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새 또한 따르던 사람 잊지 않는데 어찌 사람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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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새 또한 따르던 사람 잊지 않는데 어찌 사람이···”
  • 한정곤 기자
  • 승인 2014.03.30 11:3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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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선비의 눈에 비친 동물과 그들의 세상에 대한 기록
 

“내가 어렸을 때 촉새 새끼 두 마리를 얻어 새장 속에 넣어 직접 길렀다. 새가 자란 후에는 풀어 주었다. 그런데 새들은 날아갔다가 다시 돌아왔다. 하루에 한 번도 오고 이틀에 한 번도 오는데 날아오면 내게 다가와 날개를 치며 울부짖는데 마치 먹이를 찾는 듯했다. 그래서 몇 달에 걸쳐 먹을 것을 주었다. 새 또한 이처럼 따르던 사람을 잊지 않는데 어찌 사람이 은혜를 잊고 덕을 배반한단 말인가.” (이수광 『지봉유설』에서)

조선 선비들 가운데 누군가는 자연을 노래했고, 누군가는 도덕 혹은 철학에 삶을 바쳤다. 또 누군가는 정치를 바로잡는 데 목숨을 걸기도 했다.

그리고 그들 가운데 또 어떤 이들은 주위의 여러 동물에 눈길을 던졌다.

『조선동물기』(서해문집)는 조선시대 선비들이 기록한, 조선시대 사람들의 눈에 비친 동물에 관한 이야기다.

요즘처럼 세련되고 과학적인 표현을 쓰지 않았고 일부 오류도 발견되지만 합리적인 기준에 따라 생물을 분류하고, 특정 생물의 상세한 특징과 설명은 놀라울 따름이다. 반면 21세기 기준으로는 허무맹랑한 이야기도 있다.

그러나 그 또한 조선시대를 살던 선비들의 삶이요, 동물관이었다.

미국의 동물 작가이자 화가인 시튼이 쓴 『동물기』와 파브르의 『곤충기』라고 이러한 오류가 없을까.

현재 기준에서 본다면 과거의 과학 관련 도서들 역시 많은 오류들이 발견된다. 그렇다고 이들의 과학적 기록이 무의미한 것은 아니다. 오히려 오류가 있었기에 과학은 발전이 가능했다.

『조선동물기』 또한 마찬가지다. 옳은지 그른지는 호사가적 취미일 뿐이다. 조선 선비들에게 이들 기록은 세상이요, 삶이었다.

따라서 이들 기록을 통한 동물학적 지식은 별개의 문제다. 우리를 앞서 살다 간 선비들의 삶을 바라보는 태도, 자연을 바라보는 태도, 동물을 바라보는 태도가 먼저다.

그들 시대에 그들이 바라본 자연에 대한 애정과 관심 자체가 소중한 기록이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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