 분량에다가 광범위한 분야의 지식을 담고 있어 2007년 이전까지 누구도 한글 번역본을 내놓지 못한 책이기도 했다.

서유구는 자신이 『임원경제지』를 저술한 배경을 이렇게 설명하고 있다.

“사람이 살아가는데 있어서 나아가 벼슬하거나 물러나 거처하는 두 가지의 길이 있다. 세상에 나아가 벼슬할 때는 백성들에게 혜택을 주어야 하고, 물러나 거처할 때는 스스로 의식주에 힘쓰고 뜻을 길러야 한다.

세상을 다스리기 위해서는 정치와 교화가 필요하기 때문에 그에 관한 서책은 수도 없이 많다. 그러나 향촌으로 물러나 거처하면서 자신의 뜻과 생업을 돌볼 수 있는 서적은 거의 없다. 이에 나는 향촌과 시골 마을에 널리 흩어져 있는 모든 서적을 두루 모아 서책을 저술하기로 했다.

밭 갈고 길쌈하며 씨를 뿌리고 심는 기술과 음식을 만들고 가축을 기르고 수렵하는 방법은 모두 향촌에 사는 사람들에게 반드시 필요한 일들이다. 기상과 기후를 예측해 부지런히 농사짓고, 집터를 가려서 집을 짓고, 재화를 늘리고 생활을 풍요롭게 하기 위해서는 농기구를 잘 이용할 줄 알아야 한다. 그래서 여기에 그에 관한 모든 것을 수집해 놓았다.

화초 재배와 서화에 관한 일도 소홀하게 다룰 수 없다. 의약에 관한 일도 구급을 위해 갖춰야 하고, 길흉과 점복에 관한 일도 대강이나마 익혀 두어야 하므로 아울러 수록했다.

사람이 사는 지방이 제각각 다르고, 생활 습관과 풍속 또한 같지 않다. 생활하는 방식도 과거와 현재의 차이가 있고 우리나라와 외국의 구별이 존재한다. 어찌 중국 사람에게 필요하다고 해 그대로 우리나라에서도 필요하다고 할 수 있겠는가?

이 책에서는 우리나라를 중심으로 필요한 방법들을 취하고 그렇지 않은 것은 버렸다.” 서유구, 『임원경제지』 ‘자서(自序)’

이 기록을 통해 서유구가 『임원경제지』를 저술한 목적이 빙허각 이씨가 『규합총서』 서문에서 밝힌 ‘저술의 변’과 전혀 다르지 않다는 사실을 확인할 수 있다.

서유구가 형수인 빙허각 이씨의 영향을 받아 『임원경제지』를 저술했다는 사실 또한 어렵지 않게 짐작해볼 수 있다. 실제 서유구는 어린 시절 빙허각 이씨로부터 학문을 배웠다. 또한 빙허각 이씨의 행적과 저작이 자세하게 밝혀질 수 있었던 배경 역시 서유구가 지은 ‘빙허각 이씨 묘지명’에 있다고 할 수 있다.

여하튼 『규합총서』는 분명 규방(閨房)에 갇힌 여성의 한계를 뛰어넘은 실용 경제서적이었지만 ‘집안의 딸과 며늘아기에게 보여준다’고 할 정도로 빙허각 이씨가 스스로의 뜻과 포부를 규제하며 저술한 책이기도 했다.

그러나 정약용, 박지원 등의 인물과 동시대를 살면서, 그들과 어깨를 나란히 할 정도의 대학자이자 실학자였던 서유구는 그 어떤 제약과 속박도 없이 빙허각 이씨가 품었던 뜻을 펼쳐 보일 수 있었다. 따라서 서유구의 『임원경제지』는 빙허각 이씨가 『규합총서』에 담고 싶었지만 차마 담지 못한 뜻과 포부까지 온전하게 계승해놓은 책이라고 할 수 있다.

빙허각 이씨의 경제 사상은 서유구에 와서 비로소 활짝 피어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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