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를 모르면 색칠의 조화를 잃고 그림을 모르면 시의 맥락이 막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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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시를 모르면 색칠의 조화를 잃고 그림을 모르면 시의 맥락이 막힌다”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16.02.05 08:5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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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⑤ 진경(眞景)의 미학…글은 살아있는 풍경이다⑩
▲ 겸재 정선, 강천모설, 23.4×22cm, 연도 미상.

[한정주=역사평론가] 필자가 보기에 북학파 그룹 중 글을 마치 ‘살아있는 풍경’처럼 묘사하고 표현하는 ‘진경의 미학’을 가장 잘 구현한 이는 이덕무다.

박지원도 필자처럼 생각했던지 이덕무가 사망한 후 지은 ‘형암행장(炯菴行狀)’에서 다른 사람과는 다르게 특별히 ‘진경(眞景) 묘사’를 이덕무 문장의 최대 특징으로 꼽았다.

“문장을 지을 때는 반드시 옛사람의 뜻을 구하되 모방하거나 답습하지 않고 거짓으로 꾸며서 짓지 않았다. 한 글자 한 구절마다 모두 정리(情理)에 가까워 진경(眞境)을 묘사하였다. 매 편(篇)마다 그 묘미(妙味)가 간곡하고 정성스러워서 읽어볼 만하였다.” 박지원, 『연암집』, ‘형암행장’

특히 필자는 글과 그림을 동일한 맥락에서 이해하는 이덕무의 ‘미학’을 그의 글 여러 곳에서 찾아볼 수 있었다.

예를 들어 그는 “그림을 그리면서 시의 뜻을 모르면 색칠의 조화를 잃게 되고, 시를 읊으면서 그림의 뜻을 모르면 시의 맥락이 막히게 된다.”고 하였다. 더욱이 이덕무는 세계를 거대한 ‘그림 판’으로 보고 조물주를 ‘화가(畵家)’라고까지 표현했다.

“세계는 거대한 그림이고, 조화옹(造化翁)은 대 화가이다. 주황색으로 요염하게 붉게 물든 오구목(烏舅木) 꽃은 누가 붉은 물감을 칠하고 붉은 빛깔의 돌과 산호 가루를 뿌려 그려 놓았는가?

복숭아 꽃잎에는 연지처럼 붉은 즙이 뚝뚝 떨어지는 것만 같다. 가을 국화 꽃빛은 등황색(藤黃色)을 곱게 바른 것만 같다. 눈이 개고 피어오르는 푸르스름한 기운에는 푸른 빛깔이 두 겹 세 겹 엇갈려 먼 곳과 가까운 곳에 골고루 나뉘었다.

세찬 소낙비가 강 위를 내달려서 수묵(水墨)을 가득 뿌려놓으면 채색할 틈도 없게 되고, 잠자리의 눈동자는 녹색 빛이 은은하고, 나비의 날개는 금빛으로 물들었다.

생각해보면, 이것은 천상에 채색을 담당한 성관(星官)이 있어서 풀과 꽃과 돌과 금의 정화(精華)를 모았다가 조화옹에게 제공해 온갖 사물의 빛깔을 입히게 한 것이 아닐까? 그래도 가을 강 석양(夕陽)의 거대한 그림이 가장 좋다. 이것이야말로 조화옹이 뜻을 얻은 그림 이라고 할 만하다.” 이덕무, 『청장관전서』,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

이렇듯 마치 그림을 그리듯 글을 짓는 그의 독특한 작풍(作風)은 젊은 시절부터 나타났는데 그에 관한 기록이 앞서 ‘영처의 미학’에서 소개했던 글인 ‘영처고 자서’에 남아 있다.

“무릇 한 덩이 먹을 갈아서 세 치쯤 되는 작은 붓을 휘둘러 아름다운 꽃망울을 모으고 아름다운 구슬을 주워서 마치 화가처럼 가슴속 깊은 뜻을 묘사한다. 우울하고 답답하게 맺힌 근심을 기분 좋고 통쾌하게 풀어놓고, 서로 어긋나고 갈라진 생각들을 화합시키고, 휘파람 불고 노래하며 웃다가 꾸짖다가 한다. 산과 강의 맑고 아름다움, 서예와 그림의 기이하고 고상함, 구름과 노을과 눈과 달의 번성하고 아름답고 조촐하고 깨끗함, 꽃과 풀과 벌레와 새의 예쁘고 곱고 지저귀고 날아오르는 이 모든 것이 붓을 따라 나온다.” 이덕무, 『청장관전서』, ‘영처고 자서’

붓을 갖고서 ‘있는 그대로’ 혹은 ‘느낀 그대로’ 진경(眞景)을 묘사하고 표현하는 것은 그림을 그리는 화가(畵家)나 글을 짓는 문장가(文章家)가 매한가지라고 하겠다. 이덕무가 이러한 문장 미학을 바탕 삼아 젊은 시절 충주(忠州)로 가는 도중에 만난 ‘눈 내리는 길’의 풍경을 묘사한 진경 산문은 하나의 장쾌한 걸작이라고 아니할 수 없다.

“때는 계미년 늦겨울 12월 22일이다. 나는 충주에 가기 위해 이른 아침 누런 말에 걸터앉아 이부(利富) 고개를 넘고 있었다. 얼어붙은 구름이 하늘을 온통 덮더니 눈이 펄펄 내리기 시작했다. 가로 비껴 날리는 눈의 풍경이 마치 베틀 위에 씨줄이 오가는 것 같았다.

아름다운 눈송이가 귀밑터럭에 떨어지니 은근히 내게 마음을 드러내는 듯했다. 나는 눈송이가 사랑스러워 머리를 쳐들고 하늘을 향해 입을 벌린 채 받아먹었다.

산속 작은 길이 어떤 곳보다 먼저 하얗게 바뀌었다. 멀리 떨어져 있는 소나무는 검은 색깔을 띠었다. 하얗게 물들려고 하는 푸른 소나무는 가까운 곳에 있는 소나무임을 알겠다.

바짝 마른 수수깡이 밭 한가운데 떨어져 서 있는데, 눈바람이 몰고 지나갈 때마다 휙휙 바람 소리가 났다. 수수깡의 붉은 껍질이 꺾인 채로 눈 위를 쓸어대니 자연스럽게 초서(草書) 모양이 되었다.

말라버린 나무 위에는 까치가 대여섯 혹은 예닐곱 마리 떼를 지어 몹시 한가로이 앉아 있었다. 혹은 부리를 가슴에 파묻은 채 반쯤 눈을 감아 깨어있는 듯 졸고 있는 듯 보이고, 혹은 가지에 붙어 부리를 갈고, 혹은 목을 돌리고 발톱을 쳐들어 눈을 긁고 있고, 혹은 다리를 들고 옆에 있는 까치의 날개깃을 긁어주고, 혹은 정수리에 쌓인 눈을 몸을 흔들어 떨어내고, 혹은 눈동자를 똑바로 하고 바람에 따라 휘날리는 눈의 기세를 응시하고 있었다.

말을 몰아 가파른 언덕에 오르자 깨진 항아리 조각처럼 옆으로 기운 소나무가 어깨를 툭 쳤다. 손을 들어 솔잎을 따서 씹자 입 안 가득 맑은 향기가 났다. 새하얀 눈 위에 침을 뱉자 푸른 색깔로 바뀌었다. 팔짱을 낀 팔굽에 눈이 쌓여 장차 턱에 닿을 것 같았지만 차마 털어낼 수가 없었다.

맞은편에서 다가오는 사람은 뺨이 불그스레하고 주름을 찾아볼 수 없었다. 왼쪽 구레나룻은 시커먼 그을음과 같고, 오른쪽 구레나룻은 새하얀 눈과 같았다. 눈썹도 닮아 있었다. 내가 그 모습을 보고 하도 크게 웃다가 갓끈이 끊어질 뻔했다.

팔짱을 낀 팔굽에 쌓인 눈까지 말갈기에 쏟아졌다. 나는 다시 웃었다. 눈발이 서쪽으로 날려 오른쪽 눈썹 위에만 눈이 쌓였다. 구레나룻도 눈썹처럼 오른쪽에만 눈이 달라붙었다. 눈썹과 구레나룻 모두 하얗지만, 그 사람이 늙어서 하얗게 된 것은 아니다.

다행스럽게도 나는 수염이 없어 눈동자를 치켜뜨고 내 눈썹을 바라보았다. 왼쪽 눈썹에만 유독 눈이 쌓여 하얗다. 또 크게 웃다가 거의 말에서 떨어질 뻔했다. 저쪽에서 오는 사람과 내 쪽에서 가는 사람의 눈썹에는 좌우가 바뀌어 눈이 하얗게 달라붙어 있었다.

나무가 빽빽이 우거진 곳에 울퉁불퉁한 암석이 곱사등이 마냥 버티고 서 있다. 그 암석 꼭대기에는 눈이 수북하게 쌓여 있었다. 다만 우묵하게 들어간 곳에는 눈이 쌓이지 않아 약간 거무스름한 것이 마치 눈살을 찌푸리고 있는 모습과 같았다.

그 형상을 말하자면 귀신도 아니고 부처도 아닌데 더러 호랑이와 비슷해 보였다. 그래서 일까? 말이 콧김만 내뿜고 앞으로 나아가려고 하지 않았다. 말몰이꾼이 소리를 질러 재촉하자 어쩔 수 없이 겨우 걸음을 떼었다.

말이 가는 대로 가다 보니 대략 칠 십 리 길이었다. 지나가는 곳마다 두메산골이거나 아니면 들판일 뿐이었다. 벌목(伐木)하는 소리가 허공에 울려 퍼졌다. 하지만 사방을 둘러보아도 사람은 전혀 찾아볼 수 없었다. 하늘과 땅이 맞붙어서 아스라하게 수묵(水墨)을 풀어놓은 듯 드넓게 출렁거렸다. 어느 누가 이렇게 짙은 물감을 풀어놓았을까?

넓고 먼 풍경을 바라보자 해질녘 강의 안개 낀 모습이 갑자기 협곡과 들판 사이에 드러났다. 사람을 의아하게 할 지경이었다. 돛대가 희미하게 때때로 안개 너머에서 나타났다. 도롱이 입고 삿갓 쓴 노인이 물고기를 메고 낚싯대를 끌고 있었다. 마을 어귀가 어렴풋하게 보였다. 청둥오리가 끼욱끼욱 울어대면서 떼를 지어 숲으로 모여들었다. 저 멀리 햇볕에 그물을 말리고 있다. 버드나무 가지가 바람에 흔들거렸다.

나는 궁금증을 견딜 수 없어 말몰이꾼에게 칠 십 리 길을 오는 동안 본 풍경에 대해 물어보았다. 말몰이꾼도 나와 같았다. 다시 길 가는 사람에게 물어보았다. 그는 말몰이꾼과 같이 빙긋이 웃었다. 말을 채찍질해 동쪽으로 갔다.

갑자기 멀리 보였던 풍경이 눈앞에 나타났다. 그런데 해질녘 강의 안개 낀 풍경처럼 보였던 것은 황혼의 어두움 때문이었고, 희미하게 돛대처럼 보였던 것은 허물어진 초가집이 장마를 겪은 다음 마룻대와 기둥만 남은 채 서 있는데 가난한 백성이 지붕을 잇지 못한 모습이었다. 도롱이 입고 삿갓 쓴 노인은 산골짜기에서 나오는 사냥꾼이고, 물고기는 꿩을 낚싯대는 지팡이를 잘못 본 것이었다.

심지어 청둥오리는 검은 갈가마귀를 잘못 본 것이었고, 그물은 들판에 사는 백성이 얼기설기 짜놓은 울타리를 잘못 본 것이었다. 길 가던 사람이 빙긋이 웃은 까닭은 내가 잘못 본 것을 비웃은 것이었다. 곤주(昆珠)의 주막집 등불 아래에서 적는다.” 이덕무, 『청장관전서』, ‘70리 눈길을 기록하다(七十里雪記)’

70리 길을 가는 동안 만난 눈 내리는 날의 정취와 감상을 참으로 아름답게 그린 글이다. 특히 드넓은 들판에서 바라본 풍경의 착시(錯視)와 자신의 눈앞에 드러난 실경(實景)을 친근하면서도 경쾌하게 묘사하고 있다. 허상(虛像)인지 실상(實像)인지 알 듯 모를 듯 써내려간 풍경 묘사가 오히려 글에 긴장감과 생동감을 불어넣고 있다.

이 글을 쓴 계미년은 1763년(영조 39)을 말한다. 이덕무의 나이 23세 때다. 그가 젊은 시절부터 진경(眞景)을 묘사하는 문장을 짓는데 아주 빼어난 솜씨를 갖추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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