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 유일의 여성 경제학자 빙허각 이씨…①최신식 생활경제 백과사전 저술하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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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유일의 여성 경제학자 빙허각 이씨…①최신식 생활경제 백과사전 저술하다
  • 한정주 기자
  • 승인 2016.03.02 07:1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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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의 경제학자들] 가계 경영 능력이 나라 경제의 뿌리로 믿었던 여성 경제학자

[조선의 경제학자들] 가계 경영 능력이 나라 경제의 뿌리로 믿었던 여성 경제학자

[한정주=역사평론가] 학문의 역사에서 볼 때 유학, 특히 성리학이 지배한 조선시대는 여성들에게 ‘암흑의 시대’였다.

아주 특별한 사례를 제외하고는 여성들이 학문, 곧 유학의 경전과 역사서를 공부한다는 것 자체가 금기시되었다. 여기에서 특별한 사례란 집안의 분위기가 개방적이고 진보적이어서 여성들에게 남자 형제와 똑같이 학문을 가르친 경우를 뜻한다.

▲ 윤덕희, 독서하는 여인, 18세기, 비단에 담채, 20×14.3cm, 서울대학교 박물관 소장.

그러나 이 경우에도 여성들의 공부는 집안의 울타리 바깥으로는 뻗어 나갈 수 없었다.

이 같은 경우를 대표하는 여성으로는 『홍길동전』의 저자인 허균 집안의 허난설헌이나 ‘인물성동이논쟁’으로 조선 유학사의 한 페이지를 장식한 임성주 집안의 임윤지당 등을 꼽을 수 있다.

허난설헌은 잘 알려져 있다시피 시문(詩文)으로 크게 명성을 얻은 여성이다. 학문의 세계에 관해서는 여성들에게 아주 폐쇄적이었던 조선 사회도 시문의 세계에서만큼은 한 자락 길을 열어주었다고 할 수 있다. 이 때문에 신사임당, 황진이, 이매창 등 시문의 세계에서 나름의 자리를 구축한 여성들을 심심찮게 볼 수 있다.

그럼 조선의 여성들 중에 시문의 세계가 아닌 학문의 세계에서 명실상부하게 자신만의 독자적인 영역을 구축한 인물은 전혀 존재하지 않았을까?

그렇지는 않다. 앞서 소개한 임성주 집안의 임윤지당은 성리학에 관한 여러 철학 저술들을 남겼다. 그녀의 철학 저술들은 『임윤지당유고』에 남아 현재까지 전해오고 있다.

그리고 이번 이야기의 주인공인 빙허각 이씨 또한 『규합총서』와 『청규박물지』라는 서적을 통해 조선 후기 들어 활짝 꽃을 피운 실학 분야에서 독자적인 족적을 남겨놓았다.

이들 임윤지당과 빙허각 이씨를 제외하고 남성들이 독점하고 있던 성리학과 실학의 영역에 발을 들여놓거나 흔적을 남겨놓은 조선의 여성은 존재하지 않았다고 해도 틀린 말은 아니다.

이렇듯 임윤지당은 조선 유일의 여성 성리학자였고, 빙허각 이씨는 조선 유일의 여성 실학자라고 할 수 있다. 더욱이 빙허각 이씨가 저술한 『규합총서』는 당대는 물론 20세기 초반까지 최신식 생활 경제 백과사전으로 널리 인정받고 인용되었기 때문에 그녀는 조선 유일의 여성 경제학자라고 불러도 손색이 없는 인물이다.

그렇다면 빙허각 이씨는 어떻게 조선 유일의 여성 실학자이자 경제학자로 자리를 잡을 수 있었을까?

그녀가 태어나고 자란 전주 이씨 가문과 훗날 시집간 달성 서씨 가문은 17~18세기 최고의 벌열(閥閱)이자 대학자를 수도 없이 배출한 집안이었다. 특히 그녀의 학문 경력에 탄탄한 배경을 제공한 달성 서씨는 『보만재총서』의 서명응(시할아버지), 『해동농서』의 서호수(시아버지), 『임원경제지』의 서유구(시동생) 등을 배출한 당대 최고의 학자 가문이었다.

그녀의 남편인 서유본 역시 뛰어난 실학자였고 빙허각 이씨의 학문과 저술활동을 적극적으로 후원한 사람이었다. 이들 부자형제(父子兄弟)는 소론 출신의 실학자 그룹을 실질적으로 이끈 인물들이기도 했다.

전해오는 기록에 따르면 서유구는 8000권의 서책을 보유한 유명한 장서가이기도 했다고 한다. 이 때문에 빙허각 이씨는 자신의 주요 저서인 『규합총서』나 『청규박물지』를 저술할 때 시할아버지와 시아버지의 저서를 적지 않게 참조했을 뿐 아니라 시댁의 엄청난 장서가 도움이 되었다.

그러나 빙허각 이씨가 조선 유일의 여성 실학서이자 경제서라고 할 수 있는 『규합총서』를 저술한 직접적인 계기는 1806년 시댁의 작은 아버지인 서형수가 옥사 사건에 연루되어 온 집안이 몰락하면서 동호 행정(지금의 서울 용산 부근)으로 쫓겨나다시피 삶의 터전을 옮겨야 했던 일에서 찾을 수 있다.

당시 48세의 나이였던 빙허각 이씨는 이곳으로 거처를 옮기면서부터는 차밭을 경영하면서 집안 살림과 가정 경제를 직접 책임졌다. 그리고 이곳에서 그동안 서책을 통해 틈틈이 배우고 익힌 지식과 어려운 가정 경제를 홀로 꾸려나간 경험을 십분 활용해 최신식 생활 경제 백과사전인 『규합총서』를 저술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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