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글이란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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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글이란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
  • 한정주 역사평론가
  • 승인 2015.12.23 07:2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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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 지식인의 글쓰기 철학]⑤ 진경(眞景)의 미학…글은 살아있는 풍경이다③
▲ 성호 이익과 『성호사설(星湖僿說)』

[한정주=역사평론가] 그럼 ‘진경 시와 산문’이란 무엇인가? 그것은 ‘조선의 산천과 조선 사람의 모습 및 생활을 창작의 소재와 원천으로 삼아 독특하고 참신한 작법으로 고유의 작풍(作風)을 드러낸 시와 산문’이라고 할 수 있다.

예로부터 사대부 출신의 문인들은 ‘글은 곧 그림이요, 그림은 곧 글이다’라는 생각을 갖고 있었다. 그래서 그림에 반드시 화제(畵題)나 발문(跋文)을 남겨 그림은 글을 보듯, 다시 글은 그림을 보듯이 했다. 글과 그림을 한 뿌리에서 나온 다른 가지로 보았다고나 할까.

실제 필자가 이 글에서 서술하는 ‘문장의 미학’을 보면 독자들 또한 ‘그림의 미학’과 매우 닮아 있다는 것을 느낄 것이다. 이러한 까닭에 김홍도의 스승인 강세황의 사례에서 보듯이 뛰어난 문장가 중에는 문인화가 또한 많았다.

심지어 성호 이익은 글과 그림의 관계를 가리켜 ‘글이란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했다.

“사물의 본 모습은 생각하는 것이 보는 것만 못하고, 듣는 것이 직접 보는 것만 못하다. 그렇지만 길고 긴 세월 전이나 천 리 밖에서 일어난 일이라면 어떻게 그 실제 모습을 직접 볼 수 있겠는가? 문자로 담아둘 수 있을 뿐이다. 이 때문에 글을 마음으로 그리는 그림이라고 말한다.

그 상황과 모습을 그려 드러낸 것이 실제와 비슷해 글을 보면 일을 하는 데 이롭다. 그런데 혹시 거짓으로 글을 꾸미고 장식해 실제 형상과 모습을 제대로 말하지 않는다면 무슨 이로움이 있겠는가?

소식이 장방평을 대신해 지은 ‘간용병서(諫用兵書)’는 이른바 정복 전쟁에 대한 화상(畵像)이라고 할 수 있다. 이 글을 보고 비통한 감정을 일으키지 않는 자는 사람이라고 할 수 없다.

‘싸워서 이긴 후에 폐하께서 알 수 있는 것은 개선하여 승리를 보고하는 것과 표(表)를 올려 치하하는 정도로서 보기 좋고 듣기 좋은 구경거리에 불과합니다. 저 먼 지방의 백성들이 번쩍이는 칼날에 간과 뇌를 묻고, 군사들을 먹이고 식량을 보내느라 뼈와 근육이 끊어지고, 파산해 이리저리 떠돌아다니며 빌어먹고, 자식들을 팔아먹고, 눈이 빠지고 어깨가 으스러지고 스스로 목을 매어 죽는 형편에 대해 폐하께서는 결코 볼 수 없습니다.

그리고 자애로운 어머니, 효성이 지극한 자식, 변방의 신하, 과부들이 통곡하는 소리 또한 결코 들을 수 없습니다. 소나 양을 도살하고, 물고기와 자라를 회쳐서 음식을 만들어 놓으면 먹는 사람은 즐거울지 몰라도 죽는 짐승은 매우 고통스러운 이치와 같습니다.

폐하께서 몽둥이가 칼날 아래에서 부르짖고, 도마와 칼 사이에서 꿈틀대는 모습을 보신다면 온갖 진귀하고 아름다운 음식이 차려져 있다고 할지라도 젓가락을 던져버리고 차마 먹지 못할 것입니다. 하물며 사람의 목숨을 이용해 듣기 좋고 보기 좋은 구경거리를 삼아서야 되겠습니까?’

이 글이야말로 참 모습을 잃지 않았다고 할 수 있다. 이 뜻이 당나라의 문인 이화의 ‘조고전장문’에 뿌리를 두고 있다는 사실은 읽어 본 사람이라면 누구나 알 수 있다.

이화 또한 근본으로 삼은 것이 있었다. 한나라 때 가연지가 반란을 일으킨 주애현을 정벌하는 일을 중단하자고 청한 글에서 ‘군사를 수도 없이 징발해 아비는 앞에서 싸우다 죽고, 아들은 뒤에서 싸우다 상처입고, 여자는 높은 언덕에 올라 하염없이 남편과 자식을 기다리고, 고아는 길가에서 울부짖고, 늙은 부모와 과부는 눈물을 삼키며 마을 어귀에서 곡을 하고, 헛제사를 지내며 만 리 밖의 영혼을 부르고 있다’고 했다.

참으로 정신을 가다듬고 외워볼 만한 글이라고 하지 않을 수 없다.” 이익, 『성호사설(星湖僿說)』, ‘간용병서(諫用兵書)’

이익이 여기에서 문장을 가리켜 ‘마음으로 그린 그림’이라고 한 까닭은 다름 아닌 사실주의적 묘사와 표현을 중시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하기 위해서였다. 그런 점에서 ‘간용병서’라는 문장은 전쟁의 참상을 사실적 묘사로 고발한 ‘전쟁화(戰爭畵)’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진경시대’가 추구한 가치나 정신과 맥락을 같이 하는 문장론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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