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경제학과 공모한 낭만적 로맨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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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치경제학과 공모한 낭만적 로맨스
  • 심양우 기자
  • 승인 2014.04.10 09:1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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에바 일루즈의 『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

▲ 캘빈클라인 광고. 20세기 들어 급격하게 발달한 광고 시장의 주요한 테마는 사랑이다.
자본주의는 모든 인간을 시장이라는 공간에 참여시키는 동시에 시장 메커니즘을 통해 소비 공동체와 생활양식 집단으로 분할한다.

또한 생산 영역에서는 금욕주의를, 소비 영역에서는 쾌락주의를 요구한다.

그 속에서 인간의 사회적 삶은 신성한 것과 융합된 ‘뜨거운’ 순간과 실용주의를 지향하는 일상 활동의 ‘차가운’ 순간 사이를 오갈 수밖에 없다.

20세기 들어 급격하게 발달한 광고 시장의 주요한 테마는 사랑이다. 거의 모든 상품 광고는 직간접적으로 사랑과 연계하고 있다. 자본주의 사회의 개인은 시장의 교환 영역에 포섭되는 과정을 통해서만 로맨스 영역에 진입이 가능하게 된 것이다.

여가 시장 역시 마찬가지다. 여가 활동은 자본을 얼마나 소유하고 있느냐에 따라 가장 첨예하고도 불평등하게 개인에게 구현되는 영역이다.

결국 사랑과 로맨스 자체도 하나의 거대한 사업이 되었다. 각종 데이트, 로맨스 산업들은 이미 로맨스 자체가 자본주의 상품 체제의 중요한 원천이 되었음을 보여준다.

예루살렘 히브리대학교 사회학·인류학과 교수님 에바 일루즈(Eva Illouz)는 소비 자본주의와 긴밀히 연관되어 있는 현대인의 사랑의 경험을 그의 저서 『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에서 풀어내고 있다.

현대사회에서 탈계급적인 것으로 인식되는 로맨스라는 현상에 사회학의 전통적인 개념인 계급을 들이대고, 사랑의 기쁨과 아픔의 메커니즘을 자본주의의 문화적 모순에서 찾아내는 방식이다.

여기서 일루즈는 상품의 낭만화와 로맨스의 상품화를 통해 로맨스와 자본주의의 교차점을 찾는다.

상품의 낭만화는 20세기 초 영화와 광고 이미지 속에서 상품이 낭만적 아우라를 획득하는 방식을 일컫는다면 로맨스의 상품화는 로맨스 관행들이 초기 대중 시장을 통해 제공된 여가 상품과 여가 기술의 소비와 점차 맞물리고 그러한 상품과 기술에 의해 정의되는 방식들과 관련된다.

일루즈에 따르면 로맨스 관행은 역사적으로 점점 더 새로운 형태의 사회적 구별짓기와 뒤얽혀왔다. 따라서 낭만적 사랑은 여가 상품의 소비뿐만 아니라 신분 드러내기를 목적으로 하는 지위 소비 형태와도 밀접하게 결합돼 있다.

그러나 계층에 따라 성향은 다르게 나타난다. 문화 자본을 소유한 중간계급 성원들이 대중문화의 진부한 표현들을 비웃는 등 반(反)소비주의적 에토스를 드러낸 반면 그러한 문화 자본을 갖지 못한 노동계급 사람들은 무비판적으로 대량생산된 로맨스 상품들에 집착하는 것이다.

 
일루즈는 “노동계급보다 중간계급이 상대적으로 낭만적 감정을 확보할 여유가 더 많다”고 말한다.

이들은 경제적 차원에서 상대적으로 노동에서 벗어난 여유를 더 많이 가지고 있으며, 이를 통해 소비 자본주의가 제시하는 사랑의 이미지에 더 쉽사리 접근할 수 있기 때문이다.

더구나 가족과 학교를 통해 상당한 교육과 문화 자본을 획득하고 있기 때문에 기존의 문화적 시나리오를 벗어나 자신들만의 방식으로 낭만적 감정을 만들어갈 개연성이 더욱 많다고 덧붙인다.

자본주의가 자아와 인간관계에 미친 영향을 연구한 그간의 책들과는 달리 『낭만적 유토피아 소비하기』에서는 사랑과 자본주의의 만남을 분석했다는 점에서 흥미롭다.

일루즈에 따르면 “근대의 낭만적 사랑은 시장으로부터의 ‘안식처’가 되기는커녕 후기 자본주의의 정치경제학과 긴밀히 공모하고 있는 하나의 관행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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