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칼럼] 규제개혁? 신자유주의 망령의 부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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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칼럼] 규제개혁? 신자유주의 망령의 부활
  • 한정곤 기자
  • 승인 2014.03.26 09:23
  • 댓글 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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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진 자의 주머니만 더 채우는 하소연…후폭풍 우려
▲ 지난 20일 오후 청와대 영빈관에서 열린 ‘제1차 규제개혁 장관회의 및 민관합동 규제개혁 점검회의’ <출처:청와대 홈페이지>

꼭 2년만이다. 그것도 선거를 앞둔 봄날이면 이벤트 경향성 짙은 이슈가 우리 사회를 뒤흔든다.

총선을 앞둔 2012년 봄, 우리 사회에는 거센 경제민주화 바람이 불었다. 갑과 을이라는 두 가지 스펙트럼 속에서 모든 것이 비춰지고 해석됐다. 횡포와 하소연, 비난과 사과가 이어졌고 일부 관련 법까지 개정되기도 했다.

그로부터 2년 뒤 지방선거를 앞둔 2014년의 봄날 갑작스럽게 규제개혁이 그 자리를 대신하고 있다.

경제민주화와 규제개혁. 어쩌면 이율배반적인 양날의 칼과 같은 이슈가 2년 만에 바톤 터치를 한 것이다. 야당이 주도했던 경제민주화와 달리 규제철폐는 여당이 주도하고 있다는 점이 흥미롭다.

또 경제민주화가 상대적으로 경제적 약자인 가지지 못한 이들의 목소리를 대변했다면 규제개혁은 경제적 강자, 즉 가진 자들이 주머니를 더 채우기 위한 하소연이라는 차별성도 읽게 된다.

다만 경제민주화나 규제개혁 모두 경제선순환을 목적으로 하고 있다는 점에서 일단 국민들의 거부감은 덜해 보인다. 선거를 앞둔 이슈치고는 흥행에 성공한 것이다.

그런데 지난 20일 무려 7시간에 걸친 규제개혁 끝장토론을 보고난 뒤부터 뭔가 찜찜하다는 느낌이 사라지지 않는다.

“규제개혁이야말로 특단의 개혁조치”라는 대통령의 발언을 받아들이지 못하겠다는 것도 아닌데 뒷간에서 밑을 닦지 않고 나온 기분이다.

끝장토론 이후 봇물처럼 쏟아지는 각종 규제 사례와 이를 개혁 또는 철폐하겠다는 정부 관료들의 발언에서 묘하게 금융위기 이전이 오버랩됐기 때문이다.

지난 2008년 금융위기 이전의 세계 경제는 온통 신자유주의 물결이었다. 시카고학파로 대표되는 신자유주의 사상은 장기불황을 해결하지 못한 케인스주의 경제정책의 무능력과 초국가적 자본의 세계화에 따른 민족국가 형태의 제한성을 비판하며 1970년대 등장했다.

이후 영국 대처 수상과 미국 레이건 대통령이 정부정책으로 채택하면서 복지·환경 예산축소, 세금감면, 노동시장 유연성, 국영기업의 민영화 등으로 시장활성화를 꾀한 대표적인 경제정책이다.

특히 우루과이라운드 타결과 세계무역기구(WTO) 설립으로 신자유주의 정책은 전 세계 국가들에로 파급됐다.

그러나 신자유주의 정책의 결말은 무엇이었는가. 고삐 풀린 자본의 광란과 잔뜩 부풀려진 금융 버블에 의한 글로벌 금융위기였을 뿐이다.

다시 규제개혁으로 돌아가 보자.

박근혜 정부는 규제개혁의 목표로 현재 1만5269건에 달하는 등록규제 중에서 1만1000여건의 경제규제를 개혁의 대상으로 삼고 있다. 이 가운데 20%를 감축하겠다는 목표다. 규제의 질이 아닌 양에 초점을 맞추고 있는 것이다.

물론 지난 20일 소위 끝장토론 모두발언에서 “좋은 규제와 나쁜 규제를 구분해 좋은 규제는 더 개선하고 나쁜 규제는 뿌리를 뽑는 규제 합리화를 할 필요가 있다”고 말하긴 했다.

그렇다면 규제총량제 이야기는 또 무엇인가. 나쁜 규제도 총량이 넘어서면 다른 규제가 철폐될 때까지는 그냥 두겠다는 것인가.

어쨌든 규제총량제는 여기서 언급할 사안이 아니다.

문제는 현재 정부가 부처별로 추진하고 있는 규제개혁의 대부분이 경제규제라는 점이다. 큰 틀에서 보면 시장의 생성과 유지를 가로막는 규제를 제거하겠다는 것이다. 즉 국가의 개입보다 시장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것이 이번 규제개혁의 방향으로 풀이된다.

끝장토론 이후 찜찜했던 부분이 바로 이것이었다. 신자유주의 망령의 부활을 예고하고 있는 것이다.

페테르 빈터호프 슈푸르크 교수(독일 자를란트대학 심리학)는 신자유주의 경제가 내세우는 경제정책의 특징을 이렇게 설명했다.

• 국가의 개입보다 시장이 사회자본을 더 적합하게 분배한다.
• 제 기능을 발휘하는 시장을 구성하고 유지하는 것이 국가 경제정책의 주요 과제다.
• 자유시장의 생성과 우위를 막는 지역이나 국가 및 규제규칙은 모두 제거되어야 한다.
• 물가의 안정은 통화의 안정과 국가재정의 수지균형을 통해 가장 잘 이뤄진다.
• 개인이 벌어들인 돈을 자유롭게 사용할 수 있도록 세금부담은 가능한 한 적어야 한다.
• 임금협상과 노동권 규정을 없애야 한다. 해고보호, 근무시간 규정 및 경영참여는 자유로운 기업활동을 저해한다.
• 국가가 직접 기업활동을 해서는 안 된다. 국영기업뿐만 아니라 사회복지시설도 민영화해야 한다.
• 국가는 기업을 후원하는 경제정책을 펼쳐야 한다. 임금과 기업의 세금을 낮춰 지속적인 경제성장의 전제조건을 마련해야 한다.

우연일까. 현재 개혁 대상으로 거론되는 규제 대부분은 이들 항목에 그대로 적용되고 있다.

규제가 철폐돼 시장이 개방된다고 모두가 혜택을 받을 수 없다. 오히려 그 혜택은 더 많은 자본이 집중된 곳으로 모이게 된다. 대기업은 덩치를 더 키우게 되고 중소기업은 경쟁력이 더 약화되는 악순환이 이어지게 되는 것이다.

이는 신자유주의 경제체제 하에서 드러난 여러 개발도상국 경제가 증명하고 있다.

마치 경제성장의 발목을 잡은 주범이 규제인 양 몰아붙이는 무분별한 규제개혁의 후폭풍도 생각해야 한다. 공장 짓겠다고 그린벨트를 다 파헤칠 수는 없지 않은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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